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거론, 아픈 가족사 공개 등 인권침해
미투 빗댄 용어로 미투 운동 희화화 지적도
유명 연예인의 가족이 과거에 갚지 않은 빚을 언론, SNS,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폭로하는 이른바 '빚투(#빚too·나도 떼였다)'가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고 있다.
'빚투'는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에 채무를 뜻하는 '빚'을 더한 합성어다. 지난 11월 래퍼 마이크로닷의 부모가 지인들에게 사기행각을 벌인 뒤 해외로 도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촉발됐다. 이어 도끼, 비, 마동석, 티파니, 김영희 등 연예인 부모나 형제 등 가족의 채무 불이행 연쇄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부모의 빚을 자식이 갚아야할 의무가 없기에, 피해자들의 무분별한 폭로가 도리어 연예인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에선 '빚투'라는 용어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여성들의 투쟁 언어인 ‘미투’를 희화화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연예인 가족 채무 불이행 연쇄 폭로 잇따라
지난 11월19일 마이크로닷의 부모가 충북 제천에서 지인들에게 22억원에 달하는 사기행각을 벌이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상에 퍼졌다. 이에 마이크로닷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소문을 퍼트린 당사자를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경찰 조사 결과 글 속의 신씨 부부가 마이크로닷의 부모인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피해자들의 증언과 증거들이 쏟아지는 등 사건의 국면이 달라지자 마이크로닷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출연 중이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현재 마이크로닷을 비롯한 그의 부모와 형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며, 마이크로닷 부모에게는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마이크로닷에 이어 지난달 26일엔 래퍼 도끼가 모친 사기 의혹에 휩싸였다. 도끼 어머니 김모씨의 중학교 동창이라고 밝힌 A씨는 김씨가 1000만원을 빌렸지만, 갚지 않고 잠적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A씨는 민사소송을 통해 대구지방법원으로부터 1155만4500원을 갚으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김씨가 아직까지 빚을 갚지 않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에 도끼는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SNS 방송에 출연해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해명 중 "1000만원 가지고는 집도 못산다. 1000만원…어차피 내 한 달 밥값인데. 불만 있으면 직접 찾아오시라. 1000만원 드리겠다"라는 발언을 해 지탄을 받았다. 이후 도끼는 피해자와 직접 만나 금액을 변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7일에는 가수 비 부모의 채무 불이행 의혹이 제기됐다. B씨는 자신의 부모가 비의 부모로부터 사기를 당해 2300만원을 받지 못했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B씨는 채무관계의 증거로 비 아버지 이름이 적힌 어음 사본을 공개하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비 측은 원만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의 아버지가 직접 나서 피해를 주장하는 측과 만났다. 하지만 만난 자리에서 상대 측이 공개한 차용증이나 약속어음 원본 등 채무와 관련된 그 어떤 자료도 확인하지 못했다며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상대방은 비 측에게 가족에 대한 모욕적 폭언과 함께 주장하는 원금의 4배인 1억원을 요구했다"고 전하며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반면 B씨는 "오히려 돈 얘기만 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비 측"이라며 "비 측의 공식적인 사과, 정확한 채무에 대한 변제, 언론을 통한 매도로 인해 부모님이 받게 된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한다"고 반박했다.
같은날 걸그룹 마마무의 휘인도 아버지의 빚 때문에 곤욕을 치뤘다. 이날 오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휘인의 아버지에게 약속한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 작성자는 '휘인 아버지가 2016년 2000만원의 돈을 갚지 않아 아버지 사업이 파산했다'면서 '이로 인해 힘들어하던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려 돌아가셨다'고 주장했다.
이에 휘인은 "이미 아버지와 수년째 교류가 없고 이번 사태와도 관련이 없지만, 가족들과 상의해 사태를 직접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8일에는 배우 차예련이 자신의 아버지가 진 빚을 대신 갚아왔다고 밝혔다. 이날 차예련 소속사에 따르면 차예련은 19세 이후 15년 간 아버지를 보지 못한 채 지냈고, 10년 간 빚을 대신 갚아왔다. 그가 아버지 대신 변제한 금액은 무려 10억원 정도다. 그는 "연예인인 내 이름을 믿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줬다더라. 책임감을 느껴 빚을 내서 갚기도 했다"고 피해자와 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배우 마동석도 아버지의 사기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달 29일 한 매체는 마동석 부친이 과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김모씨의 돈 5억원을 빼돌렸다고 보도했다. 소속사 측은 당시 마동석의 부친이 피해자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법원 판결에 의해 변제해야 할 금액을 모두 지급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어 마동석 측은 아들로서 법적·도의적 책임을 끝까지 다하겠다고 했다.
마동석 부친의 법률대리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마동석의 아버지가 2010년 회사를 경영할 당시 사업 계좌를 맡았던 임원이 잠적했고, 마동석의 아버지는 그 임원이 이 사건을 일으킨 게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라며 "마동석의 아버지는 직접 돈을 받은 적이 없고, 회사 대표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형사 재판에 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피해를 주장하는 측은 "마동석 측 공식입장은 사실과 다르다"라며 "해당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현재 증빙자료를 추가로 더 모아서 재고소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2일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방송인 이영자의 가족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이는 "실제로 이영자가 와서 오빠와 아빠를 도와달라는 부탁에 일면식도 없는 이영자 가족에게 코너를 맡겼다. 그러던 중 이영자의 오빠는 1억원의 가계수표를 빌려간 뒤 도주했고, 이영자에게도 연락을 취했으나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적반하장으로 욕을 했다"고 적었다. 이어 "오빠는 재산이 없으니 3000만원을 받고 고소를 취하하라는 협박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청원 글을 게재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영자의 소속사는 다음날 "이영자가 관여된 바 없으며, 합의를 통해 이미 해결된 사안이지만,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4일 소녀시대 티파니 아버지 황모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황씨가 필리핀에서 회사를 운영할 당시 수천만원을 지급했으나, 사업 내용이 사실과 달랐고 돈을 돌려달라는 요구에 오히려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에 티파니는 입장문을 내고 "데뷔 이후에도 내가 모르는 상황에서 일어난 채무 문제들로 협박을 받았다"며 "여러 차례 금전적 책임을 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라 아버지와 관계를 정리하고 연락이 두절된 지 7년 정도 됐다"고 밝혔다.
지난 15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상에 개그맨 김영희 부모와 관련된 채무 불이행 글이 급속도로 퍼졌다. 피해를 입었다는 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김영희 부모에게 6600만원을 빌려줬으나 갚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일 김영희 소속사는 "김영희 부친이 1996년 모친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며 "김영희 모친이 채무를 이행 중이며, 김영희 부모가 20년 전부터 별거해왔기 때문에 김영희는 이 사안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피해를 주장하는 측은 돈을 건네받은 당사자가 부친이 아닌 모친이라며, 차용증에는 김영희 모친뿐 아니라 부친의 이름도 적혀 있다고 반박했다.
김영희와 모친은 한 매체를 통해 지난 10월부터 조금씩이라도 피해자 부모의 빚을 변제해 왔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 측이 "10만원이 통장에 입금된 것은 지난 12월3일"이라고 반박하면서 '거짓 해명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밖에도 가수 김태우, 윤민수, 배우 박원숙, 안재모, 한고은 등도 '빚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연예인 가족 빚 폭로가 무분별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가족 빚 변제 의무 없어…연좌제·명예훼손 등 연예인 인권 침해 문제도
일부에선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연예인이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가족 채무 문제에 거론돼 명예가 훼손되고, 금전적인 손해까지 입는 '빚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폭로를 할 만큼 간절한 피해자의 심정이 이해할 여지는 있지만, 채무에 대한 연좌제 문제와 함께 인권 침해 문제도 있다는 지적이다.
'빚투'의 대상이 된 상당수 연예인들은 본인의 잘못이 아닌 경우뿐 아니라 아예 인지조차 못하고 있던 가족의 채무 문제에 갑자기 이름이 언급되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연예인들은 해명을 위해 원치 않는 가정사까지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가수 휘인과 배우 한고은, 차예련, 조여정은 부친과 관련된 채무 문제 해명 과정에서 부모의 이혼 사실을 밝혔다. 티파니, 휘인, 차예련은 오랜 기간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은 사실까지 대중 앞에 드러내야 했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가수 김태우 장인과 관련한 폭로 글은 지나치다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해당 사건은 26년 전 벌어진 일로, 김태우가 결혼은 물론 가수 데뷔도 하기 전이다. 김태우 측은 해명 과정에서 장인과 장모가 이혼한 상태이며, 2011년 결혼식 당일에도 장인은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야 했다. 일반인인 아내의 가족사까지 드러낸 것이다.
법적으로 자녀가 연대보증을 선 것이 아니라면 부모의 채무를 대신 갚아야 할 의무는 없다. 빚을 진 부모가 사망할 경우에도 자식이 상속을 포기할 경우 법적으로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지목된 연예인 중 연대보증을 섰다거나 빚까지 상속받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폭로는 끊이지 않고 있다. 변제 의무가 없음에도 채권자들이 연예인들을 거론하는 이유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연예인의 경우 이미지가 중요한 탓에 사안을 빠르게 마무리 지으려 한다"며 "연예인 가족에게는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보이므로 폭로를 해서라도 돈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무분별한 '빚투'로 인한 명예훼손 문제에 대해서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실을 공포할 경우에는 처벌받지 않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실을 제3자에게 드러낼 경우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빚투'는 피해자의 고통 자체를 조롱하는 용어
한편에선 '미투'에서 비롯된 '빚투' 용어가 어렵게 용기를 내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한 여성들의 용기를 퇴색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는 '나도 성폭력을 당했다', '성폭력 경험을 말할 수 있다'로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용기를 주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현상을 고발한다는 의미"라면서 "하지만 '빚투'는 피해자들의 고통 자체를 조롱함으로써 삭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절대 쓰면 안 되는 용어"라고 강조했다.
KPI뉴스 / 황정원 기자 h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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