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지하에 휴게 공간 있다"…노동자 "내려가면 혼나"
정부 '휴게실 가이드' 80% 안지켜…"강제성 부여해야"
여전히 화장실에서 쉬어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사업장 청소노동자들은 화장실 한 칸을 개조한 공간을 휴게실로 사용했다. 용변을 보는 곳 바로 옆이었다. 맨발로 들어서자 바닥의 한기가 차갑게 올라왔다. 성인 한 명이 제대로 눕기 힘들 정도로 비좁았다. 1층을 제외한 모든 층의 화장실에 이런 휴게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해당 사업장에서 만난 청소노동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화장실 옆 칸 공간도 최근에 생겼다"며 "전기장판도 화재가 난다고 갖고 오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에어컨도 없고 샤워 시설도 없어 여름에는 땀을 흘린 상태로 일한다"고 했다.

다른 사업장의 화장실 청소노동자는 휴게 공간도 없었다. 비상 엘리베이터 앞에서 간이 의자를 놓고 쉬었다. 1평 남짓 되는 공간에는 쓰레기통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찬바람도 새어들어 왔다. 하청업체 소속인 노동자는 "(사업주가) 부자라면서 휴게실도 없다. 회사에서 여기서 쉬라고 한다"며 "다른 곳에서 쉬면 혼난다. 여기서 죽치고 있으라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노동자들은 입주가 안 된 사무실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쉬기도 했다.
화장실에 휴식 공간이 마련된 사업장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건물 관계자는 "지하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이 있다. 층별 공간은 청소노동자들이 만든 공간이지 회사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지하 공간에 대해 "밥 먹는 용도로만 사용된다"며 휴게 공간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한 노동자는 "수시로 화장실을 점검하라고 지하에 마련된 공간에서는 쉬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리자가 말한 지하 공간에 내려가자 불이 꺼져있고, 아무도 이용하고 있지 않았다.
휴게실 설치·운영 가이드, 서울 사업장 80%가 미준수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휴게실을 제공해야 하는 법적 근거는 있다. 근로기준법 제54조(휴게)와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사업주의 의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79조(휴게시설), 동 규칙 제567조(휴게시설의 설치) 등에 의해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강제하는 조항은 없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5일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를 마련해 산업현장에 배포했다. 가이드라인은 휴게실 설치·이용 원칙, 설치대상과 위치·규모, 휴게시설의 환경, 비품 및 관리 등을 다룬다. 휴게시설의 면적은 1인당 1㎡, 최소 6㎡미터를 확보하고, 냉난방·환기시설 등을 설치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두 달에 걸쳐 실시된 실태점검 결과,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청소·경비용역 사업장 54곳 중 80%가 넘는 44곳의 휴게실 상태가 가이드라인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문제로 지적된 사업장 44곳 중 41곳에는 개선계획서를 내도록 했다. 이 가운데 2곳은 아예 휴게실이 없었고, 나머지는 휴게실에 청소도구함이 같이 있거나 냉방시설이 없는 등 시설이 미비했다. 유해분진 발산장소에 휴게실이 설치되거나 의자가 없는 나머지 3곳에는 시정 지시가 내려졌다.
노동계 "강제성 부여해 원청 책임 강화해야"
노동계는 원청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민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은 "노동자들은 대부분 원청에 직접 고용된 형태가 아닌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이라며 "단체협약이나 노사협약에 아무리 휴게실에 대한 내용이 있어도 원청이 휴게실을 마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갖출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강제성을 부여해 원청이 책임지고 휴게실을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위원은 "휴게실을 제공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는 벌칙 조항이 필요하다"면서 "법이 있어도 안 지키는 게 기업들인데 가이드라인 정도로는 지켜지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법으로는 구체적인 휴게시설 설치 기준조차 제시된 게 없다"면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대형 사업장과 공공기관에 우선적으로 강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휴게실을 의무화하는 법안은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2016년 12월 장석춘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근로자가 휴식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도록 사업주에게 법률상 의무를 부과하고, 그 설치기준을 고용노동부령에 명시적으로 위임하도록 하고 있다. 또 이를 위반할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다.
그러나 "기업이 망한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2월19일 열린 1차 고용노동소위에서 해당 법안을 두고 "기업이 망하게 생겼는데, 휴게실이 문제가 아니다"며 제동을 걸었다. 심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회의가 종료됐다. 이후 12월27일까지 소위 회의가 4차례 더 진행됐지만, 휴게실 의무화법은 끝내 의결되지 못하고 지금도 '계속 심사 대상'으로 남아있다.
K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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