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삭발의 시간, '국회의원 삭발史'

남궁소정 / 2019-09-24 14:38:18
삭발로 목표 이뤘나…성공과 실패의 역사
제1야당 대표·국회 부의장 '최초' 삭발

여의도에 다시 '삭발의 시간'이 돌아왔다. 올해 5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선거제·공수처 관련 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항의하며 삭발식을 거행한 지 불과 4개월 만이다. 투쟁의 명분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철회와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다.

이번 한국당의 삭발은 여러모로 전례가 없다. 대개 일회성 이벤트였던 이전 삭발들과 달리 릴레이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국회의원 삭발 역사상 극히 드문 여성 정치인의 삭발이 이틀간 세 차례나 이어졌다. 헌정 사상 최초로 제1야당 대표와 현역 국회 부의장이 장관 인사에 반발해 머리를 '빡빡' 밀었다.

삭발은 한국 정치의 독특한 투쟁 수단이다. 강력한 시각 효과로 정치인의 저항 의지와 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반면, '고리타분한 쇼'로 비칠 가능성도 내포한다. 역대 한국 정치권 삭발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19일 삭발을 한 (왼쪽부터) 송석준, 장석춘, 최교일, 이만희, 김석기 의원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삭발로 목표 이뤘나…삭발 투쟁의 성공·실패史

한국 정치에서 삭발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소기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한 경우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머리카락만 내놓고, 원하는 결과는 쟁취하지 못했다. 

 

정치판 삭발의 '원조'라고 불리는 박찬종 전 통일민주당 의원의 경우를 보자. 당시 박 전 의원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통일민주당에서 한배를 탔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분열하자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면서 삭발을 했다. 당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이후 두 번의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성과는 얻었지만, 단일화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한 게 사실이다.

1993년 김영진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도 정치권 삭발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까지 날아가 우루과이라운드에 반대한다며 삭발을 했다. 하지만 당시 협상 태도가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비판만 받았을 뿐 원하던 목표달성에는 실패했다. 1997년에는 김성곤 의원(새정치국민회의)이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며 삭발했고, 1998년에는 같은당의 정호선 의원이 나주시장 공천헌금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삭발했다. 그럼에도 정 의원은 2000년 4월 제16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2004년에는 설훈 의원(새천년민주당)이 삭발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설 의원은 당시 조순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자, 지도부 총사퇴와 탄핵철회를 외치며 삭발을 감행하고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설 의원은 끝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했고,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회의원들의 '삭발'이 '빛'을 발한 적도 있다. 2007년 한나라당의 첫 집단 삭발이 대표적이다. 당시 김충환·신상진·이군현 의원 등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3명은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삭발식 다음날 입장을 바꿨고, 결국 사학법 재개정안은 국회에서 통과됐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철회도 마찬가지다.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 등 충청권 의원 6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집단 삭발을 했다. 결국 그해 6월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2013년에는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5명이 정부의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에 반발해 함께 머리를 밀었다. 이때 김재연·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이 여성 국회의원으로는 처음 삭발했다. 그들은 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로 규정하며 강력 반발하며 삭발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결국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

 

▲ 5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법안 철회를 위한 삭발식에서 의원들이 삭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흠, 성일종, 윤영석, 이장우 의원. [뉴시스]

 

삭발 릴레이 놓고 시선 엇갈려

 
 
 

올해 들어서는 한국당이 삭발 투쟁을 활용하고 있다. 통진당 해산 이후 6년 만에 다시 '삭발정치'가 부활한 셈이다. 올해 5월 박대출·김태흠·성일종·이장우·윤영석 의원은 선거제·공수처 관련 법안 패스트트랙 처리를 저지하며 삭발했다.

이후 4개월 만에 조국 법무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10일 삭발을 했다. 이어 다음날 박인숙 한국당 의원과 김숙향 동작갑 당협위원장이 삭발을 했다. 황교안 대표가 16일 제1 야당 대표로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삭발을 했고, 17일에는 강효상 의원이, 18일에는 이주영 의원이 현역 국회 부의장으론 최초로 머리를 깎았다. 이날 5선 중진 심재철 의원도 삭발했다. 19일에는 김석기·송석준·이만희·장석춘·최교일 의원이 삭발했고, 20일 부산 장외 집회에서 이헌승 의원이 마지막으로 삭발대열에 합류했다.

 

▲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이주영 국회부의장, 심재철 의원이 18일 청와대 분수대 광장 앞에서 조국 법무장관의 사퇴 촉구 삭발식을 마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한국당의 삭발 릴레이를 놓고 정치권 시선은 엇갈린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저항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런 뜻에서 당대표가 결단한 것"이라며 "우리 투쟁의 비장함을 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박지원 무소속 의원은 "제1야당 대표의 삭발 충정은 이해하지만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며 "21세기 국민들은 구태정치보다는 새로운 정치를 바란다"고 쓴소리를 했다.

조국 장관 사퇴를 목표로 한 한국당의 집단 삭발이 '성공'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실패'로 끝날지가 검찰 수사에 달려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KPI뉴스 / 남궁소정 기자 ngs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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