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메신저 역할할 터"…이종걸"선거제도 개편 우선"
내년 1월 '노회찬 재단' 설립…'제2, 제3의 노회찬' 이을 것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이다. 국회의원은 법안 발의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간다.

고(故) 노회찬 의원은 2004년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127건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 의원이 걸어온 행보는 그가 대표 발의한 이 법안들을 통해 드러난다. 대부분의 법안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고 더 나은 공직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 의원은 2004년 국회에 입성한 후 ‘호주제 폐지법’을 맨 처음 대표 발의했다. 자녀가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성도 따를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노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호주제 폐지를 위해 노력했고, 이듬해에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 의원은 이후에도 장애를 이유로 차별당할 경우 구제받을 수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소방공무원이 직무수행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다 순직을 당할 경우 국가적 보훈 혜택을 주는 ‘소방공무원법 개정안’ 등을 발의하며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입법 행보를 보였다.

2018년 7월 23일 노 의원은 우리 곁을 떠났다. 3만 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국회엔 아직 그의 꿈이 남아있다. 20대 국회에서 노 의원이 대표 발의한 57건의 법안 중 39건(회송 1건 제외)이 국회에 남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①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
대학 시절에 노동운동에 뛰어든 노회찬은 대학 졸업장을 따기 전에 용접 기능사 자격증을 먼저 땄다. 국회에 들어온 후에도 그는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의 삶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노 의원은 비정규직 노동자, 소방관, 영세상인,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법안을 발의하는 등 노동자의 기본권 쟁취를 위해 노력했다. 2004년엔 삼성SDI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고, 삼성으로부터 '떡값'(뇌물)을 받은 전·현직 검사의 명단을 공개해 의원직을 상실하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도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노 의원은 2017년에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방산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보장하기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을 대표 발의했다.

올해 5월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고령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막고자 기술상의 지침과 작업 환경의 표준, 그리고 작업배치에서 고령노동자를 배려하도록 하자는 법안이다.
노 의원은 ‘노동인구 중 고령자와 준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고령노동자에 대한 배려 조항이 없다면 우리나라 고령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사고율은 끊임없이 높아질 것"이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노 의원이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와 KTX 복직 승무원들을 향한 축하 인사였다.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표 발의했던 이들 법안은 모두 20대 국회에 계류 중이다.
② 증세 없는 복지국가는 사상누각
다양한 세법개정안은 노회찬 의원이 국회에 남긴 대표적인 유산이다.
노 의원은 과세의 공정성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이를 통한 복지국가체제로의 전환을 꿈꿨다. 특히 노 의원이 관심을 쏟은 분야는 법인세법 개정이었다.
노 의원은 2005년부터 기업의 법인세와 관련해 총10건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20대 국회에서는 2건의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각각 '대기업 사내유보금으로 발생한 이자수익, 배당수익, 임대료 등에 대해 현행 법인세 외에 10%의 할증 과세를 부과'한다는 내용과 '현행 법인세 최고세율 22%(지방세포함 24.2%)를 25%(20억 초과 구간 대상)로 인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과세표준 1천억원 초과 법인의 최저한세율과 과세표준 100억원 초과 1천억원 이하 법인의 최저한세율을 현재의 17%와 12%에서 20%와 15%로 인상할 것을 제안하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도 함께 대표 발의했다.
복지국가를 위한 세수확보의 연장선상에서 세대를 건너뛴 상속 및 증여에 대한 할증과세율을 현행 30%에서 50%로 인상한다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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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정론관에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정의당 세법개정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노 의원은 2017년 11월 위의 세법개정안들을 발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의로운 복지증세 없이 복지국가를 이루겠다는 것은 모래 위에 100년 가는 집을 짓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 의원은 가진 자가 세금을 납부해 사회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조금 덜 가진 자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복지국가를 꿈꿨다. 그러나 법인세법과 상속세법을 포함한 총 7건의 세법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③ 선거제도만 바꿀 수 있다면 물구나무라도 서겠다
“시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국회, 그것을 가로막는 선거제도만 바꿀 수 있다면 나는 평생 국회의원을 안 해도 된다. 국회에서 물구나무라도 서겠다.”
노 의원은 사표(死票)를 줄이고 국회에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 개혁에도 힘썼다.
소속 의원이 6명인 소수당의 대표로서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폐해를 몸소 느꼈을 노 의원은 늘 선거구제 개편을 고민했다. 일례로 정의당은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7.23%의 득표율을 얻었음에도 300석의 의석 중 4석만을 할당받았다. 현행 소선거구제 다수대표제에선 이렇게 민심이 왜곡되어 반영될 수 있다.
이에 지난해 노 의원은 같은 당 심상정 의원과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정당득표율이 의석수에 정확히 반영될 수 있도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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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김성태 자유한국당, 김동철 바른미래당, 노회찬 평화와정의의 의원 모임 원내대표가 모인 '국회 교섭단체 원내대표 초청 개헌문제 토론회' [뉴시스] |
유권자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시킬 수 있도록 '결선투표제 도입법'을 두 차례나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결선투표제는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은 후보도 당선될 수 있다는 다수대표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다.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을 경우 1위와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노 의원은 2016년엔 대통령 선거에서 유효투표 과반을 넘긴 후보자가 없을 때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으로, 2017년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으로 결선투표제 도입법을 대표 발의했다.
노 의원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역시 국회에 계류 법안으로 남아있다.
다행히 국회엔 그의 꿈을 이어가려는 동료 의원들도 남아있다. 노 의원과 많은 법안을 공동 발의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과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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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대 정의당 의원 [뉴시스] |
2016년 정의당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김종대 의원은 고 노회찬 의원과 같은 정의당 소속 의원으로 활동했다. 김 의원은 노 의원의 발의한 모든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군사전문가인 김 의원은 방산업체 노동자에 관한 법안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공동 발의하고 토론회를 여는 노 의원과 뜻을 모아 정치활동을 했다.
김 의원은 노 의원과 함께했던 동료로서 국회에 남은 계류 법안과 노 의원의 유지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이야기했다.
김 의원은 노 의원이 발의했던 개혁입법에 함께하기로 했던 야당이 “촛불시위 지나고 나니 태도가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 의원의 계류법안에 대해 “정의당이 큰 당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며 취지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 또한 “노회찬 대표의 유지를 받아들여서 주변을 설득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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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회찬 의원과 경기고등학교 동창이자 50년 지기 친구이다. 고인과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각별한 사이기도 하다.
이종걸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노 의원의 법안 발의에 가장 많이 참여한 의원이기도 하다. 노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계류된 법안 39건 중 이 의원은 12건을 공동 발의했다.
이 의원은 공동 발의한 이유에 대해 “노 회찬은 전적으로 신뢰하는 동지였으며 진보노선의 외길을 걸었지만 유연성을 잃지 않았다”며 “민주당의 정체성과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 가급적 공동발의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그는 노 의원의 유산인 계류법안의 통과에 대해 쉽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만 그는 “선거제도를 개편해 정의당이 의석을 확보하고 원내교섭단체의 구성 요건을 완화해 정의당의 입장을 강력하게 반영할 틀을 만드는 것”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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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에서 이정미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두 의원 말고도 여러 의원들이 국회에서 고 노회찬 의원의 정치를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엔 노 의원이 마지막으로 발의했던 특수활동비 폐지 법안이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노 의원은 지난 7월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해 국회가 받는 불투명한 특수활동비를 전액 폐지하고자 했다. 국회 특활비는 그동안 사용내역이 공개되지 않고 결산 심사 규정이 미비해 논란이 돼왔다.
'깜깜이 예산'인 특활비 폐지를 주장한 노 의원은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정의당 원내대표로서 받은 특활비 3천여만 원을 자진 반납했다. 기득권 내려놓기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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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왼쪽부터) 원내대표, 문 의장,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8월 국회 법안 등 현안을 논의하기 앞서 손을 잡고 있다. [뉴시스] |
노 의원은 특활비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떠났지만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은 노 의원의 유지를 이어받아 특활비 폐지를 위해 노력해 성과를 이끌어냈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지난 13일 특활비 전면 폐지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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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회찬 의원이 발의를 준비한 미투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 [YTN 화면 캡처] |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노 의원을 대신해 ‘비동의 강간죄’를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이 법안은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원래 노 의원이 '미투 운동'(#MeToo)을 지원하고자 준비해오던 법안이다.
이 대표는 지난 19일 북한을 방북했을 당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정의당의 기념품과 노 의원의 저서들을 선물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당 차원에서도 내년 1월 노회찬 정치를 되살리고 진보정치인을 양성할 ‘노회찬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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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한 조문객이 쓴 편지가 놓여져 있다. [뉴시스] |
노회찬 의원은 평생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은 국회를 만들기 위해 의정활동을 펼쳤다. 그는 떠났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노 의원이 남긴 유산을 기억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록 그는 세상을 등졌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노회찬 재단이 설립된 뒤에 ‘제2의, 제3의 노회찬들’에 의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K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kpinews.kr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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