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이웃을 성찰하며 우리가 상실한 것들 살피는
보다 넓은 사회 속 인물과 공간으로 확장된 단편들
"이제는 소설에 대해 제 목소리로 얘기하는 느낌"
소설가 김애란이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문학동네)를 펴냈다. 대학문학상에 뽑혀 일찍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펴낸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 이후 20년 만이다. 유머와 페이소스를 곁들인 판타지 작법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젊은 김애란도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선 중후한 연배에 이르렀다. 소설도 연륜을 담아 함께 깊어졌다. 이번 소설집은 '바깥은 여름' 이후 8년이나 걸렸는데, 그는 개인이나 주변에서 소재를 취하던 상태에서 나아가 보다 넓은 사회의 인물들과 문제로 시선을 옮기는 과정에서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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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 만에 새 소설집을 묶어낸 김애란. 그는 "더 넓은 사회와 인물로 시선을 옮기는 데 시간이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이승재, 문학동네] |
김애란의 말처럼 이번 소설집은 자연스러울 수 있는 '부에 대한 욕망'이 이제는 거의 '존경과 숭배'의 분위기로 과열된 세상의 쓸쓸한 현주소를 다양한 각도와 인물들을 통해 드러낸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7편이 수록됐는데 '좋은 이웃'의 화자는 '동시대인과 어떤 가치와 속도를 공유한다 믿은, 그런데 그게 틀렸다는 걸 막 깨달은 사십 대'이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소식에 마음이 닫힌다.
같은 눈높이에서는 괜찮았는데 올려다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상한 셈이다. 분명 그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좋은 소식인데도 마음이 허전하고 휑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정리하려고 문간에 내놓은, 젊은 시절 남편이 보던 소설을 우연히 들추다가 밑줄 그은 한 대목을 눈으로 천천히 따라 읽는다. 그것은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라는 대사로 이어지는, '1970년대 한 작가가 슬픈 마음으로 쓴 소설'이었다. 결국 그가 상실한 것은 좋은 이웃이 될 수도 있었던 '우리'라는 자각이 뼈아프다.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 앞에서 나는 손에 쥔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_ '좋은 이웃'
-오랜만에 나온 소설집이다. 그동안 소설에 대한 시각도 조금 달라진 건가.
"독자로나 창작자로서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경험하는 이야기를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소설을 써 온 경험이 몸에 쌓이면서 예전에는 머리로 이해하거나 그냥 바깥에서 들은 말로 소설에 대한 대답들을 할 때도 많았는데, 지금도 충분치는 않지만 창작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소설에 대해 제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예전에는 생각 위주로 얘기했다면 지금은 그 생각이 몸 안에 좀 더 녹아든 느낌이다."
-이번 소설집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가.
"묶고 나서 돌아보니 데뷔작 '노크하지 않는 집'(2002 대학문학상 수상작)처럼 내 출발은 방이었다. 그걸 긴 시간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이어 쓰고 다시 쓰기를 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나이를 먹는 만큼 그 공간도 집으로 바뀌었다. 초기에는 방이 작아서 겨우 옆방의 기척이나, 멀리 나가본 세계라는 것도 동네에 국한됐다면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의 크기도 방에서 집으로 커진 동시에 그 바깥 크기도 더 커진 것 같다. 초기작들은 아무래도 청년 특유의 자의식이 많이 들어가 나에게 집중했다면, 그것도 다른 사람 우리 얘기로 커진 것 같다."

김애란의 말처럼 이전 소설집 '바깥은 여름'이 주로 청년 세대에게 위로를 건네는 정서의 바탕이었다면, 시간을 두고 나온 이번 소설집은 30~40대 생활인들이 자연스레 포진하고 있다. 작가와 함께 작중인물도 달라진 셈이다. 그는 "또 이렇게 한 시절이 묶였구나 싶은 감회와 함께 이 정도 이 세월이 이 책의 무게라는 이상한 마음도 든다"고 덧붙였다.
이연은 무대에서 중요한 대사를 치기 전 순간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며 거실 창문 너머 하늘을 봤다. 미세먼지 탓인지 달이 비현실적으로 붉었다.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_ '홈파티'
첫머리에 내세운 '홈파티'는 계급 내지는 계층에 따라 다른 속내와 표 나지 않는 위계를 '뾰족하게 '묘파한다. 이른바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난 이들이 팬데믹 국면에서 한 집에 모여 그들끼리 교류하는 식탁이 무대로, 시종 긴장이 유지되는 '전투'가 이어진다. 가구를 조립하러 온 아저씨까지 시종 주식 시세를 들여다보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대출 상상력'과 '금융 감수성' 운운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연극배우 '이연'은 심하게 거북하다. 결국 소수의 정보력을 갖춘 이른바 7%에게 저들의 쌈짓돈은 털리고 만다는 암시가 섬뜩하다. 이 단편의 마지막은 모처럼 용기를 낸 이연의 저격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가 다시 역전되는 말미의 아이러니가 압권이다.
-'몸이 차가우면 더 이상 얼어붙지 않는다'는 '보이체크' 인용 대목이 서늘하다.
"부를 일구는 과정이나 수단에 대한 감수성도 달라져서 당연히 투자든 뭐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직장인들이나 노동자들에 대해 그런 노동 가치에 대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분위기가 용인될 수는 없다. 똑같이 부를 이루는 과정이라 하더라도 근면한 사람들을 바보처럼 여기는 분위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경제가 선순환되고 모두가 풍요로워지고 몸이 따뜻해지는 결과로 이어지면 무방하지만 이 게임의 귀결이 대체로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빼고 모두가 결국 추워지는 지는 게임으로 갈 확률이 높은데, 다 추워지면 뭐 춥지 않을 거라는 자폭하는 태도로 다시 그 부에 몰입하는 느낌이다."
'숲속 작은 집'에서는 공간을 해외로 옮겨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계급이 달라지는 미묘한 상황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김애란은 "여러 위치에 있는 인물들의 사정을 보여줌으로써 작품집의 균형을 잡고 싶었다"면서 "비교적 여유롭다고 할 수 있는 부부의 지리적 공간을 넓혀서 결국 언어 권력도 돈에서 나오는 상황을 포착했다"고 말했다. 돈과 이웃을 살펴보는 정조가 바탕의 중심인 이번 소설집에서 '빗방울처럼'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흔히 거론되는 '전세사기'가 어리숙한 이들에게만 닥치는 재난이 아니라 사기꾼들이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속여 넘길 수 있는 구체적 정황을 문학으로 녹여내면서 '비는 한 집 위에서만 내리는 게 아니다'는 카메룬 속담을 방증한다.
-사회적인 이슈를 문학으로 용해했을 때 설득력은 훨씬 크다.
"다 같이 풍요로워지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주 소수이고 이 과정에서 치러야 할 대가는 결국 이 사회와 구성원들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비용이다. 비는 딱히 불행한 한 사람의 지붕에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으로 인한 이익은 소수가 갖고 빗방울들은 무관해 보이는 우리 머리 위에도 떨어진다. 때로 나의 안녕과 공동체의 안녕은 무관한 게 아니다. 모든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함께 치러야 하는 우리 모두의 재난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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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애란은 "예전에는 생각 위주로 얘기했다면 지금은 그 생각이 몸 안에 좀 더 녹아든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승재, 문학동네] |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는 원어민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화자를 등장시켜 '안녕'이라는 말의 복합적인 의미를 매개로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조다. '레몬케이크'는 작가의 말처럼 크로키하듯 부모 세대의 일상을 톺아보며 삶의 팍팍한 진상을 살피고, '이물감'에서는 역류하는 내장의 물질을 상징적으로 내세우며 자신의 생각을 되새김질하는 쓸쓸한 중년의 일상을 그려낸다.
김애란은 "그동안 나는 상실이 무언지 모른 채 상실을 쓰고 부재가 무언지 모른 채 부재를 써왔다"면서 "저는 소설 속 인물처럼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인 양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먼 곳의 수신인을 향해 그들이 결코 들을 수 없는 사과를 하기도 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이어지는 깨달음.
앞으로도 저는 여전히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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