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관행과 법관의 재량에 의존해 와"
경제학, 심리학, 뇌과학 등 기반 가이드라인 마련
최태원 회장 위자료 20억, 역대 최고액…새 이정표
대법원이 위자료 산정 방식 개선에 나섰다. 위자료 수준이 낮아 실질적 피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감안한 것인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 판결이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인다. 경제학과 심리학, 뇌과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려 한다.
18일 조달청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날 '위자료 산정 방식 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 입찰 공고를 했다. 사업 기간은 8개월이며, 사업비는 8800만 원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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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4월 16일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변론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
대법원은 이번 연구 필요성에 대해 "위자료 산정 실무는 오랫동안 관행과 법관의 재량의 의존해 왔고, 이에 따른 산정 기준의 불명확성, 결과 예측의 어려움, 사건 간 편차, 전반적인 과소 보상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면서 "특히 이혼, 교통사고, 의료사고, 명예훼손 등 다양한 사건 유형에서 위자료 금액이 대체로 낮게 책정되고 실질적 피해의 정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고 짚었다.
문제가 되는 유형별로 기본적인 기준금액을 설정하고, 세부적 행위 유형과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기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주된 과제다. 기준금액은 통계적 생명가치(VSL)와 삶의 질을 고려한 생존년수(QALY) 등 경제학적 지표에 기반을 두며, 심리학과 정신의학 방법론도 사용된다.
VSL은 '사망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지'를 노동시장데이터와 설문조사 기반으로 측정해 산출된다. QALY는 '한 사람이 상해나 질병의 영향을 받은 특정 건강상태에서 1년을 사는 것의 가치를 수치화하는 것'으로, 특히 상해나 질병으로 인한 배상 수준을 정하는데 용이한 지표라고 한다.
대법원은 또 판결문 분석을 통해 위자료 산정에서 기준이 되어 온 인자(원인 요소) 등을 분석하고, 실무 담당 판사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 및 심층 인터뷰도 진행하려 한다. 실제 고려 요소, 기존 판례의 참조 방식, 판결문 내 고려 요소의 기술 방식, 무의식적 판단 요소에 대한 자각 여부 등을 조사하려는 것이다.
불법행위의 유형별 기준금액과 조정 요소, 조정 비율 등을 포함한 객관적 가이드라인 구성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의 사례들도 연구 대상이다. 미국은 위자료의 객관적 산정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영국은 위자료 증액을 위한 체계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국가로 법관 주도의 가이드라인 제·개정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학계와 보험업계, 의료환자단체, 소비자단체 등의 의견 수렴도 연구 과제 중 하나다.
대법원은 2016년에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위자료 산정의 현실화와 예측 가능성 제고를 위한 첫 제도적 시도였다. 하지만 기준금액이 실증적 데이터나 객관적 근거 없이 설정됐고, 다른 사건 유형에 대한 후속 기준 설립 및 적용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대법원은 평가했다. 또 실제 재판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번 연구에서 파악하려 한다.
위자료 제도는 생명, 신체, 명예, 사생활 등 인격적 법익이 침해된 경우에 비재산적 손해를 금전으로 보상하는 것이다. 정신적 고통이라는 주관적이고 비정형적 손해를 금전으로 환산해야 하는 특수성을 가지므로 법학 외에도 경제학, 심리학, 뇌과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최근 가장 큰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위자료 분쟁은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이었다. 대법원은 지난달 상고심에서 재산분할 비율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파기환송했지만,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20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했다. 이혼 소송 위자료 역사상 최고액이다. 대개는 많아야 수천만 원 수준이었는데,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셈이었다.
1심에서는 1억 원이었는데 2심에서 20배 뛰어오른 것이다. 지난해 5월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최 회장과 동거인의 관계, 혼외 자녀의 존재를 외부로 알리는 과정 등을 짚으며 책임을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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