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사학자 기경량 "환단고기는 조작…식민사학의 아류일 뿐"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5-12-26 16:14:09
한국 고대사 연구자…'사이비 역사' 비판 활동 지속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에 탄식한 연구자 많아"
"역사학-'사이비 역사'가 같은 수준? 구도 자체가 잘못"
"'사이비 역사' 위험성·문제점 계속 알리는 작업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주류 역사학계가 위서(僞書)로 취급하는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언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대통령은 "단군, 환단고기,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환단고기 추종자)라고 부르잖아요"라며 "지금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데, 동북아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합니까"라고 꼬집었다. 이에 보수 성향 야권을 중심으로 "이 대통령은 스스로 '환빠'라고 선언했다"는 등의 공세가 거셌다.

 

지난 17일에는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 48개 학회가 "명백한 위서인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한 '사이비 역사'는 부정 선거론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KPI뉴스는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를 만나 이번 논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기 교수는 한국 고대사 연구자로서 '사이비 역사' 비판 활동을 지속해왔다. 인터뷰는 26일 경기도 부천시 가톨릭대 기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가 26일 경기도 부천시 가톨릭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K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ㅡ때아니게 환단고기 논란이 벌어졌다.

"대통령 발언에 탄식하고 '이거 어떻게 하냐'라고 반응하는 연구자가 많았다. 여권에서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말한 것'이라고 하던데, 설득력 있는 해석이 아니다. 야권에서는 환단고기 신봉자라고 공격하지만 대통령 발언이 그렇게 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10여 년 전부터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을 공격했다. 친일파, 식민 사학자라고 뒤집어씌우며 재단의 여러 연구 사업을 무산시켰다. 그 과정에 진보, 보수 구분 없이 다수의 여야 정치인이 '사이비 역사'에 우호적 태도를 취하며 관여했다. 그러한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지속적인 재단 공격 내용이 대통령 귀에 닿아 이번에 대통령이 발언한 게 아닌가 싶다."

ㅡ대통령실은 "역사를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볼 것인지가 중요하고 근본적인 입장 차가 발생한다는 게 대통령 말씀의 결론"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환단고기류의 주장을 시각차 혹은 학문적 논쟁 구도로 보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사학에서 자료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문적 범죄 행위다. 하나의 다른 관점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환단고기는 전형적인 자료 조작에 해당한다. 그런 자료를 가지고 고대사를 연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다.

역사학과 '사이비 역사'는 같은 곳에 놓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양자를 학문적으로 같은 수준인 것처럼 제시하는 구도 자체가 잘못이다. 그런데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면이 있다. 양자를 동일한 수준으로 다루거나 혹은 아예 역사학계의 얘기는 실어주지 않고 저들의 이상한 주장을 대서특필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중심을 잘 잡아줬으면 좋겠다."
 

ㅡ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환단고기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책'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학계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사료 비판과 검증을 이미 했고, '이건 조작된 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1911년에 환단고기를 엮었다고 하는 계연수라는 사람 자체가 실존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이 묘향산 석벽에서 우주의 진리가 담긴 천부경이라는 걸 발견했다고 단군교 등에서 주장하지만, 학계에서는 이것부터 조작이라고 본다. 신채호도 '천부경은 후대에 조작된 것'이라고 얘기했다.

 

1979년 이유립이 '스승 계연수가 1911년 환단고기를 엮었고 그걸 내게 전수했다'며 환단고기를 출간했다. 그런데 1911년에 엮었다는 환단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립은 그 책을 자기가 외워서 되살렸다고 주장했다. '지어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이유립 주변 사람들이 '이유립은 학식이 부족해 한문책을 조작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우리가 이런 설명을 믿고, 환단고기를 고대사를 복원할 책으로 인정해줘야 하는 건가?

 

이유립은 태백교를 만들어 교주가 된다. 그런 다음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식지에 환단고기 출간 전 그 원형이 되는 내용을 연재하는데, 그 내용이 자주 바뀐다. 계속 손을 대면서 조작한 흔적이 그런 식으로 드러난 셈이다.

 

'사이비 역사'를 담은 위서들이 환단고기 전에도 나왔는데, 환단고기는 그 내용을 상당 부분 베꼈다. 예컨대 단군 시대에 비행기, 잠수함, 자동차도 만들고 삼권 분립과 지방 자치를 실시했다고 주장하는 단기고사라는 위서가 있는데 환단고기에도 내용적으로 그와 흡사한 부분이 상당히 있다. 또한 환단고기에는 근대에 일본인들이 서양 언어를 번역한 한자 표현이 적잖게 나온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영고탑이라는 지명을 단군 시대 서술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ㅡ48개 학회는 성명서에서 '사이비 역사'가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하는 '뉴라이트 역사학'과 일맥상통한다"는 비판도 했다.

"뉴라이트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학문적 토대로 한 정치 운동이었다.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역사상이 학문 범주에 들 수 없는 저급한 수준임에도 정치인을 끌어들여 정설화하고 싶어 한다. 학회의 비판은 역사를 정치 도구화한 점에서 둘이 일맥상통한다는 맥락이었다."

ㅡ학계에서 '사이비 역사'로 규정한 흐름은 1979년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있었다.

"이승만 집권기에는 개인 단위에서 책을 내거나 강연하는 정도였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할 때 이들이 처음으로 조직화해 역사학계를 공격했다. 근거가 너무나 빈약한 게 드러나자 그걸 극복하기 위해 조작한 자료가 환단고기라고 보면 된다.

'사이비 역사'는 군인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1980년대 교과서 개정 과정에서 신군부의 지원을 받아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교과서에 일정 부분 반영됐다. 그 후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일부 수정됐지만 지금까지도 저들의 흔적이 교과서에 남아 있다.

2010년대 들어 박근혜 정권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할 때 '사이비 역사학자' 가운데 그쪽에 접근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재명 후보 승리가 유력해 보인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사이비 역사' 쪽에서 민주당에 접근해 민주당과 정책 협약을 맺었다."


▲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이상훈 선임기자]

 

ㅡ극우가 발호하는 상황에서 '사이비 역사' 논란이 다시 부상해 더 걱정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이비 역사'를 소비하는 이들은 주로 50~60대를 비롯한 나이 든 세대다. 젊은 층은 그런 주장을 경멸, 조롱하는 경우가 많다. 20~30년 정도 지나면 '사이비 역사'가 많이 위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사이비 역사'에 호감을 가진 이들이 현재 권력을 가장 많이 가진 세대라는 점은 문제다. '사이비 역사'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계속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이비 역사'의 바탕에 놓인 역사관은 파시즘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사이비 역사' 쪽 때문에 무산된 재단 사업 등을 정상화하고 대통령 내지 국무총리 소속 역사정책위원회를 만들어 정치인들이 역사학자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ㅡ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그러한 속성은 '사이비 역사'의 뿌리와 관련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 일제 식민 사학의 여러 갈래 중 주로 군인이나 극우 정치인을 중심으로 퍼진 아주 저급한 수준의 것이 있었다. 가짜 역사서를 만들어 '고대에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문화권이었다'는 주장을 일제 강점기에 퍼뜨렸다. 해방 후 그런 주장의 주어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꾼 게 '사이비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불행히도 일부 독립운동 단체 관계자들이 '사이비 역사' 쪽 설득에 넘어가 식민 사학의 아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눈물 흘릴 안타까운 일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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