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별기획] 잔인한 역사 현장에서…'증오란 무엇인가'

UPI뉴스 / 2019-01-01 16:50:17
[장감독의 대륙횡단] Episode #7

2017년 9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년간 나홀로 SUV 차량을 타고 무려 46개국 7만9365km에 이르도록 종횡무진 대륙을 달린 사나이가 있다. 장용우. ‘왕초’ ‘호텔리어’ ‘행복합니다’ 등 수십편의 MBC, SBS 드라마와 JTBC ‘D데이’ 등 대작 드라마를 연출한 감독이다. 그가 이번엔 평생 꿈꾸어 오던 드라마형 로드다큐를 만들었다. UPI뉴스 온ㆍ오프라인 채널에 ‘장 감독의 대륙횡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유럽과 아시아 대륙 곳곳의 현장에다 온몸을 던져 이를 담은 영상과 기사. 그 장대함과 정교함 그리고 감동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편집자]
 

‘문섀도우’서 한잔하면 로망의 오르가즘에…


▲ 바위돔, 황금빛이 찬란한 이슬람 사원이 예루살렘의 한복판에 있다.


미국의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첫번째 꼽히는 길은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 그러니까 태평양 해안길 1번 국도이다.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이 기가 막히다. 특히 해질 무렵 하늘과 바다, 산과 들, 그리고 전봇대까지 황금빛으로 물든 길을 달리다 보면 가슴 가득히 황금빛 바람이 물결친다. 당신 옆자리에 앉은 그녀 또는 그놈도 눈부신 금빛으로 빛날 거라 장담한다. 달빛 가득한 밤이라면 갓길에 차를 세우고 언덕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해변을 걸어도 좋다. 배가 고프다고? 별 걱정을. 산타모니카 유원지에서 10여분 북쪽으로 달리면 ‘문섀도우 Moonshadow’라는 카페가 있는데 가격이 비싼거 빼고는 다 좋다. 음식도 맛있지만 제목 그대로 달밤에 테라스에 앉아 파도에 달빛 부서지는 소리 들으며 한잔하게 되면 로망의 오르가즘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잔인한 역사의 현장을 보면서 대답없는 질문을 반복한다


▲ 예루살렘 시내의 거리 풍경. 거리에는 딱 두가지 종류의 사람들만 보였다. 유대인과 관광객.

2006년 7월 28일 밤, 이미 몇군데 돌며 2차 3차까지 즐기고 꽤 마신 M은 마지막으로 문섀도우에서 한잔 더 하고 말리부의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자신의 새로 산 렉서스 LS430의 스피드를 즐기기로 했다. 많은 PCH(Pacific Coast Highway)가 그렇듯 말리부 구간도 편도 1차선인데다 꼬불꼬불 해서 제대로 속도 내기가 힘들지만 우리의 M은 매드맥스의 로드 워리어 출신 터프가이 아닌가. 제한속도 70km를 가볍게 넘겨 140km를 밟았다. LA카운티의 보안관 대리 제임스는 M의 차를 세우고 음주측정기를 들이 밀었다. 렉서스 조수석 바닥에는 종이 봉지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데킬라병이 있었다. 데킬라는 4분의3이나 남아있었지만 M이 “후~” 하고 불자 측정기는 캘리포니아의 허용 알콜농도 0.08를 훨씬 뛰어넘는 0.12를 기록했다. 처음에 보안관은 M에게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르면 수갑을 채우지 않을테니 잠자코 경찰차에 타라고 했지만 터프가이는 썩은 경찰차 따위에는 타지 않겠다고 버티면서 난리 블루스를 추기 시작했다. 수갑이 채워지고 차에 강제로 태워진 후 경찰서에 가면서 M은 헐리우드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그것도 여러번. “야 이 XX야 너 유대인이야? 유대인놈들이 이 세상 모든 전쟁에 책임져야 돼” “난 유대인때문에 F 됐어(F 학점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된건 수없이 되풀이 된 XX, 즉 F 워드가 아니었다. 많은 스튜디오 사장님, 제작자 투자자들, 법률가들, 무엇보다 미디어(신문, 방송)까지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 헐리우드 한 가운데에서 반유대인 발언을 우렁차게 떠들어 댄 건 현명치 못했다. 그의 발언은 세심한 보안관에 의해 녹음이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보석금 5000달러를 내고 풀려나고 부랴부랴 사과성명을 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유죄인정을 한 그에게 내려진 1300달러의 벌금과 3년간의 보호감호, 알콜중독자 교육, 사회봉사활동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로 1996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고 ‘리셀웨폰’ 시리즈로 아놀드 슈왈제네거나 실베스타 스텔론 같은 근육 덩어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지적 액션 스타로 반짝반짝 빛나던 이 호주출신 배우겸 감독은 그 후로 적어도 10년은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고전하게 된다. 그 스스로 인터뷰에서 “마치 외톨이 들개가 된 것 같았다”고 얘기했다. 멜 깁슨 이야기이다. 그 와중에 비버리 힐즈에 있는 유대인 회당의 데이비드 바론이라는 랍비가 성스러운 욤키푸르(유대인에게 매우 성스럽고 중요한 속죄일. 이 날은 아무것도 안한다.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 공부도 일도 안한다고…부럽다)에 멜 깁슨을 초대했다. 속죄의 기회를 준다는 말씀이었는데 얼마나 헐리우드적인 랍비인가. 물론 멜 깁슨은 대변인을 통해 정중하게 사양했다.


음주단속에 걸리기 전 그가 극본을 쓰고 감독했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는 전 세계에서 6억불이 넘는 흥행수입을 올렸다. 예수의 마지막 생애 12시간을 다룬 이 영화는 배우들의 대사를 전부 셈족의 언어인 아람어로 처리했다. 예수님이 사용했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등장인물 중 로마군사는 이태리 배우를 캐스팅해서 라틴어를 구사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영어를 전혀 쓰지 않았는데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예수를 죽인 유대인, 사악하고 비열한 유대인으로 묘사한 반유대적인 영화라는 이유로 유대인 공동체들은 비난을 퍼부었다. 그의 이후 행보는 악전고투였는데 2011년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그의 절친 조디 포스터가 감독한 영화 ‘비버’는 폭망했다. 물론 영화의 실패가 멜 깁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화 자체가 별로다. 하지만 그녀는 알콜중독을 치료하느라 고생하는 친구를 두둔해 주었다.

 

유대인들은 끔찍한 고난으로 자신의 역사를 써온 민족이다


▲ 수난을 재현하는 행사는 유대의 유산이 아니다. 어찌보면 유대의 땅에서 행해지는 반유대의 행위이다.


미국에는 약 500~700만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다. 유대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숫자가 왔다갔다 한다.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할 당시 귀환법(Law of Return)을 제정했는데 이에 따르면 조부모까지 거슬러 올라가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으면 인정, 유대교로 개종해도 인정, 애매하면 랍비가 인정해도 시민권을 주었다. 그러다보니 유대인 안에서도 다양한 인종이 생겨난다. 아랍인처럼 생긴 유대인(헨리 키신저, 우디 알렌), 유럽 백인 스타일(마크 저커버그, 스칼렛 요한슨), 아프리카의 유대인, 심지어 중국계 유대인도 있다.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2% 내외지만 GDP로는 20%가 넘는다. 돈이 많다는 얘기다. 그 유명한 금융가 로스차일드 가문을 비롯해 월가의 수뇌 상당수가 유대인이다. 원래 고리대금이 주업이었다. 뉴욕, 보스턴 등 동부지역에 많은데 그들의 안식일인 토요일이 되면 검은 코트 차림에 꽈배기 헤어 스타일, 중절모나 하얗고 자그마한 두껑 같이 생긴 유대인 전통 모자인 키파를 쓰고 시나고그(유대인 회당)로 예배 보러가는 유대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인구가 800만명(모두 다 유대인은 아니지만)이고 프랑스와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온 세상 유대인을 합쳐도 1400만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들은 현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에 다수 포진해 있는 게 틀림없다. 노벨상 수상자의 35%, 하버드 학부 재학생의 30%가 유대인이다. “미국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잘 보이는 손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 중에서도 할리우드는 유난하다. 로만 폴란스키, 우디 알렌, 스필버그, 바브라 스트라이젠드, 더스틴 호프만, 나탈리 포트만 등등 알려진 배우나 감독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유대인들은 시련으로 출발해서 고난, 그것도 끔찍한 고난으로 자신의 역사를 써온 민족이다. 시조인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의 막내 요셉이 이집트에 가서 출세한 이후 탈출과 도피, 방랑의 역사가 끊이지 않았다. 기원전 587년 온나라 백성이 바빌로니아에 잡혀 가서 70년간 노예생활을 했고, 기원후 70년에는 로마에 의해 자신이 살던 땅에서 쫓겨난다. 그들의 세종대왕이었던 솔로몬왕이 지었던 성전마저 파괴된 것도 모자라 아예 예루살렘 출입금지를 당했다. 한국사람이 서울에서 쫓겨나 제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로마인들이 선심 쓰듯 일주일에 한번만 출입을 허락했고 유대인들은 무너진 성전에서 유일하게 남은 서쪽 벽면에다가 머리를 짓찧고 통곡을 하였다. 그래서 ‘통곡의 벽’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억장이 무너졌을까. 더 복장 터질 일은 솔로몬 성전이 있던 곳에 그들의 ‘원쑤’들이 자기네들의 성전을 지어버린 것이다. 통곡의 벽이 있는 광장에서 나와 좌측 임시 가교를 올라서면 무그라비(Mughrabi) 게이트가 나온다. 그곳을 통과하면 성전산으로 향하는 길에 텅빈 광장이 있다. 솔로몬 성전이 있던 곳이다. 곧이어 황금빛 찬란한 돔이 보인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는 바위돔이다. 그는 이곳에서 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를 받아 하늘나라를 방문하고 왔다고 한다. 하늘나라를 방문했을 때 예수님도 만나고 모세도 만났었다고 한다. 유대인들 약 올리려고 작정한 스토리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의 고난은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로 정점을 찍는다. 히틀러가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나서는 더 이상 유대인을 비난하는 일은 금기가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한 민족의 고난을 넘어서 인류의 재앙이었기 때문에 가치판단과 논란을 초월하는 절대적 영역이 되었다.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유다민족의 4대 분파 중 중요한 둘을 지역에 따라 아슈케나짐과 세파라딤으로 나눈다. 아슈케나짐은 히브리어로 독일을 뜻하는데 문자 그대로는 독일계 유대인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주로 프랑스와 독일에 살다가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동유럽으로 이주하였다.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관대했던 폴란드를 비롯하여 헝가리,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러시아에 공동체를 형성했다. 세파라딤은 이베리아 반도, 그러니까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살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15세기 들어 대대적인 추방에 직면한다. 러시아에서는 1881년부터 매년 5만명의 유대인들이 추방된다. 1891년에는 11만명, 1892년에는 13만7000명. 1905년에서 1906년 사이에 대학살이 일어났고 20만명이 넘는 유대인이 러시아를 떠났다. ‘지붕위의 바이얼린(원제 Fiddler on the Roof)’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이다. 제정러시아 시절인 1894년에서 1914년 사이에 러시아 유대인 지역에 살던 ‘테비예와 딸들’(원작의 제목이기도 하다)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을 통해 유대인의 전통과 풍습, 가족애를 보여주는 아름답고 따뜻하며 신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그들의 마을 이름 아나테프카(Anatevka)는 가상의 마을이다. 원작자가 살았던 지역 등 여러가지 정황에 비추어 모스크바 근교라고 추정한다.

 

잔인한 역사의 현장을 보면서 대답없는 질문을 반복한다


▲ 비로바잔과 ‘지붕위의 바이얼린’의 유일한 연관성은 유대인 자치주라는 것이다. 이 뮤지컬(또는 영화)을 본 관광객들이 얼마나 될까.

 

러시아 혁명 이후 스탈린이 권력을 잡고 좀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스탈린이 유대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그들이 정착할 수 있는 땅을 준 것이다. 스탈린이 유대인을 좋아했다고?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의 첫사랑은 유대인이었는데 스탈린은 그를 시베리아로 보내버렸다. 척박한 새 땅을 개척하기위해 유대인을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어쨌건 스탈린의 명에 의해 지구상에서 단 하나뿐인 유대인 자치주가 생긴다. 놀라운 일 아닌가. 기원전 6세기부터 이러저리 잡혀 다니고 도망 다니던 유대인이 3000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영토를 갖게 된 것이다. 그것도 시베리아 연해주에! 1928년 시작된 이주는 1934년 정식으로 유대인 자치주가 성립되면서 점점 늘어나 1948년에는 3만명에 이르게 된다. 이는 자치주 전체 인구의 3분의1에 해당된다. 하지만 스탈린이 죽고,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또 다시 역이주, 그러니까 탈주가 시작되어 2010년에는 1628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곳이 비로바잔이다. 하바롭스크에서 약 150km 서쪽으로 달리면 만나게 된다. 이곳도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지나간다. 시나고그(유대교회당)도 있다. 하지만 호텔 지배인의 말에 따르면 랍비가 없어서 유대식 결혼을 하려면 이스라엘에서 랍비를 모셔와야 한다고 한다. 이 도시의 중심거리 이름 숄롬 알레이헴(Sholom Aleichem)은 ‘지붕위의 바이얼린’의 원작자 이름이다. 기차역에서 나와 우측으로 30m쯤 걸어가면 뮤지컬의 주인공 테비에가 마차를 몰고가는 동상이 있다. 러시아, 동유럽을 여행하면 유대인과 관련된 유적이나 흔적을 많이 만나게 된다. 슬프고 참담했던 그들의 과거를 마주하면서 아울러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또 다른 비극을 바라본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냉혹하고 잔인한 역사의 현장을 보면서 대답없는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증오란 무엇일까?”

2011년 10월의 어느날 밤, 멜 깁슨은 여자친구와 함께 말리부의 문섀도우를 다시 찾았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아무런 소동도 벌이지 않았으며 식사를 마친 후 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떠났다고 한다. 그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오만, 파키스탄 등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개봉되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아직 공식 개봉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흥미 없음’.

 

KPI뉴스 / 글·사진 장용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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