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이 만들 병든 사회…대중의 현명한 판단 필요

막말 정치는 한국에서만 유행하는 현상이 아니다. 포퓰리즘에 힘입어 집권한 지구촌의 일부 정치 지도자들은 소수그룹 및 약자에 대한 차별 및 혐오 발언을 일삼으며 자신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다.
국제 정치판 뒤흔드는 '막말 정치인'의 시대
정치인들은 고도로 정제되고 다듬어진 언어를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전하는 게 보통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의 대(對)독일 항전 연설, 마틴 루터 킹의 워싱턴 대행진 연설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는 시대를 뛰어넘는 명문으로 교과서에 등장하기도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대통령 취임 연설부터 8년 뒤 백악관을 떠나며 남긴 고별 연설까지 다수의 감동적인 명연설을 남겼다.
그러나 어느 시점인가부터 현실정치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공존이 아닌 혐오와 갈등의 언어가 국제 정치판을 뒤덮고 있다.
'막말 정치'의 대명사로 꼽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꾸준히 성적 모욕, 특정 집단을 향한 비하 발언 등을 남발하며 막말의 선두주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는 상대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제 남편도 만족을 못 시키면서 미국을 만족시키겠다고 하는 것이냐"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거친 언사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정 국가와 대륙울 '똥통(shithole)'이나 '거지소굴'에 비유하는 것은 예사고, 여성 비하와 이민자 배척, 백인 우월주의 등을 내세우며 선동적인 수사로 지지자들의 결집을 노렸다.
문제는 세계 곳곳에서 트럼프식 화법을 구사하는 지도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취임 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마닐라만에 물고기 밥으로 뿌리겠다" 범죄자 처형은 교수형으로 하겠다"는 등의 막말을 구사함으로써 '필리핀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선 "지옥에나 가라"며 욕설을 퍼붓고 "UN 인권 조사단이 필리핀에 오면 식인 악어들에게 던져버리겠다"는 등 외교적 막말로 물의를 빚었다.
"아름다운 여성이 많이 존재하는 한 강간 사건은 벌어지기 마련"이라는 말로 여성 비하 논란도 일으켰다.
브라질 극우 사회자유당(PSL)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대놓고 "나는 트럼프를 숭배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여성 비하와 인종차별적 언행을 보여왔다.
과거 군부 독재정권 시기에 행하던 고문을 지지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으며, "내 아들이 게이가 되느니 사고로 죽게 내버려 둘 것"이라는 등의 성소수자 모독 발언도 일삼았다.
유럽도 극우정당의 약진과 정치인들의 막말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동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유럽 내 반이민 정서를 확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는 "이민을 중단하지 못하는 나라는 패배하게 될 것" "이민자들이 우리의 안보와 생활방식, 기독교 문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등 난민·이민자 집단을 향한 혐오 발언을 지속적으로 내뱉었다.
막말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도 세르비아 접경지역에 높이 4m, 길이 175km의 대규모 방벽을 치며 난민 유입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막말로 인기를 끌었던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오스트리아 교통부 장관도 있다.
그는 시리아 난민 유입과 관련한 국민적 불안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 유권자를 공략했다. 라이트호퍼는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 정책들을 주장하고 난민 혐오 발언을 해 '트럼프의 쌍둥이'로 불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각국 '유사 트럼프'들이 배설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내는 형국이다.

막말이 만들 병든 사회…대중의 현명한 판단 필요
정치는 논리적 설득과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갈등 상황에 기름을 붓고 국민적 분열과 편가르기를 촉구하는 막말은 정치 냉소주의 및 정치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막말은 정치 혐오를 넘어 특정 집단을 겨냥한 증오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 11월 13일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 해에 미 전역의 증오범죄 건수가 17%나 증가했다는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이는 최근 10년간 기록된 수치 중 최고치이며, 통계에 잡히지 않은 증오범죄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인터넷매체 <버즈피드>는 샌버나디노 주립대학 증오범죄 및 극단주의 연구센터의 브라이언 레빈을 인용, 정치인의 막말이 증오범죄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존재하며 정치권은 그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설명한다.
막말은 '말'에 그치지 않고 이처럼 다양한 사회적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메시지와 정치적 비전이 빈약한 선동적 언어 그 자체도 문제지만 막말로 만들어질 병든 사회에서 대중이 치러야 할 대가와 희생은 크다.
미국 예일대학교의 역사학자 티모시 슈나이더 교수는 저서 <폭정>에서 정치인들이 혐오 발언을 동원해 증오심을 표출하고 거짓을 일삼는다고 지적한다.
또 20세기 독재 정권의 공통분모는 외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집단주의'였으며 이는 오늘날의 백인 우월주의, 이민자 혐오 발언 등으로 되풀이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슈나이더는 개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는 독자에게 혐오 발언과 선전 프로파간다(과장된 선전)를 외면해서는 안 되고, 여기에 동원되는 것은 더욱 안 된다며 독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사실에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정치인의 막말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현실을 외면하는 대중은 폭정에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국제사회에 횡행하는 막말에 대한 정치인들의 책임 의식은 물론 대중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K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