팹리스산업협회 "기업 규모 작고 핵심기술 제한"
최태원 "중국 반도체, 턱밑까지 쫓아와"
산업 아닌 '경제 안보' '생존 전략' 관점 모두 고려
한국이 'AI 반도체' 기술 수준에서 미국뿐 아니라 대만에도 2년 이상 뒤져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범용 반도체 분야에선 중국이 치고 올라와 우리와 대등한 위치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위로는 갈 길이 멀고 아래로는 경쟁이 치열해진 K반도체가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요동치는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반도체는 하나의 산업을 뛰어 넘어 경제 안보이자 생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결국 정부가 나서 전폭 지원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 |
| ▲ AI 반도체 관련 이미지. [뉴시스] |
23일 한국팹리스산업협회가 공공기관인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의뢰로 최근 실시한 '국산 AI 반도체 사업화를 위한 현황 및 수요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선도 국가인 미국과 대만 대비 한국은 80% 수준으로 2.5년의 기술 격차가 있다.
초당 천문학적 연산을 할 수 있는 '초병렬' AI 컴퓨팅' 기술에서는 최고 기술을 가진 미국에 비해 한국은 64%에 그쳐 4년이 벌어져 있다. 또 여러 개의 반도체 칩을 하나의 패키지에 집적하는 기술은 미국과 대만에 비해 2.8년 뒤졌다.
AI 반도체는 정보 저장 용도의 메모리와 달리 AI 학습·추론을 위한 데이터 연산 처리를 저전력 고속처리하는 것이다. 협회 연구진은 "국내 AI 반도체 산업은 기업 규모가 작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핵심 기술이 제한적"이라며 "특히 고성능 AI 반도체 설계, EDA(전자설계자동화) 툴 및 소프트웨어 생태계 분야에서는 후발주자"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메모리 분야 반도체 강국이지만 AI 반도체 분야에서는 존재감이 아직 미미하다. 해외에선 엔비디아, 인텔, 구글, 화웨이 등 빅테크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국내에선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딥엑스, 모빌리티 등 스타트업이 위주다.
협회가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51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조사 결과 67%인 35개가 국산 AI 반도체 연구개발 수행 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중 74%는 초기 단계이고 자금 확보, 수요처 및 실증 연계 부족, 시제품 제작 및 지식재산권(IP) 확보 부담 등을 애로 사항으로 꼽았다. 국산 AI 반도체의 낮은 시장점유율에 대해서는 기술력과 가격경쟁력, 신뢰성 부족 등을 사유로 지목했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은 2023년 537억 달러(약 74조 원)에서 2028년 1590억 달러(약 219조 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 수요뿐 아니라 기기 내에서 AI가 구동되는 온디바이스 반도체 수요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생성형 AI 스마트폰 출하량은 2023년 4700만 대에서 2027년이면 5억2000만 대로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텃밭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지난 17일 대한상의 하계포럼에서 "중국 제조업 실력이 업그레이드되다 보니 우리가 만드는 거의 모든 물품과 경쟁하게 됐다"면서 "반도체도 추격 속도가 더 빨라져 거의 턱밑까지 쫓아온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추월했다는 진단도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한기평)이 지난 2월 발표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고집적 저항 기반 메모리 기술 기초역량에서 글로벌 3위인데, 중국은 2위를 차지했다. 반도체 첨단 패키징 기술에선 양국이 공동 4위였다. 고성능 저전력 AI 반도체 기술에서 중국은 미국에 이은 2위로 한국(3위)보다 앞섰고 전력 반도체 기술은 두 계단 높은 4위였다.
중국이 석유보다 많은 금액의 반도체를 수입한다는데 경각심을 갖고 2014년부터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국산화 정책과 대규모 투자에 힘써온 결과라는 분석이다.
각국의 AI 기술 패권 경쟁이 불붙은 터라 반도체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기평은 최근 '반도체 공정·장비 차세대 혁신 기술 조사·분석 연구' 용역을 공고하며 "중국의 급부상,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닌 경제 안보의 문제로 변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부문에 대해선 "중국과의 산업 경쟁이 불가피하며 경쟁자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은 미국 제재로 최첨단 공정보다는 레거시(범용) 공정에 초점을 맞춰 반도체 자립을 위한 투자와 독자적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도 "'산업의 쌀'이자 경제 안보 품목인 반도체는 '생존 전략'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보조금, 저리 대출, 인프라 지원 등 장기적 지원 전략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기업 전략과 정부 정책의 연계도 제언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해외 기업 투자 유치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고 반도체 공급망 중 '약한 고리'는 정부가 직접 인수 또는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공공 투자기관을 통해 반도체 소재 회사 JSR를 지난해 인수했고 지난 3월에는 반도체 기판 제조사 신코덴키도 사들였다.
지난 4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반도체 특별법안은 10월쯤 국회 본회의 통과가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 "특별법을 신속하게 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