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매체, '조국수호정신' 강조하며 '똘이 장군'으로 미화

김당 / 2019-06-26 15:08:42
北 관영매체의 6.25전쟁 보도…개전부터 '북침'으로 각색·왜곡 여전
'남침'을 북침에 대한 '반공격' '세계 경탄시킨 탁월한 전략'으로 왜곡

1978년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에 제작된 만화영화 "똘이 장군 – 제3땅굴 편'은 한국 최초의 반공 애니메이션이다. 숲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똘이가 늑대, 돼지 등으로 묘사된 공산당을 무찌른다는 내용이다. 


'똘이 장군'이 당시 실제로 발견된 제3땅굴을 소재로 삼아 흥행에 크게 성공하자, 이듬해 '간첩 잡는 똘이 장군'이 속편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제3땅굴은 전두환 당시 육군 제1사단장의 위수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의 총애를 받은 전두환이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영전할 수 있었다.

▲ 1978년 박정희 유신정권에서 아이들에게 반공 이데올로기를 고취하기 위해 제작된 한국 최초의 반공 애니메이션 '똘이 장군'(가운데)은 전두환 제1사단장 위수지역에서 발견된 제3땅굴(왼쪽)을 소재로 흥행에 성공했다. 전두환은 이듬해 보안사령관으로 영전하고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5·16민족상(안전보장부문)을 수상(오른쪽)했다. [국가기록원·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비명횡사하자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으로서 비상계엄 하에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육군 참모총장을 체포해 군권을 장악(12.12 군사반란)하고, 전군지휘관회의를 통해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해 권력을 장악(5.17 쿠데타)하게 된다. 제3땅굴 발견과 '똘이 장군' 흥행이 전두환의 집권과 무관치 않은 셈이다.

북한 매체, 6.25 발발 69주년 맞이해 사설, 해설, 회고담 등 쏟아내

6·25 한국전쟁 발발 69주년인 25일 북한 관영매체는 사설(社設)을 필두로 해서 보도기사와 해설기사, 6.25 발발 당시의 보도사진, 전시 가요 소개와 전쟁 노병의 회고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25일부 조선의 신문들은 미제에 의해 강요된 조선전쟁 발발 69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사설을 실었다”면서 〈노동신문〉을 인용해 "1950년대 조국수호 정신이야말로 피어린 항일의 불길속에서 창조된 백두의 혁명정신을 계승한 위대한 시대정신, 반제계급투쟁의 훌륭한 교과서다"라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또한 〈민주조선〉을 인용해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어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하고 인민의 운명을 구원하신 김일성 동지의 전승업적은 조국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고 보도했다.


▲ 노동신문은 25일 조국해방전쟁기념관 참관객들이 1950년 6월 26일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역사적인 방송연설을 하는 김일성의 사진 앞에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캡처]


하지만 6.25전쟁과 관련해 출처가 불분명한 사실과 거짓을 뒤섞어 보도하고,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등 북한 관영 매체들의 보도 행태는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예를 들어 '세계를 경탄시킨 탁월한 전략'이라는 노동신문 기명기사는 1950년 당시 김일성 수상이 미제와 남조선의 전쟁 도발에 '즉시적인 반공격'을 개시해 적들을 소탕했다고 보도하면서, 한 외국인을 인용해 "이것은 동서고금의 어느 전쟁역사에도 있어보지 못한 일이다. 이것은 현실화된 기적이다"라고 황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남침'을 북침에 대한 '반공격'으로 왜곡


6.25전쟁은 김일성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일으켰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은 올해도 여전히 '미제의 침략전쟁에 맞선 조국해방전쟁'으로 전쟁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또한 개전의 주체와 북침 사실을 숨기고 미제와 남측의 침략에 맞선 김일성의 '반공격', 즉 반격작전으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며 주민들에게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과 조국해방전쟁 사적지 같은 교양거점 참관을 독려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무력침범자들과 용감히 맞선 공화국경비대원'이란 기사에서 "적들의 불의의 침공에 대처하여 38도선 경비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우리의 영용한 공화국경비대 군인들은 치열한 격전을 벌리었다"면서 남측에 개전의 책임을 지웠다.


"6월25일 새벽 4시, 38도선 남쪽에서 무수한 불줄기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북쪽하늘로 날아왔다. 둔중한 포소리가 연이어 울리고 38도선일대는 삽시에 자욱한 포연속에 잠기었다. 가증스러운 침략자들은 미리 준비된 전쟁도발계획에 따라 38도선 전역에서 공화국 북반부에 대한 불의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 노동신문 25일자에 실린 '무력침범자들과 용감히 맞선 공화국경비대원'이란 기사의 사진(왼쪽)과 6.25전쟁 당시 1950년 7월 1일자 노동신문 3면에 실린 '전선과 후방에 통하는 뜨거운 맥박' 기사의 사진(가운데와 오른쪽) [노동신문 캡처]


신문은 이어 당시 가슴이 포탄 파편에 뚫린 신창식 군관이 가슴을 움켜쥐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전우들에게 "저 원쑤놈들을 반드시 격퇴하고 공화국경비대의 영예를 지키라!"고 부탁하면서 "전신의 힘을 모아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소리높이 외치었다"는 것이다.

노동신문, '북한판 똘이 장군' 수준의 각색과 왜곡 일삼아


한마디로 '북한판 똘이 장군' 수준의 각색과 왜곡이다. 북한에서 나름 권위를 인정받는 노동신문이 이 정도면 사실 다른 매체는 '안 봐도 비디오'다.


'영원한 역사의 진리 – 조선혁명박물관 조국해방전쟁시기관을 돌아보고' 제목의 노동신문 기사는 6.25 개전 당시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방송연설을 한 김일성 사진 앞에 선 관람객들에게 해설을 하는 박물관 강사의 말을 빌려 당시 전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1950년 6월, 미제침략자들에 의하여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세계는 조선의 운명을 두고 우려하였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6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비상회의를 여시고 인민군대와 인민경비대에 적들의 무력침공을 저지시키고 즉시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넘어갈 것을 명령하시었다.…(중략)…


지난 전쟁들에서의 경험을 보면 적의 약한 곳에 타격역량을 집중하여 승리를 마련해 나가는 것이 공격전의 상례로 되어왔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공격의 중심을 적의 약한 고리가 아니라 적기본집단이 집중전개되어 있고 화력밀도도 가장 높은 38도선 지역과 서울 일대로 정하시고 적들에게 강력한 타격을 안기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군사적 지략에 의하여 전쟁개시 3일만인 6월 28일에 진행된 서울해방작전은 이날 오전 11시30분에 우리 인민군대의 완전한 승리로 결속되었다."


김일성은 개전 이후 파죽지세로 서울을 침공했지만 이후 3일간 서울에 지체하면서 남하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그 3일 동안 북한의 토지개혁 요원 500명에게 소작농 상태를 파악하게 해 남한 소작농 126만 호에 토지를 무상분배 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김일성이 소련의 무기지원을 기다리느라 3일을 지체했고, 이 때문에 국군과 미군에 반격할 시간을 줘 승기를 놓치고 패전을 초래했다는 것이 6.25전사의 정설이다.

개전 직후 김일성의 방송연설과 전선탄원 운동 및 후방원호 열풍


노동신문은 또한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에 전시된 김일성이 전시에 탄 승용차를 주민들이 관람하는 장면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한편, 개전 직후 김일성의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방송연설을 계기로 전국에 번진 청년학도들의 전선 탄원운동 장면 사진을 실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1950년 6월 27일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2천800여명의 남녀 학생들이 전선으로 보내줄 것을 탄원한 것을 시작으로, 평양공대, 평양사범대, 평양음악학교, 평양미술학교, 평양농전 등을 거쳐 전국 각지로 확산되어 전쟁 개시 보름여가 지난 7월 11일 당시 전선출동을 탄원한 애국청년들이 74만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  노동신문은 25일 6.25전쟁 당시 김일성종합대 학생들을 비롯한 청년학생들이 전선에 보내달라고 탄원 운동을 벌이는 장면을 소개했다. [노동신문]


이 신문은 이어 "역사는 수많은 전쟁을 기록하고 있지만 온 나라 인민이 원쑤와의 판가리결전(죽느냐 죽이느냐를 판가름하는 치열한 싸움--편집자)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예는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시기에도 없었다"면서 "이것은 오직 수령의 위대성과 조국의 귀중함을 심장으로 절감한 우리 인민들 속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애국적 장거였다"고 칭송했다.


신문은 또 '후방인민들의 전선원호 열풍' 제하의 기사에 "조국해방전쟁 시기에 우리 인민의 대중적 영웅주의는 후방에서도 높이 발휘되었다"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교시와 함께 1950년 7월 1일자 노동신문 3면에 실린 '전선과 후방에 통하는 뜨거운 맥박' 제하의 기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각지 인민들은 많은 선물과 위안문을 전선장병들에게 보내달라고 각급 인민위원회에 의뢰해오고 있는데 (6월) 30일 정오 현재 평양시 각 구역인민위원회에는 평양시민들로부터 보내온 선물 10만여점을 접수하였다."

김정은 "조국수호정신은 주체조선의 넋이다"


노동신문은 또 '조국수호정신을 대를 이어 계승하고 빛내어 나가자'라는 사설에서 "1950년대의 조국수호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그대로 계승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교시를 인용하며 "조국수호정신은 우리 인민들에게 열렬한 애국심을 심어주고 영웅적 위훈에로 추동하는 주체조선의 넋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비롯한 교양거점들에 대한 참관과 전쟁 노병들과의 상봉모임을 자주 조직하여 침략자들을 무찌르고 승리를 안아온 1950년대 영웅전사들의 투쟁정신을 잘 알도록 하여야 한다"면서 "특히 자라나는 새세대들이 조국해방전쟁시기 침략자들이 이 땅에서 감행한 치떨리는 만행들을 절대로 잊지 말고 혁명의 대(代), 계급의 대를 억세게 이어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  노동신문은 25일 참관자들이 조국해방전쟁기념관에서 김일성이 전시에 이용한 승용차를 '가슴 뜨겁게' 돌아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캡처]


박정희 정권은 아이들에게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똘이 장군'이라는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장려했다. 하지만 '똘이 장군'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지금 북한에 가장 우호적인 이른바 '86세대'가 되었다.


북한 또한 69년 전 전시에 불렀다는 '조국보위의 노래'를 통해 청년들이 미제(美帝)와 남한에 대한 적개심을 전승하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관영매체를 보면, 북한에서도 새세대들에게는 6.25가 '잊혀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KPI뉴스 /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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