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위 훈련,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장기현 / 2018-12-07 16:26:49
'민방위의 날' 훈련, 민간 대부분은 '남의 일'
실효성 없는 훈련 반복…체계적인 시스템 없어
"인센티브 고려해야…한 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서울시 종로구 한 사무실 안. 지난달 27일 오후 2시 민방위 훈련이 시작됐다. 훈련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이날 방송의 대피 지시에 따라 건물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10명 남짓. 평상시 민방위 훈련에 참여하는 인원이 딱 이 정도라고 훈련 담당자는 귀띔했다.

민방위 훈련은 무엇인가

행정안전부는 제409차 '민방위의 날'인 이날 국민들의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전국 화재 대피 훈련'을 실시했다. 지난달 9일 발생한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사고 이후 첫 화재 대피 훈련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공기관과 공기업, 병원, 학교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그 외의 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됐다.
 

▲ 지난달 27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열린 제409차 민방위의 날 화재대비훈련에 참여한 류희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민방위 훈련은 '민방위기본법'이 제정된 1975년 7월에 시작돼 벌써 40년 넘게 진행됐다. 1988년까지 연간 12회, 1991년까지 연간 9회 실시됐지만, 현재는 국민들의 불편을 고려해 연 4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예비군을 마친 만 40세까지의 민방위 대원이 참여하는 '민방위 교육·훈련'과 이번에 화재 대피 훈련 방식으로 실시된 '민방위 훈련'을 구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공익근무를 한 K씨는 "민방위 훈련은 단순히 예비군 다음에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화재 대피 훈련이 민방위 훈련의 일환이라는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경광봉을 들고 훈련 통제에 참여했지만, 제대로 참여하는 사람은 드물었다"며 "담당자에 따라 훈련의 강도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제406차 민방위의 날 훈련에 참여했던 회사원 K씨는 "훈련 담당자가 나와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따라 인턴을 비롯한 계약직 직원들 일부가 훈련에 동원됐다"며 "대피 훈련이 끝나고 담당자로부터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한 빌딩의 안전책임자 P씨도 "참여율이 저조해 피난 계획서를 들고 다니며 입주사 담당자에게 사인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내실 없는 훈련

적의 무력침공이나 자연·사회 재난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민방위 훈련은 매월 15일 '민방위의 날'에 전국에 걸쳐 일제히 실시하고, 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실은 매월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모든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지도 않다.

 

▲ 민방위 마크 [행정안정부 제공]


실질적인 민방위 훈련이 실시됐다면 국민들이 알고 있어야 할 것으로 소화기 사용법, 방독면 착용법, 대피소 위치 파악 등이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민방위 정책·기술개발 기획연구'을 보면, 일반 시민 1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화기 사용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람은 120명으로 83%에 이르렀다. 그러나 93%가 방독면을 소유하지 않고 있었고, 38%는 방독면 착용법을 모른다고 답했다. 대피소 위치를 모른다고 답한 사람은 74%에 달했고, 민방위 훈련 시 대피소로 대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21%에 지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유동인구가 많은 백화점, 영화관, 대형마트 등과 주요 터미널, 삼성, 현대, LG, SK 등 주요 대기업들이 민방위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커진 데 비해 매뉴얼과 관리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반 기업과 민간 빌딩, 주거 시설 등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은 민방위 훈련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빌딩 안전책임자 P씨는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국민안전처가 생기기 전에는 지금보다 더 엉망이었다"면서도 "지금도 민방위 훈련 관련 공문이 정기적으로 오지 않아 수시로 매스컴을 확인해서 훈련 일정을 확인한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민방위과 담당자는 "민방위 훈련은 시민들의 경각심을 고취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며 "올해 전국적으로 화재 대피 훈련 2회와 지진 대피 훈련 2회 등 총 4회를 실시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반 기업과 민간 건물의 경우 민방위 훈련을 강제할 수 없다"며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패널티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참여 독려 정도만 할 뿐"이라고 밝혔다.

없애야 하나?

전문가들은 현재의 민방위 훈련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전반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면서 '시민의 자발적 참여'만을 기대하기보다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체계적이고도 실제 도움이 되는 훈련이 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제409차 민방위의 날 홍보 포스터 [행정안전부 제공]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민방위 훈련은 공공 부분 위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고려해야 한다"며 "지금의 방식처럼 시민의식에 호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두더지 잡기처럼 중구난방식의 훈련 계획으로는 상황에 따른 다양한 훈련이 불가능하다"며 "체계적으로 구성된 1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로 훈련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우송대학교 소방방재학과 이동경 교수는 "현재의 민방위 훈련은 짧은 시간 동안 짜임새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효과가 떨어진다"며 "한 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진행되는 안전한국훈련과 통합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방위 훈련은 전국 단위로, 안전한국훈련은 지자체 단위로 운영되며, 안전한국훈련은 행정안전부가, 소방훈련은 소방청이 주관하는 등 통일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단일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제대로 된 훈련 계획과 통제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전처럼 안전불감증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시민의 몫으로 돌리면 안된다"며 "국가가 나서 시민 맞춤형 민방위 훈련을 제시하고,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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