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진정한 의미를 파고들며 죽음과 삶의 관계 탐색
자살의 대죄는 탐욕이고, 순교의 대죄는 자만과 허영
"죽음 자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 의미도 없다"
'게토레이는 쓰레기 같은 맛이었어요. 너무 달아서 혀가 타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도 벌컥벌컥 마셨어요! 너무 울어서 목이 말랐거든요. 아마 그때 처음으로 느낀 것 같아요. 그 모든 슬픔이 모여서, 단 하나의 단단한 점으로 응축됐어요. 다이아몬드처럼. 그 하루에요.'
| ▲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둔 작중 인물이 미술관에서 살며 관람객과 대화를 나누는 소설 속 퍼포먼스 이미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이란계 미국 시인 사이러스 샴스는 생후 몇 개월 만에 어머니 '로야'를 잃었다. 로야는 이란항공 655편이 전투기로 오인한 페르시아만 미국 함정의 미사일에 격추되면서 먼지처럼 사라졌다. 사이러스는 엄마의 존재를 느낄 수조차 없었다. 오로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기업형 농장에서 닭똥을 치우면서 수십 년간 고된 노동을 하다 사이러스가 대학에 입학한 뒤 뇌졸중으로 소멸했다. 사이러스는 십대 중반에 이르러 문득 엄마를 제대로 애도한 날이 없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하루 날을 잡아 학교를 빼먹고 하루 종일 울면서 거리를 배회한다.
사이러스는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먼지처럼 사라지는 '의미 없는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방황하던 그가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해 '세속적 순교'에 집중하면서 그 실천을 궁리하는 배경이다. 미국에서 이란계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차별의 위험한 시선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순교'가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사이러스는 소설 내내 방황하고 고민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다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도 올랐던 이란계 미국 시인 카베 악바르(1989~)의 첫 소설 '순교자!'(김동혁 옮김·은행나무)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죽음이 어떻게 제국과 종교에 의해 오염되고 이용되는지, 순교라는 이름의 죽음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문학의 오랜 화두로 내려온 묵직한 주제를 날렵하게 다룬 소설이다. 깊은 사유가 시적인 문체에 실려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풍자로, 말미에는 느꺼운 각성으로 흘러간다.
이란계 시각 예술가 '오르키데'는 중심 화자인 사이러스가 '순교자 프로젝트' 서사시를 추구하면서 만나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죽음-말'((DEATH-SPEAK)이라는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말기 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며 통증 관리를 제외하고는 어떤 치료나 약물을 거부하며 미술관에서만 먹고 자면서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때까지 하루 네 시간씩 관람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퍼포먼스였다. 이 소식을 접한 사이러스는 자신의 '순교자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만한 대상이라는 생각에 뉴욕으로 날아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이 소설의 중심 플롯이다. 이 기둥을 놓고 사이러스의 아버지, 어머니 로야, 이란 이라크 전쟁에 참여했던 삼촌 아라시 등 주변 인물들이 파편처럼 끼어든다.
격추된 이란 여객기에 탑승한 290명은 전원 사망했는데 사이러스는 그중 한 명인 엄마는 단지 숫자로만 환원되는 먼지 같은 '의미 없는 죽음'을 맞았다고 절망한다. 자신의 죽음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순교자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실행에 옮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다. 브클린 미술관에서 만난 오르키데는 사이러스에게 말한다.
'죽음에 집착하는 또 한 명의 이란 남자. 자신의 죽음에 대해 공상하는, 용서할 수 없는 허영.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 인위적으로 방해받아야 하는 증여된 것, 타성인 양.'

죽음이 삶을 명료하게 해주는 존재론적 사건이 아니라, 연극적 과시로 변질되는 양상을 지적하는 맥락이다. 신의 영광을 위해, 내세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는 종교의 폭력이지만, 세속의 정의를 위해 혹은 역사의 바른 편에 서기 위해 죽음을 자처하는 이른바 '세속의 순교' 또한 잘못된 것임을 오르키데는 지적한다. 사이러스는 단지 순교자 문제에 대해 정직하게 접근하고자 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의 모든 사람은 두려워하고 아파하고 화가 나 있는 것처럼, 이길 수 있는 싸움에 굶주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보다도 더 심하게, 그들은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상태가 행복하고 만족하고 부유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모두가 겪는 고통의 기원은 외부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확신이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법안을 만들고 국경선에 벽을 세우고 그곳 시민들이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현수막들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저들에게서 온다>라고 말했고, 사람들은 그 모든 확신을 확신하며 환호했다. 하지만 다음 날 깨어난 그들은 아프던 자리가 여전히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 중서부에서 '9/11과 그 이후의 맹목적 애국주의와 잔디에 꽂은 국기, 노란 리본' 가운데 이란인으로 컸던 사이러스. 그는 "미국인들에게는 증오-공포를 위한 장기가 하나 더 있는 듯했다"면서 "그 장기가 두 번째 심장처럼 그들의 가슴에서 맥동했다"고 서술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입통령'에 대한 풍자도 날카롭다.
'그는 자신이 천재적이라고 흔들림 없이 주장하는 것만으로 그 정반대의 관찰 가능한 모든 증거를 압도해 미국의 대중을 설득해버리는 종류의 인물이었다. 입통령 같은 인간이 권력자로 부상할 수 있는 건, 다른 무엇보다도 <오류 없음>을 특권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태어날 때부터 어떤 의미의 책임으로부터도 단절 되어 있고, 물려받은 부라는 순수한 고치에서 키워져 인간 특유의 귀찮은 약점이나 슬픔, 의구심에는 전혀 더럽혀지지 않은 채 순수한 이슬처럼 솟아나는 그런 인간.'
그가 제국의 극심한 편견과, 천국을 약속하는 나라의 몽매한 폭력으로부터 떨어져서 의미 있는 죽음을 탐색하는 일은 가능할까. 사이러스가 의미 있는 죽음의 표본으로 오르키데의 마지막 퍼포먼스를 상찬하자 그녀는 서늘하게 고개를 흔든다. 죽음에 당도한 순간,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을 뿐이라고.
'난 예술가예요. 내 인생을 예술에 바치죠. 그게 전부예요. 사람들은 내 일생에 왔다 가고, 왔다 갔죠. 대부분은 떠나버렸어요. 내가 예술에 삶을 바치는 건 예술은 남기 때문이에요. 그게 나예요. 예술가. 예술을 하죠. 예술은 시간이 망칠 수 없는 것이니까요.'
| ▲ 죽은 병사들을 순교자로 추앙하며 사진을 곳곳에 내건 이란의 거리. 앳된 소년도 보인다. [쉬라즈(이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오르키데의 정체성에 대한 반전이 후반부를 흡인력 있게 만드는 중요한 팩트이지만, 그 설정을 넘어서서 전체적으로 '의미 있는 죽음'이란 과연 가능한지 카베 악바르는 집요하게 성찰해나간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는 어떤 경우에도 대단한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그가 도달한 출구인 듯하다. 의미를 부여해 죽음을 선동하는 행위는 종교나 제국의 논리이고, 세속의 정의를 '위한' 죽음이라는 것도 무망하다는 것이다.
이란 체제는 거리 곳곳에 전사자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들의 영웅적인 순교를 추앙했다. 사이러스의 어머니를 죽인 비행기 추락 사진을 국가에서 발행하는 우표에 싣기도 했다. '한 국가는 역사를 통계적 이상 현상으로, 부수적 피해로 단순화하고 다른 한 국가는 역사로 프로파간다를 찍어낸다'고 사이러스에게 연인은 충고한다. 역사를 이용해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건 미국이나 이란 같은, 국가들이 하는 일이라고. 사이러스는 '순교자의 서'의 말미에 이렇게 쓴다.
'자살의 대죄가 탐욕, 즉 당신의 요동치는 내면의 고통을 당신보다 오래 살아남을 모든 사람에게 퍼뜨리는 한편 당신 자신만은 고요함과 침착함을 챙겨두려는 것이라면 순교의 대죄는 자만, 허영, 당신의 죽음이 당신의 삶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음 자체보다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 오만이다. 죽음 자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 의미도 없다.'
오르키데는 "나는 내 인생으로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만들어냈기를 바란다"면서 "알파벳은 인생이 그렇듯 한정된 형태들의 집합인데 그것이 있으면 사람은 거의 모든것을 만들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남긴 자신의 '부고'에 밝혀 놓았다. 삶이라는 알파벳으로 의미와 명분을 만들면서 그 삶을 견디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순교'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라진 아내 대신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묵묵히 견디다 소멸한 사이러스의 아비처럼. 살아 있는 지금은'딸기 철'이다.
'맙소사,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이 방금 떠올랐다. 하지만 - 하지만 나도?! 우선은 잊지 말기를, 지금이 딸기 철이라는 것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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