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내 '삶' 찾으려 구직 단념하기도
멈춰선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딱히 품은 뜻이 있거나 대책이 있어서가 아니다. 가파른 속도에 휩쓸려 달려왔던 자신에게 제동을 걸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에 공감한다는 얘기다.

2018년 출판 트렌드를 분석한 많은 보고서들이 꼽은 키워드는 '소확행'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 행복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청년들 사이에서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힐링 에세이'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올해 초 기준 16만부가 판매됐고, <나는 나로 살기로했다>는 50만부 가량 팔렸다. 특히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지난해 교보문고 판매 순위 종합 5위에 올랐다. 이 책들은 '현명한 포기'를 강조한다. 현명한 삶을 살기 위해선 포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N포 세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힘겨워하는 청년들은 여기에 공감한다. 굳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타인의 포기에 위로받는다. 무엇이 청년들을 절망으로 내몬 것일까. 발버둥 쳐도 실현시킬 수 없는 꿈은 자괴감으로 바뀐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차라리 하나둘씩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까닭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요즘 청년들은 경쟁도 심하고, 진로도 굉장히 불명확하다"면서 "집도 사기 어렵고, 가게를 내도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희망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자조적 단어가 말하듯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된다기 보다는 소소한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쟁률만큼 높은 실업률…내집 마련은 '언감생심'
취업난과 주택난은 20·30대 절망의 주된 요인이다. 청년실업률은 10.7%(2018년 4월 기준)로 10년 전인 7.1%(2008년)보다 높아졌다. 그나마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35.7%(2017년 8월 기준)에 달한다.
3년간 공무원 준비를 하다 낙방한 ㄱ(29)씨는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허무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도 비정규직으로 버티는 친구들이 많다"면서 "서른 살에는 무슨 일이든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7·9급 서울시 공무원 평균 경쟁률은 63대 1이었다. 1971명 선발에 12만4259명이 접수했다. ㄱ씨가 지원한 9급 행정직은 77대 1이었다.
이러한 좌절은 구직 단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을 보면 구직단념자가 1년 새 4만3000명(48만명→52만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1년간 구직 경험이 있고 취업을 희망하지만 고용 악화로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인 구직단념자 규모는 2014년 이후 최고 수치다.
2년간의 취직준비생 생활을 청산한 ㄴ(29)씨는 "구직 시도를 여러 차례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며 "굳이 희망 없는 미래에 남들 가는대로 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만뒀다"고 했다. 경쟁 속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주거비 등 부담이 너무 크다.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 평균가격은 2017년 기준 약 8억원이다. 그해 도시근로자 평균 연봉은 3475만원이다. 한 푼도 안 쓰고 24년을 모아야 서울에서 중간 가격의 아파트 한 채 값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혼 연령이 늦춰지고,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강서구에 전세 아파트를 구한 ㄷ(32)씨는 "운 좋게 취직을 빨리 했지만, 가진 돈으로 수도권에서 집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집값의 65%가 은행 대출이라는 그는 "결혼을 하고 나면 빚 갚는 노예로만 살 것 같아 더 우울하다"고 하소연했다.
20대 우울증 급증, 사망원인 1위는 자살
이런 현실은 각종 우울한 지표를 낳고 있다. 20대 우울증 환자는 지난 2012년 5만2793명에서 2016년 6만4497명으로 늘어났다. 무려 22.2%나 증가한 수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청년층 인구 10만명당 우울증 환자 수는 2012년 784명에서 2016년 943명으로 늘어났다. 연평균 증가율 4.7%로, 전체 세대 평균 수치인 1.6%의 3배에 달한다.
![]() |
자살률의 경우 한국은 2005년부터 2017년까지 OECD 가입국 중 1위였다. 2018년에 리투아니아가 새로 OECD에 가입해 2위로 밀려났다. OECD 평균 자살률의 3배 수준이다. 특히 2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모두 '자살'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20대와 30대에서 각각 16.4명(43.8%), 24.6명(35.8%)에 이른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된 지위를 형성하는 게 직업"이라면서 "직업을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포는 실로 엄청난 것"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결혼이나 주거는 사실상 취업으로 다 이어지는 가장 큰 부분인데, 그게 지금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청년세대가 힘들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자도생에서 상생할 수 있는 사회로"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위원장은 "투기 대상으로 전락한 부동산과 일자리 문제 외에도 각종 차별과 편견 등 사회가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들이 오롯이 청년들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어 청년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청년층에서 특히 자살률이 높다는 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라고 말했다. 이어 "무한경쟁의 정글에서 각자도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다각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황정원·김이현 기자 hjw@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