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육영수 피살' 사과?...박근혜가 이미 부인한 주장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6-09-30 17:03:29
영화 '암살자(들)' 논란…주진우·장동혁 '김정일이 사과했다' 주장
근거는 2002년 9월 일본 지지통신 보도…출처는 '베이징 소식통'
박근혜, "어머니 사건에 대해 들은 적 없다" 지지통신 보도 부인
2002년 방북 직후에도, 2007년 자서전에서도 인정하지 않아

23일 개봉한 영화 '암살자(들)'(감독 허진호)이 논란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1974년 8·15 저격 사건 관련 의혹을 다룬 이 영화의 설정 자체가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 영화 '암살자(들)' 메인 예고편의 한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그 일환으로 제기된 주장 중 하나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2년 육 여사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떠돌던 이 주장은 정치권으로 확산됐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27일 페이스북에 '김정일이 이 사건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사과했다'는 내용의 2002년 기사를 공유하며 "북한 소행임을 자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2002년 박근혜 대통령 방북 당시 북한 김정일이 직접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김정일은 '암살 음모는 하급자들이 관련됐으며, 나는 사전에 그런 음모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28일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육 여사 피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사실로 단정돼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상황을 되짚어보면 이 이야기는 근거가 불확실한 주장임을 파악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 후반부인 2002년 5월 11~14일 방북했다. 현직 국회의원이자,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으로서 신당을 만들던 때였다. 박근혜 의원과 김 위원장의 만남은 13일 저녁에 이뤄졌다. 두 사람은 속기사 1명만 배석한 상태에서 1시간가량 '단독 면담'을 한 후 양측 관계자들과 함께 2시간 정도 만찬을 했다.

14일 귀환한 박 의원은 기자 간담회, 인터뷰 등을 통해 김 위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하고 방북 소회를 밝혔다. 15일에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방북 전반에 대해 구술했다. 구술 내용은 16일 연합뉴스에 두 편의 기사('박근혜 위원장 방북기' 1·2)로 게재됐다.

주목할 것은 방북 직후 나온 수많은 기사들에서 '김 위원장이 육 여사 피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박 의원 본인이 그런 사과가 없었음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내가 북한 방문을 마친 뒤 일부에서는 '(1983년) 아웅산 테러, (1974년) 문세광 사건 등에 대해 북한의 사과를 받지 않고 김 위원장 말만 듣고 왔다'고 하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나의 방북은 사과 받으러 간 것이 아니다." ('박근혜 위원장 방북기' 2)

박 의원은 김 위원장이 자신에게 사과한 사건이 있다고 밝혔지만, 그 사과는 육 여사가 사망한 '문세광 사건'(8·15 저격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김 위원장이 사과한 사건은 북한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1968년 1·21사건이었다.

1·21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앞서 1972년 북한 최고 권력자 김일성이 비밀리에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이 사건과 관련해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며 사실상 사과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김일성 아들(김 위원장)'이 '박정희 딸(박 의원)'에게 직접 사과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방북 넉 달 후, 다른 주장이 제기됐다. 2002년 9월 13일 일본 언론인 지지통신은 김 위원장이 방북 당시 박 의원에게 "당신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암살 음모는 하급자들이 관련됐으며, 나는 사전에 그런 음모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남북 화해를 깨지 않도록 이를 밝히지 말아달라'는 당국의 요청에 따라 박 의원이 이 사실을 부인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주 의원이 '김정일이 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며 페이스북에 공유한 2002년 기사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같은 당 장 대표 주장의 근거가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보도에서 두 가지 점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출처가 '베이징의 소식통'이라는 것이다.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주장이라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박 의원이 이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보도 직후 박 의원은 측근을 통해 "1·21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기는 했으나 어머니 사건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 "회동 내용 공개 문제에 대해 정부 당국과 상의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5년 후인 2007년 7월에 출간된 박 의원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도 방북 때 육 여사 피살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안 나온다. 김 위원장이 1·21사건에 대해 사과할 때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과 대조적이다. 방북을 다룬 부분이 10쪽에 이르고, "어머니가 북의 사주를 받은 총탄에 돌아가셨고"라고 명시한 책인데도 그러하다.

이 자서전은 한나라당 제17대 대선 후보 선출을 한 달 앞두고 출간됐다. 후보 경선은 박 의원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팽팽한 접전 양상이었다. '김 위원장이 육 여사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박 의원이 사과 받은 사실을 뒤늦게나마 공개해 경선에 활용하는 방안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육 여사 피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2002년 방북 직후에는 그런 사과가 없었음을 분명히 했고, 그해 9월 일본 지지통신 보도가 나왔을 때에는 명백히 부인했다. 2007년 자서전에서도 기존의 그런 태도를 유지했다.

지지통신 기사를 인용 보도한 소수의 기사를 제외하면, 박 전 대통령의 2002년 방북을 다룬 수많은 기사들에 '김 위원장이 사과한 것은 1968년 1·21사건'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도 그 때문이다. '1974년 육 여사 피살 사건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고 서술한 이런 흐름은 2010년대에도 이어졌다.

 

▲ 국정 농단으로 탄핵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 31일 대구 수성구 수성못을 찾아 내란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20년 무렵 기류가 바뀌었다. '김 위원장이 육 여사 피살 사건에 북한이 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사실로 단정한 기사가 퍼져 나갔다. 이와 관련해 2020년 9월과 10월에 발행된 연합뉴스의 두 기사(이하 A·B기사)가 눈길을 끈다.

9월에 발행된 A기사는 북한 최고 권력자가 남한에 사과한 사례를 정리한 기사인데, 박 전 대통령의 방북 때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돼 있다. <당시 김 국방위원장은 1974년 공작원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 및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서도 "하급자들이 관련된 것으로,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그렇게 설명했다는 서술은 10월에 다른 기자가 작성한 B기사에도 똑같이 사실로 단정돼 등장한다. B기사에는 "이는 북한이 사건 28년이 지나서야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다"는 서술이 추가돼 있다.

A·B기사의 이러한 서술은 일본 지지통신의 2002년 9월 보도 내용(김 위원장이 "암살 음모는 하급자들이 관련됐으며, 나는 사전에 그런 음모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이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독자에게 전하는 것과 다름없는 형태를 하고 있다. 표현도 지지통신 보도와 비슷하다.

그 후 다른 몇몇 매체 기사에도 김 위원장이 "하급자들이 관련된 것으로,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는 똑같은 표현이 등장하게 된다. A·B기사처럼 이 얘기를 사실로 단정하고 표현까지 그대로 옮긴 경우가 더 많이 눈에 띄지만, 이 얘기 뒤에 '전해진다'라는 문구를 붙인 사례도 있다. '~라는 것이다' 형태로 이 얘기를 옮기면서 '북한의 자백으로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한 경우도 있다.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이런 기사들에는 특징이 있다. 첫째, 박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육 여사 피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2002년부터 여러 차례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급돼 있지 않다.

둘째, 김 위원장이 2002년 박 전 대통령에게 육 여사 피살 사건과 관련해 "하급자들이 관련된 것으로,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는 근거 자료와 출처가 무엇인지 명시돼 있지 않다. 예컨대 '박 전 대통령이 그때 김 위원장이 북한의 관여 사실을 인정하고 사실상 사과했다고 나중에 밝혔다' 또는 '김 위원장이 육 여사 피살에 대해 2002년에 책임을 인정했다고 북한에서 뒤늦게 밝혔다' 같은 설명이 있어야 자연스러운데, 그렇지가 않다.


셋째, 2002년 방북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직함을 '한국미래연합 대표'로 잘못 서술한 점도 눈에 띈다. 한국미래연합은 방북 후 창당됐고, 방북 당시 박 전 대통령 직함은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었다. A기사부터 '한국미래연합 대표'로 잘못 서술되고 그 후 다른 기사들에 그 내용이 검증 없이 그대로 옮겨져 생긴 현상으로 추정된다.

KPI뉴스는 A·B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이 2002년 박 전 대통령에게 육 여사 피살 사건과 관련해 "하급자들이 관련된 것으로,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는 근거 자료와 출처를 거듭 문의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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