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인들이 말 못 꺼내는 이유는 전명규 전 부회장"

장기현 / 2019-01-18 10:11:23
[인터뷰] 젊은빙상인연대 여준형 대표
"오는 21일 국회서 추가 성폭행 피해자 기자회견"
"선배 빙상인들 더 이상 침묵 안돼…이젠 나서야"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로부터 촉발된 '빙상계 미투'가 현역 선수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젊은빙상인연대는 오는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의 입장,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 젊은빙상인연대 여준형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 과정에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이자 대표팀 코치를 역임한 젊은빙상인연대 여준형 대표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그를 17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나 빙상계의 여러 문제에 대해 들었다.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폭행을 당하고 태릉선수촌을 나가야만 했던 여수연 선수의 친오빠이기도 한 여준형 대표는 인터뷰 내내 답답한 마음을 한숨으로 표현했다.

- 젊은빙상인연대는 왜 만들게 됐나?

선수와 코치를 모두 경험한 선배의 입장에서 바뀌지 않는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선수들이 피해만 보는 것 같아 도와주기 위해 만들게 됐다. 또 빙상연맹 자체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됐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인 4월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9월에 발기인대회를 했다. 현재 선수, 코치, 지도자 등 빙상인 28명으로 이뤄져 있다.

- 추가 성폭행 피해자 기자회견은 하게 되나?

부득이하게 기자회견을 연기한 이유는 민변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도와주기로 하면서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또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일이 커지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다보니 피해자들도 부담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이런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는 21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의 입장,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발표할 계획이다. 또 기자회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피해자들의 입장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달할 것이다.

- 빙상계에서 성폭력이 반복되는 이유는?

빙상계 뿐만 아니라 한국 체육계 전반의 문제로 봐야 한다. 메달로 진학하는 현행 시스템상 선수들은 학교보다 스케이트장에 오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지도자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의지하게 된다.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는 지도자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심석희 선수의 경우에도 어렸을 때 조재범 코치에게 발탁돼 오랜 시간 배우다보니 소위 말하는 '그루밍'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특기자 전형은 한정된 인원을 모집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무한 경쟁을 유발한다. 이는 성적을 위해 지도자가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것을 정당화시키고, 학부모와 선수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만든다. 서로 조금씩 못 본 척하고 넘어가면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 엘리트 체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인지?

그렇다. 말했다시피 우리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메달을 위해 경쟁에 내몰린다. 이런 엘리트 체육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금메달만 따면 된다는 결과 우선주의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국민들은 이제 과정이 공정했는지, 선수가 정말 노력했는지를 본다. 불공정하게 획득한 금메달을 쳐주지 않는 시대다. 그래서 이 문제에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엘리트 교육의 대표적인 예로 등장하는 태릉선수촌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운영되는 방식에서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이 문제지, 제도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다. 

 

▲ "금메달만 따면 된다는 결과 우선주의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국민들은 이제 과정이 공정했는지, 선수가 정말 노력했는지를 본다." [문재원 기자]


-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대학체육회,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연맹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특히 빙상연맹의 전명규 전 부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완전히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석희 선수는 공개적으로 싸우고 있는데, 이 사태의 정점에 있는 전명규 전 부회장은 공식적인 사과나 거취에 대한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숨어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피해자들을 포함한 빙상인들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명규는 다시 빙상계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빙상연맹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2004년에 대표팀 폭행 사건으로 물러났던 코치 2명 중 1명은 다시 돌아와 올림픽을 두 번이나 다녀왔고, 다른 1명은 지금 국제빙상연맹에서 심판으로 일을 하고 있다. 한체대, 대한체육회도 마찬가지다. 제 식구 감싸기를 해왔다.

- 빙상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재발방지대책에 앞서 인적쇄신이 선행돼야 한다. 뿌리를 이루고 있는 사람과 그들이 만든 수직적 문화가 있는 한 위의 시스템이 바뀐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수직적 문화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 특히 빙상연맹 임원들을 영구적으로 빙상계에 돌아올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사람이 바뀌어야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도 들어설 여지가 생긴다. 사실 시스템은 계속 바뀌었다. 빙상연맹 관리위원회가 제시한 세 가지 안(합숙훈련 축소, 여성지도자 발탁, 여성상담사 상주)은 이미 나왔던 대책이다. 하지만 사람이 바뀌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전명규 전 부회장이 숱한 문제를 일으키고도 빙상계로 다시 돌아왔는데 무엇이 바뀔 수 있었겠나. 인적쇄신이 변화의 시작이다.

 

▲ 젊은빙상인연대 여준형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빙상계는 조용하다. 한국 빙상을 대표하는 심석희라는 어린 여자 선수가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선배 빙상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빙상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도와주고 있다. 빙상계의 모든 종사자가 창피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게 무슨 파벌이나 권력 싸움이 아니지 않나. 한 선수의 인권 문제다. 심석희 선수를 비롯한 빙상계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이제는 선배들이 나서야 한다.

 

K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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