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의 '민부론' vs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류순열 기자 / 2019-09-25 21:08:25
민부론은 이명박의 747, 박근혜의 줄푸세와 다른가
'자유시장 시대' 연 애덤 스미스는 민부론에 동의할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2일 한국당의 경제 비전, '민부론'(民富論)을 발표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1723∼90)의 국부론(國富論)을 패러디한 듯 하다.

 

"조국 물러나라"며 삭발한 김에 '황티브 잡스'(황교안 + 스티브 잡스)로 변신해 18세기 천재 애덤 스미스를 21세기 대한민국 정치 한복판으로 호출한 것이다.

 

민부론은 다시 '자유시장'을 부르짖는다. 이명박의 '747', 박근혜의 '줄푸세'와 뭐가 다른 것일까. 시장자유주의를 확립해 '위대한 19세기'를 이끈 애덤 스미스는 민부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1776년 초판본.[네이버 지식백과] 

 

165쪽 민부론 vs 950쪽 국부론


자유한국당의 '2020 경제대전환: 민부론(民富論)'은 '국부론'을 계승한다. 총론적으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주장한다. "국가 주도형 정책을 폐기하고 개인과 기업이 주도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경제 방향을 전면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권의 국가주도, 평등지향의 경제정책을 시장주도의 자유시장경제로 대전환시키는 것으로, 국민과 기업을 부유하게 만들고자 하는 방향"이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복지에도 냉담하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모두 책임지겠다는 퍼주기식의 포퓰리즘 복지는 잘못된 국가만능주의"라고 비판했다. 구체적 목표로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가구당 연간소득 1억 원, 중산층 비율 70%라는 3대 목표도 제시했다.

 

이러한 핵심 내용을 놓고 보면 새로울 것은 없다. 과거 집권 당시 추진했던 친기업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747'(연평균 7% 성장, 10년뒤 1인당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박근혜의 '줄푸세'(세금·정부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를 연상케 할 뿐이다.  황 대표는 "과거 낙수정책이 새로운 시대 비전이 되기도 어렵다. 이제는 '유수정책'이 필요하다"며 차별화를 주장했지만 뭐가 다른 건지 그 내용은 모호하다.

 

민부론에 없는 것…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가 쏙 빠졌다. '경제력 집중',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해법이 없다. 민부론은 대기업 집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했던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풀고, 대기업집단의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의 규제도 완화하자는 내용이다.

 

현재 당면한 글로벌 경기 둔화, 미중 무역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일본의 수출규제, 영국의 브렉시트 등 대외 여건의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자유경쟁 원칙만 내세우면 대한민국 경제가 대전환되고 정부의 과보호에서 벗어나 활력을 되찾을 것처럼 선전했다"는 비판(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에 대해 국가만능주의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인데,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중 정부 예산의 복지지출이 비중이 거의 꼴찌 수준인 상황에서 적절한 인식인지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양만 내세울 뿐 질에 대한 고민이 없다. 어느 경제학자는 이를 '사이즈 콤플렉스'라고 압축해 설명했다. '남근사상'이라고도 했다. "왜 그렇게 숫자에 집착하는가. 아직도 사이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잠재성장률 하락, 양극화 심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체질 전환을 고민해야 하는데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1% 위한 민부론, 99%는 민폐론"


야당은 혹평을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은 "747의 판박이, 줄푸세의 환생"이라고, 정의당은 "1%를 위한 민부론, 99%는 민폐론"이라고 비판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747과 줄푸세, 공히 노동과 복지는 제쳐두고 재벌 대기업 중심의 성장 일변도 정책이자 낙수정책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노동시장 유연화하자는 황교안 대표의 '민부론'은 재벌과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1%의 '민부론'이며 대다수 국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99%의 '민폐론'"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이름은 도용하고, 내용은 가짜인 위작(僞作)"이라고 혹평했다. "민부론은 2006년부터 본 의원이 줄곧 주창해 온 이론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민주당의 정신이 담긴 이론"이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한국당의 민부론은 친재벌·반노동,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를 부활하겠다는 것으로 특권경제 부활론"이라면서 "이런 특권경제 부활론을 감히 민부론으로 이름 붙여 새로운 경제이론처럼 포장하는 것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겉포장은 민부론이라고 했지만 야당이 2020 경제 대전환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제시한 민생 방향은 만생 파탄론"이라고 비난했다. 정 대표는 "내용을 보면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 가자는 것"이라며 "제1야당의 민생 파탄 노선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 애덤 스미스 초상화(왼쪽)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한 저택 자리를 기념하는 동판. "이 자리에 그의 어머니의 집이 서 있었고, 그 안에서 애덤 스미스가 1767~1776년까지 거주하면서 국부론을 완성했다"고 새겨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애덤 스미스는 콧방귀 뀔까


"애덤 스미스가 무덤에서 콧방귀를 뀔 일이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렇게 혹평했다.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때의 자유경쟁적 자본주의의 원리를 2019년 대한민국 경제에 적용하려는 용기가 가상하다"면서.

 

애덤 스미스(1723∼90)는 누구인가. 스코틀랜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로, 경제학의 선구적 명저 '국부론'(1776)으로 유명하다. 뉴턴이 물리학에, 다윈이 생물학게 크게 기여한 것 처럼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에 큰 기여를 했다.

 

국부론은 당대의 보호무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혁명적 저서였다. 자유무역, 자유거래가 국가간이나 국내 개인간 양 당사자에게 모두 이익이 된다는 주장과 이론을 폈다. 그런 자유를 정부가 관세나 조세로 간섭하고 제한한다면 국민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보다 더욱 빈곤하게 할 것이라는 게 애덤의 생각이었다.

 

이런 주장은 기존 경제시스템과 경제철학을 뒤집는 것이었다. 당시 경제시스템의 철학과 이론은 중상주의(重商主義)였다. 이는 외국에서 재화를 수입하는 것은 자국에 해로운 것이라는 인식이다. 국가의 부는 금·은 저장량인데, 수입품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자국이 보유한 금과 은을 내줘야 하며 그 결과 자국의 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자국의 재화를 외국에 수출하는 행위는 좋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니 중상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국가간 교역은 제로섬이다. 수출국이 부를 쌓으면 수입국은 그 만큼 빈곤해진다. 그래서 자국의 부가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종 규제 조치, 이를테면 수입품에 대한 관세, 수출업자들에 대한 보조금 등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거대한 장벽들을 세워나갔다.

 

애덤 스미스는 이 거대한 중상주의에 맞선 혁명적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날씨가 나쁜 스코틀랜드에서 와인을 생산하려면 프랑스 등지에서 수입하는 것 보다 비용이 30배 더 든다. 스코틀랜드의 와인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외국 와인 수입을 금지하는 게 합리적인가?"

 

애덤은 자유로운 교환, 자유무역이 양 당사자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16세기 이래 유럽을 지배한 중상주의를 허무는 역사적 대전환을 이끌었다. 자유무역과 경제 팽창을 이룬 '위대한 19세기 시대'를 애덤이 연 것이다.

 

애덤은 자신의 이론에 반하는 작금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경제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에 대한 고민을 건너뛴 민부론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도덕을 중시한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의 경제철학은 자유시장주의, 자유방임주의의 뿌리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1899∼1992)를 거쳐 신자유주의로 이어졌다. 애덤은 방임자유와 사익추구는 결코 사회적 혼란이나 무질서를 초래하지 않으며 오히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사람들의 사적이고 사익추구에 의해 작동하는 사회질서, 시장질서)에 의해 사회적 질서와 조화를 가져다준다고 봤다.

 

자유와 사익추구가 각종 자원의 가장 효율적 사용과 배분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부의 관리 감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애덤이 사리사욕에 눈먼 도의심 없는 자본주의(dog eat dog capitalism)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가 국부론을 저술하기 17년전에 쓴 '도덕감정론'(1759)을 함께 봐야 한다.

애덤은 도덕감정론에서 인간행동에 대한 도덕적 판단의 기초, 인간본성의 원천으로 '자연적 동정심'(공감)을 말한다. 사익추구가 애덤 스미스의 경제 체계를 움직이는 동인이라면, 동정심은 그의 도덕 체계를 이끄는 동인이다.

 

인간 본성의 복합성을 동시에 본 것인데, 예컨대 제빵업자는 자비심으로 빵을 공급하지 않는다. 사익추구일 뿐이다. 한편 어떤 사람이 물에 빠진 낯선 이들 구하기 위해 강에 뛰어드는 것은? 사익추구가 아니라 자연적 동정심, 공감이다. 애덤은 이러한 인간 본성의 복합성을 본 것이다.

 

물론 도덕감정론에서 강조하는 공감과 국부론이 강조하는 이기심은 서로 모순되거나 충돌한다. 그래서 이기적 개인과 사회적 복리의 조화와 모순 문제를 학자들은 '애덤 스미스 문제'라 부른다.

 

그러나 애덤은 국부론에서도 인간의 본성인 사익추구와 자비심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국가의 후생(welfare)과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후생을 상인들과 강자들의 특별 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동정심, 공감은 우리의 이기심을 자제하고 도덕성을 갖추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품위와 예의를 갖추게 하고 사회를 번영하게 한다"는 게 애덤의 생각이었다.

 
▲ 케인스(왼쪽)와 하이에크. 정부의 역할을 두고 두 거장은 격돌했다. 지난 100년 경제학의 흐름은 두 거장간 대결의 역사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복지 필요성 주장한 하이에크


하이에크(1899∼1992)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와 지난 100년 경제학의 양대 줄기를 형성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시장주의를 계승한 하이에크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케인스와 격돌했다.

 

케인스는 "자유방임은 겉으로만 그럴싸할 뿐 비논리적이며 급변하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론"으로 봤다. "자유방임 원리대로 개인의 사익추구가 공익을 보장해준다면 기업가가 자기 잇속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정치철학자가 추구할 최고선이 달성될 테니 정치철학자는 기업가에게 자기일을 맡기고 속 편하게 은퇴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시장실패는 없으며 그냥 두면 시장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는 하이에크 진영을 향해 "인간은 장기적으로 죽는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하이에크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다. 하이에크가 자유시장를 신봉하고 정부 개입을 싫어한다고 해서 무정부 상태로 살자고 한 것은 아니며, 특히 정부의 복지 정책을 완전히 부정한 것도 아니었다. 국방처럼 정부 말고는 아무도 운영할 수 없는 사회요소만을 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긴 했으나, 놀랍게도 '보편적 의료 서비스'와 '실업 보험'은 정부가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하이에크의 자유시장 신봉자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로널드 레이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표방하며 집권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케인스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5년 백악관 시절의 모습. [AP 뉴시스]

 

입으론 하이에크, 행동은 케인스…레이거노믹스의 두 얼굴


신자유주의 시대는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가 열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은 "우리 호주머니에 간섭하지 않는 정부를 만들자"는 하이에크적 구호를 내걸고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집권후 실제 행동은 달랐다. 레이거노믹스는 겉으로는 정부 크기를 줄이자는 하이에크 식의 수사를 동원했지만 뒤로는 국방비 등 정부 지출을 마구 늘려 총수요와 경제성장을 촉진했다. 그 결과 레이건이 백악관에 들어갈 때 세계 최대 채권국이었던 미국은, 그가 샌타바바라 목장에서 은퇴생활을 시작할 때 4000억 달러 빚을 진 세계 최대 채무국이 되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MIT의 로버트 솔로는 "1982∼1990년의 호황은 레이건 행정부가 순전히 케인스적 방식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즉 지출을 늘리고 세율을 낮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 적자의 고전적 유형에 해당한다"고 평했다.

 

그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도 "레이건은 미국이 상당히 어려운 불황을 맞았을 때 대통령이 됐고, 강력한 케인스주의적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행했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레이건은 케인스를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케인스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함께 케인스식 방법으로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그 시절 미국은 비자발적인 익명의 케인스주의를 경험했던 것"(갤브레이스)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현대인의 상식에서 애덤 스미스와 그를 계승한 하이에크에 대한 오해가 적잖다. 하이에크의 자유시장주의를 신봉한 현대 정치인들이 실제로는 케인스식 방식을 따른 아이러니도 널리 알려진 얘기는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시장자유를 외쳤지만 행동은 달랐다. 시장에 간섭했고, 기업에 손벌리며 정경유착의 구태를 답습했다.

 

황교안의 민부론은 다를 것인가. 자유한국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레이건과 달리, 이명박·박근혜와 달리,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실천할 것인가. 역사는 기대보다 냉소를 가르쳐왔다.  

 

 

K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참고도서: <케인스 하이에크/니컬러스 웝숏>, <도덕감정론 및 국부론 요약/에이먼 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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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 기자

류순열 /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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