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모자라"…1020에 의존하는 헌혈 시스템이 문제

장기현 / 2019-01-18 16:21:41
혈액 부족 해마다 반복…1020에 70% 의존
저출산 고령화로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도 '말잔치' 그쳐


지난 10일 오후 3시께 '헌혈의 집 광화문센터'에 들어섰다. 헌혈을 하고 있는 사람 1명과 대기하는 사람 1명 뿐이었다. 직원은 헌혈자보다 많은 6명이었다. 대기번호는 24.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이 헌혈의 집을 다녀간 사람의 숫자다. 헌혈을 위한 베드는 6개였다. 짧게는 10분 만에 헌혈이 끝나지만, 필자가 직접 헌혈을 하는 동안 6개의 베드 중에서 단 2개만 사용됐다. 이마저도 광화문센터가 소속된 서울동부혈액원은 전체 혈액원 중에서 단연 최고의 헌혈실적을 올리는 곳으로, 특히 이 헌혈의 집은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인 광화문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 2019년 1월 18일 기준 O형은 2.8일, A형은 3.6일, B형은 3.8일, AB형은 3.6일 만큼의 혈액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캡처]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혈액 보유량에 따른 경보단계는 관심(5일분), 주의(3일분), 경계(2일분), 심각(1일분)으로 구분된다. 2019년 1월18일 기준 O형은 2.8일, A형은 3.6일, B형은 3.8일, AB형은 3.6일 만큼의 혈액을 보유하고 있다. 합계로는 3.4일분이 남아 '관심' 단계이지만, O형의 경우 2.8일로 '주의' 단계 수준이다.

이런 혈액 부족 사태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특히 겨울에는 헌혈하는 사람들이 급감한다. 헌혈의 집 관계자는 "겨울철이라 추위 때문에 평소보다 헌혈을 하러 오는 사람들의 수가 적은 것이 사실"이라며 "크게 계절, 휴가, 명절 등이 헌혈자의 수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엔 항상 부족

대한적십자사가 발표한 '2017년도 혈액사업 통계연보'에 따르면 총 292만8670건의 헌혈 중 1월과 2월이 각각 21만9578건(7.5%), 21만9624건(7.5%)으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그 다음이 추석이 있던 10월로 22만1593건(7.6%)을 기록했다. 가장 많은 헌혈실적을 보인 5월은 27만9611건(9.5%)으로 앞의 세 달과 6만건 가량 차이가 났다. 

 

▲ 지난 10일 경남 함안 39사단 사령부 장병이 생명나눔 헌혈에 참여하고 있다. [경남혈액원 제공]

 

대한적십자사 헌혈대외협력팀 김은혜 과장은 "동절기에는 학교의 방학과 회사의 휴가 등으로 인해 다른 시기에 비해 헌혈자 수가 감소한다"며 "특히 1020의 참여가 압도적이라 1월과 2월의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겨울철 혈액 부족은 근본적으로 헌혈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학생들에 의존하는 현재의 헌혈 시스템 때문이다. 전체 헌혈자의 25%를 차지하는 대학생과 22%를 점유하는 고등학생이 겨울방학에 들어가면 단체 헌혈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혈액 공급이 부족해진다.

여기에 군인과 회사원 등을 포함한 1020의 비율은 2017년 기준으로 70%를 넘었다. 10대와 20대, 30대 이상의 헌혈 인구 비율이 한국은 7대 3인 반면, 대부분의 선진국은 3대 7의 비율을 보인다. 일본은 30대 이상 헌혈 인구(2016년)가 78.4%이고, 대만은 67%다. 이렇게 혈액과 헌혈이 모자랄 뿐 아니라 불균형한 것이 대한민국 '피'의 현실이다.

1020에 의존하는 시스템

지난해 헌혈자 수는 292만8670명, 헌혈률은 5.7%로 집계돼 2014년 305만3452명(6.1%)과 비교해 10만명 이상 줄었다. 2회 이상 헌혈을 하는 사람을 뺀 헌혈자 실인원 수를 기준으로 한 국민 헌혈률은 3.92%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헌혈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10대와 20대 헌혈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 2017년도 혈액사업 주요통계 [2017년도 혈액사업 통계연보]

김은혜 과장은 "1020의 헌혈 감소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며 "현재 여러 홍보 방식을 활용해 2018년 말 기준 중장년층의 헌혈률이 30%를 넘겼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은 2001년 이후 초저출산(합계 출산율 1.3명 이하)이 계속되고 있고, 지난해 고령사회(65세 이상이 인구 중 14% 이상)로 진입했다. 혈액의 주공급자인 젊은 세대는 줄어드는 반면, 주사용자인 노인 세대는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지난해 10월22일 국정감사에서 "저출산·고령화로 헌혈인구는 감소하는데, 혈액사용인구는 증가하고 있다"며 "향후 10년 후에는 혈액부족 사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책은 부실

정부는 지난해 4월 5개년(2018년~2022년) 안정적 혈액 수급 전략을 담은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중장기 혈액 수급 안정을 위해 연간 헌혈량 목표관리제도를 도입하고, 현재 29%인 30대 이상 중장년층 헌혈자 비율을 2022년까지 42%로 끌어올리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월 5개년(2018년~2022년) 안정적 혈액 수급 전략을 담은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 보도자료]


하지만 정부가 도입한다고 선언한 '연간 헌혈량 목표관리제도'는 실체가 없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담당자는 "말 그대로 헌혈 목표치를 구체화하고 각 지역별·혈액원별로 목표치를 달성하는 지를 보겠다는 것"이라며 "특별한 시스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언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30대 이상의 헌혈자 비율 확대를 위해 제시한 '42%'라는 목표치도 뚜렷한 근거가 없다. 이 담당자는 "42%라는 수치는 2022년까지 달성해야 할 내부 목표"라며 "이 수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나 플랜은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로 담겨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내부 자료라는 이유로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 전체 내용 공개를 거부했다.

심지어 그 방안도 미비하다.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 보도자료에는 중장년층의 헌혈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이 전무하다. 대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 확산을 위해 '혈액원 견학', '헌혈 과학관·홍보관 운영', '정규 교육과정(교과서) 반영' 등 또다시 젊은 세대를 위한 정책만 나열돼 있다. 같은 과 다른 관계자는 "3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 초점을 맞추고 홍보 방식을 다변화하는 전환의 시기"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예산의 한계 등으로 빠른 변화를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 TF에 참여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TF에 목표 수치를 명확히 하고, 수치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우자고 주장했지만 현재 수준 정도로 맞춰졌다"며 "5억원짜리 연구용역도 기존에 나온 자료를 종합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어 "발전계획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혈'만이 해법

현재 대한민국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절대적 혈액 부족과, 1020 위주의 공급이라는 상대적 혈액 부족을 동시에 겪고 있다. 현재로서는 혈액을 대체할 물질이 존재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만들 방법도 없다. 즉 '헌혈'은 수혈을 필요로 하는 환자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안기종 대표는 "혈액은 생산이 불가능한 물질이며, 공급이 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며 "혈액을 자급자족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즉 혈액주권을 지키기 위해 헌혈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헌혈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풀뿌리 헌혈 교육이 필수적"이라며 "현재의 혈액관리 시스템을 개선해 채혈, 검사, 전산, 정책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헌혈의 집 광화문센터 앞에 놓인 엑스배너[장기현 기자]


군대에서 헌혈을 시작했다는 김재환(28)씨는 "시간이 될 때마다 와서 헌혈의 집에 들른다"며 "이번으로 20회를 넘겼고, 100회 이상을 목표로 헌혈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헌혈은 시간만 투자하면 누군가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열심히 건강을 관리해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헌혈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35년 간 725회 헌혈한 손홍식(69)씨는 "헌혈을 할 수 있는 기간은 50년 남짓으로, 만 70세가 넘어가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며 "혈액은 몸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돌고 도는 것이라, 나도 수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꺼이 헌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8월을 마지막으로 헌혈을 잠시 쉬고 있다"며 "만 70세 되기 전날까지 하고 싶다"고 밝혔다.

 

K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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