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무책임 논란보다 수면·섭식장애 원인진단부터

인간의 후회라는 게 원래 때가 늦은 법이라지만,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의 태도논란이 수면·섭식장애로 이어져 드라마 하차로 결론 나고 보니 어디쯤에서 일련의 사태를 멈출 수 있었을까 되돌아보게 한다. MBC 수목드라마 ‘시간’의 주연배우 김정현 얘기다.
지난달 20일 열린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김정현은 취재진을 향해 시종일관 무표정한 표정을 보여 태도논란에 휘말렸다.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으로 주어지는 것마다 열심인 서현이 곁에서 화사하게 웃음 짓고 있었기에 그 대조가 더 뚜렷했다. 하지만 김정현은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드라마 안이건 밖에서건 천수호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내 삶이 천수호로 많이 기운 상태”라고 설명하며 눈물을 보였고, 대중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재벌 2세 역할에 몰입한 영향으로 이해했다. 이때 양해하지 말아야 했을까. 삶과 연기를 분리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드라마를 망치고 보다 중요한 당신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을까.

드라마가 시작되고, 배우들의 호연이 이어지면서 태도논란은 잊혀져가는 듯했다. 비록 시청률은 2~3%대에 머물렀지만, 연출을 맡은 장준호 PD가 말하듯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극의 흐름과 캐릭터를 분석해 오고 스스로 스토리를 잘 전하기 위해 동선을 연구하고 대사를 수정하는 모범생 배우들이 넘치는 현장” 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25일 첫 방송 후 5주 동안, 광복절과 아시안게임 영향으로 결방을 거치며 32회 중 딱 절반, 16회까지 방송된 시점에서 난데없이 주연배우 김정현의 하차 소식이 들려왔다. 촬영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며 드라마 현장을 떠나 미국에 갔다 돌아온 여배우도 있었고, PD와의 불화로 끝내 하차해 여주인공 캐릭터에 다른 배우가 출연하는 촌극도 있었지만, 이번엔 너무 생경해서 두 눈이 번쩍 뜨여질 사유가 하차 배경으로 고지됐다. 수면장애와 섭식장애다. 말 그대로 잠을 잘 자지도 못 하고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 한다는 얘기다.
26일 김정현의 소속사 오앤엔터테인먼트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김정현이 건강상의 문제로 '시간'에서 중도 하차한다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그동안 작품에 누가 되고 싶지 않다는 김정현의 강한 의지로 치료를 병행하며 촬영에 임해왔고, 제작진도 배우의 의지를 최대한 수용하여 스케줄 조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작품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그러나 최근 심적, 체력적 휴식이 필요하다는 담당의의 진단에 따라 제작진과 수차례 논의한 끝에 결국 하차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하차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한 방송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김정현의 현재 상태에 관해 “잠도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하는 등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힘든 상태”라며 “드라마 제작진에 ‘더는 못 견디겠다’고 말했고, ‘32회까지 할 수 있겠느냐?’는 제작진의 물음에 ‘힘들 것 같다’고 하차 의사를 드러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 역시 “김정현이 ‘시간’ 제작발표회 이전부터 건강 상태가 좋지 못했다. (제작발표회) 이후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고 수면장애 및 섭식장애로 고통 받았던 사실을 언급했다.
수면장애는 비교적 증세가 많이 알려진 터. 섭식장애란 신경성 식욕부진증·신경성 과식증·비만을 포함한 식이 행동과 관련된 부적절한 행동과 생각의 문제로 생물학적·사회적·심리학적 요인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현은 이 가운데 식욕부진으로 못 먹는 쪽으로, 단순히 밥을 먹지 못해 기력이 없는 것을 넘어 구토 증세를 보이곤 했다는 현장 얘기도 전해졌다.

이에 관해 소속사 측은 말을 아꼈다. “건강 문제가 심각했다”는 것은 확인해 주면서도 “그러나 왜 섭식장애와 수면장애를 겪게 되었는지 및 일부 언론에 보도된 정신과 치료 여부에 관해서는 대답하기가 어렵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남자 주인공’이 수면장애와 섭식장애로 중도 하차하게 된 초유의 상황. 드라마 ‘시간’의 향후 제작 상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에 제작진은 “현재 총 32회 분량 중 24회까지 대본이 나왔다”고 알리며 극중 김정현이 연기한 천수호 캐릭터가 자연스레 퇴장하는 방향으로 대본 수정 및 촬영에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현 역시 남은 분량을 마무리하기 위해 촬영에 임하고 있다고.
이어 제작진은 “김정현 씨가 남은 촬영 부분은 최선을 다해서 임해 주고 있다. 작품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매 장면 열정적 연기와 함께 뛰어난 작품 분석으로 캐릭터를 잘 소화해 주었다. 빨리 회복해서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소속사의 대응, 제작진의 입장 발표와 별도로 26일 단독보도가 나온 이후 김정현을 사랑하는 팬들이나 드라마를 사랑하는 팬들은 사실은 같은 마음일 텐데 김정현의 하차를 두고 긍정과 부정의 반응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누구는 “건강이 최우선이다. 어서 건강부터 회복하라”고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누구는 “그래도 배우인데 주인공의 무게를 견뎠어야 한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누구 말만 옳다 누구 말은 절대적으로 틀리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캐릭터 과 몰입이 독이 되었다” “드라마 주연으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은 김정현이 건강을 회복한 뒤 제기해도 늦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쉽지 않게 잡은 지상파 드라마 주인공의 기회를 잡다 말고 놓친 그보다 우리가 더 안타까울까. 드라마 스토리 전개의 완성도와 재미보다는 사람의 목숨 값이 더 중하지 않을까.
오히려 ‘왜’ 섭식장애와 수면장애에 시달리게 됐는지 그 배경이 염려스러우나, 소속사 측에서 밝혔듯 김정현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 문제이므로 이 염려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묻어두려 한다. 김정현 자신과 소속사에서 심적, 육체적 고통의 시작점과 과정을 잘 헤아려 치유하고 극복해 낼 것이라는 염원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잘 넘어지는 것, 기왕 넘어졌다면 창피해 벌떡 일어나지 말고 몸을 살피며 찬찬히 일어나는 게 현명하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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