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부동산 샤워실'의 바보…섣부른 정부 개입 경계해야

유충현 기자 / 2023-09-18 17:05:30
尹, 프리드먼式 '작은 정부' 지향하지만
부동산만큼은 정책대출로 인위적 부양
"인플레이션은 '알코올 중독'과 같아"
尹정부 '부동산 금주(禁酒)'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인생 책'으로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꼽는다.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의 추천으로 젊은 시절 이 책을 접한 뒤 여러 차례 읽어봤으며, 본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지난해 윤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 '자유'라는 단어가 35번이나 등장한 것도 프리드먼의 영향이라고 다들 짐작한다.

 

프리드먼의 주장은 명료하다. 시장에 맡겨두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섣부른 개입을 '샤워실의 바보'에 비유했다. 처음 샤워기에 물을 틀면 찬 물이 나오지만, 수도꼭지를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온다. 깜짝 놀란 바보가 수도꼭지를 반대로 틀면 다시 차가운 물이 쏟아진다. 샤워실의 바보란 정부를 의미하고, 수도꼭지는 정책을, 물의 온도는 경기 등락을 뜻한다.

 

정부 정책은 대통령의 철학과 사유를 투영한다. 잠재성장률과 수출지표가 추락하고 민간의 소비여력과 투자여력이 악화하지만, 정부는 긴축 재정을 고집스럽게 밀고 간다. '수도꼭지'를 만지지 않겠다는 의지다. 정책에 대한 찬반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프리드먼의 가치관이 반영된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일단 자연스럽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정책 가운데 프리드먼의 철학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곳이 있다. 부동산이다. 바보가 되지 않겠다는 정부의 다짐도 유독 '부동산 샤워실'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집값이 떨어지자, 정부는 수도꼭지에 손을 댔다. 정책금융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낮고 총부채원리금(DSR) 규제도 받지 않는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고, 대출 원리금 상환 기간을 엿가락처럼 늘린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공급했다. '역전세 반환대출'이라는 기묘한 상품도 나왔다.

 

부동산 경착륙을 막겠다는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샤워기에서는 예상보다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격히 반등하더니, 일부 지역에서는 전보다 더 비싸졌다.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 가계부채도 함께 치솟았다. 연초만 해도 감소세를 보였던 금융권 가계대출은 4~8월 5개월 사이에만 약 18조 원이나 증가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14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금융불균형의 원인이 부동산"이라고 콕 짚어 말했다. 정부가 대출을 부추겨 부동산 시장의 '인위적 강세장'을 조성한 탓에 가계부채가 폭증했다고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모든 경제 현상을 통화정책 관점에서 봤던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한 가지 비유를 남겼다.

 

"인플레이션은 알코올 중독과 같다. 술을 마시거나 화폐를 너무 많이 발행하면 좋은 효과가 나쁜 효과보다 먼저 나타난다. 치유는 그 반대다. 금주를 하거나 통화 팽창을 멈출 때 악영향이 좋은 효과보다 먼저 나타난다. 그것이 치유를 지속하게 어려운 이유다."

 

프리드먼의 이 같은 비유는 가계부채를 쌓아 올려 자산 인플레이션을 만든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도 곱씹어 볼 만하다. 윤석열 정부는 집값을 안정화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 경기를 부양했다.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말과 손이 서로 달랐다. 말로는 술을 끊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꾸만 술을 입에 댄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계대출에 정부가 뒤늦게라도 깜짝 놀란 모습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억제에 나서면서 은행들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판매를 제한하거나 중단했다. 일시적 다주택자까지 공급했던 특례보금자리론 역시 서민과 실수요층에만 집중해 공급요건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차주들이 상환능력 범위에서 빚을 지도록 DSR 규제도 한층 조인다는 방침이다. 일단 당분간 '부동산 금주(禁酒)'를 하겠다는 자세로 보인다.

 

다만 공교롭게도 이즈음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WTI 기준)를 돌파하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국제유가의 상승이 물가를 밀어 올리면 금리 인상 압력이 높아진다. 향후 시차를 두고 우리 부동산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미래에 부동산 시장이 다시 하락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윤석열 정부는 그때도 금주(禁酒) 결심을 지키고, 수도꼭지에서 손을 뗄 수 있을까. 한 번 지켜볼 일이다.

 

▲ 유충현 경제산업부 기자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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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현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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