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전 '치킨게임'의 승자는?

김당 / 2019-07-29 14:56:17
[아베의 의도된 역사전쟁] ① 아베의 '혼네'와 '다테마에'
국제여론은 이미 '아베의 판정패' 예고
본향과 세습 정치, 우익 역사관, 북한이란 열쇳말

일본의 집권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총리대신은 지난 22일 자민당 당사에서 제25회 참의원 선거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날 선거에서 개헌에 필요한 의석수인 2/3 선을 넘지는 못했지만 과반 의석을 훌쩍 넘겨서인지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  아베 신조 일본내각 총리대신 겸 자민당 총재가 7월 22일 자민당 당사에서 참의원 선거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민당 홈페이지]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안정된 정치기반 위에 새로운 레이와(令和, 일본의 새 연호) 시대의 국가건설을 추진하라는 강한 신임을 받은 것"이라고 총평했다.

그는 이어 "이번 선거에서는 헌법개정도 큰 쟁점이 되었다"고 전제하고, "가두연설 때마다 헌법심사 논의를 진행하는 정당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논의조차 거부하는 정당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 선거라고 거듭 말씀드렸다"고 강조했다.

아베는 또한 "우리 당은 이미 헌법조항에 자위대의 명기, 교육 무상화 등 4항목에 대해서 헌법개정 초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적어도 '개헌 논의는 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국민의 심판이다"면서 "향후 헌법심사회에서 여야의 테두리를 넘어 진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입헌민주당 등 야당을 압박했다.

'레이와(令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베의 '부조화'

그는 이어 "중·참 양원에서 2/3 찬성이라는 개헌의 허들은 매우 높은 것이지만, 레이와(令和)의 시대에 어울리는 헌법개정안의 책정을 향해서 중·참 양원의 제1당으로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고 역설했다.


▲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4월 1일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고 있다. [AP 뉴시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1일부터 시작된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에 대해 "영어로는 '아름다운 조화(beautiful harmony)'"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일 관계에서 레이와 원년은 그 이름이 무색하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간의 외교전쟁이 '치킨(chicken) 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두 사람이 차를 몰고 상대를 향해 돌진하는 치킨 게임에선 먼저 핸들을 꺾은 사람이 겁쟁이(chicken)가 되고 끝까지 버틴 자는 승리자가 된다.

아베 총리는 7월 4일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대한(對韓) 수출규제를 단행하며 '한국과의 신뢰관계', '수출관리를 둘러싸고 부적절한 사안 발생' 등 두 가지를 이유로 들었다. 이후 아베는 '북한과의 관련성'을 시사하면서 안보 사안을 구실로 들기도 했다.

아베는 과반의석을 넘겼지만 개헌발의 의석수에는 부족한 '절반의 성공'에 그친 참의원 선거(7. 21) 직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결코 보복조치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선제적 보복 조치'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통념이다. 사법과 정치의 영역에 무역보복을 끌어들인 '나쁜 선례'를 만든 것이다.

'선제적 보복 조치'라 함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른 원고 측의 미쓰비시중공업 등에 대한 압류자산 매각 추진에 대비한 것임을 지칭한다. 압류자산 매각 추진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인 셈이다. 또한 일본은 이미 한국에 대한 '화이트 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배제 조치를 예고해 놓은 상황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은 일본에 더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가 발동되면 대항조치도 불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국 정부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카드와 함께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 한국은 한미일 3각공조의 한 축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경제나 무역의 무기화가 위험한 것은 정치와 애국주의라는 폭발성이 큰 인화성 물질이 글로벌 경제 시스템과 뒤섞이면 강경파의 득세로 타협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가깝고도 먼 이웃'인 한일 관계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취하기 전부터 한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의 비영리조직 '겔론NPO'가 올해 5~6월에 걸쳐 실시한 공동여론조사에 따르면, 양국 국민의 3분의 2는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고 느끼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 수출규제 이후 재팬뉴스네트워크(JNN)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수출규제에 찬성했고, 반대는 24%에 불과했다.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전화여론조사(7. 13~14)에서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가 '타당하다'는 응답(56%)이 '타당하지 않다'는 응답(21%)의 2.6배였다.

지금도 이미 정치권의 '애국 마케팅'으로 나빠진 양국 관계는 압류재산 매각 추진과 화이트 리스트 배제라는 '레드 라인'을 넘어설 경우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여론은 일본에 비판적…'아베의 판정패' 예고


▲  아베 총리는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경제가 세계 평화와 번영의 토대"라고 선언해 놓고, 이틀 뒤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AP 뉴시스]


사실 일본은 '경제동물'이라고 부를 만큼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수출주도로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본은 미중 양국의 '경제 무기화'로 인한 피해자였다. 그런 아베가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경제가 세계 평화와 번영의 토대"라고 선언해 놓고, 이틀 뒤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를 단행했으니 국제여론은 대체로 일본에 비판적이다.

미국의 보수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는 7월 2일자 도쿄-서울발 기사에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술을 차용해, 라이벌로 인식되는 국가를 상대로 정치 혹은 외교적 조치뿐만 아니라 그 라이벌의 핵심산업을 겨냥해 경제 제재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일부 분석가를 인용해 "일본이 제발등을 찍고 있다"고 맨 먼저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역시 '트럼프로부터 한 수 배운 일본, 한국 상대로 무역규제 활용'(7. 16)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의 조치는 무역 또는 경제적 이익이 무기화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로써 일본은 미국, 러시아 등 국가안보 문제를 무역 축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사용하는 대열에 합류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일본의 무역전사(戰士)'(7. 18)라는 제목의 도쿄 발 기사에서 "아베 총리는 느닷없이 화학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의 심사규정을 강화하며 트럼프처럼 행동했다"며 "아시아라는 정치적 지뢰밭에서 무역과 정치를 세련되게 분리시킬 줄 아는 일본이 지금은 나쁜 선례를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역시 '한일 무역 갈등은 트럼프의 영향을 상기시키는 것'(7. 19) 제하의 기사에서 "한일 무역 갈등은 경제 파트너를 학대하는 트럼프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는 신호"라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경제적으로 근시안적이고,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 맥락에 비춰보면 일본의 자해행위는 (트럼프보다) 훨씬 더 무모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심지어 <블룸버그> 통신은 '아베 총리의 대한국 무역전쟁, 가망없다'(7. 23) 제하의 사설에서 "아베 총리는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무역조치를 부당하게 이용했다"면서 "이로 인한 타격은 아베 총리의 명예실추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한일 무역전쟁의 승패를 예고했다.

그렇다면 자충수, 자해행위, 명예실추, 가망 없는 무역 전쟁 같은 국제여론의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국 때리기'를 고수하는 아베의 속내는 무엇일까?

겉과 속이 다른 아베의 '혼네'와 '다테마에'

일본인의 특성을 얘기할 때, 흔히 '혼네(本音,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 겉표현)'가 다르다고 말한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한국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지만, 일본에서는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일본에서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두 얼굴의 정치인들이 박수를 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 일본내각 총리대신이 그런 경우다.


▲ 독도사랑세계연대 회원 및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를 규탄하며 일본 아베 총리 사진을 자르고 있다.[정병혁 기자]


아베는 지난 2006년 9월 전후(戰後) 최연소이자 전후 세대 첫 총리(제90대)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어 1년 만인 2007년 9월 참의원(상원) 선거 참패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임했다. 하지만 2012년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함에 따라 5년 3개월 만에 다시 총리(제95대)로 취임했다. 아베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제45·48·49·50·51대)에 이어 전후 일본 정치사에서 두 번 총리에 오른 두 번째 인물이다.

이후에도 아베는 일본 정치사의 신기록을 제조하고 있다. 아베는 2017년 10월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여 98대 내각 총리대신으로 취임하였으며, 2018년 9월 20일에 있었던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3선 연임에 성공함으로써 2021년 9월까지 예정된 총리임기를 마치면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대신이 된다.

이미 헤이세이(平成, 1989~2019)와 레이와(令和, 2019~현재) 두 시대에 걸쳐 총리직을 수행하는 아베는 오는 8월 24일이면 쇼와(昭和) 시대(1926~1989년) 이후 총리 중에 최장수 집권 기록을 세우고, 11월 20일까지 총리직을 유지하면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를 포함해 일본 역사상 최장수 집권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인지 아베 총리의 언행은 주도면밀하면서도 거침이 없다.

과거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릴레이'는, 각료대신들이 '망언'으로 '혼네'를 드러내면 총리가 '사과'의 '다테마에'로 무마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아베는 '전후 세대 첫 총리'임을 과시하듯, 본인이 직접 '망언 릴레이'를 펼치거나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국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존재와 역할을 명기하는 개헌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자충수'와 '자해행위'라는 비판을 무릅쓰고서 이웃나라에 경제보복을 가하면서 '역사 전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베는 왜 주변국과의 마찰을 무릅쓰고 '역사의 역주행'을 강행하는 것일까? 역사의 정상궤도를 이탈한 폭주 기관사 아베의 '혼네'가 상정한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오늘의 아베 총리를 있게 한 일본의 세습 정치와 그의 본향, 우익 역사관, 그리고 주변국(특히 북한)의 존재라는 세 가지 열쇳말은 이런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KPI뉴스 /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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