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총여', 재건될 수 있을까

강혜영 / 2018-12-10 10:00:12
학생총투표로 폐지되는 총여학생회…서울 2곳만 남아
총여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 반발 집회…재건 움직임

총여학생회(총여)가 전멸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총여가 여전히 필요하다며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처음 생긴 총여학생회는 90년대 이후 하나둘씩 대학사회에서 퇴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이런 현상에 가속도가 붙었다.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서 진행한 전수 조사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간 총여학생회를 폐지한 대학은 12곳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는 동국대, 성균관대, 광운대, 연세대에서 잇따라 실시된 학생총투표에서 총여학생회 폐지 혹은 재개편 안이 가결됐다.

여학생회 단체들은 페미니즘의 부상에 따른 '백래시'로 총여가 폐지됐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성균관대에서는 총여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는 새로운 인권 모임이 꾸려졌으며, 연세대에서는 새로운 총여학생회 집행부가 당선됐다. 전문가들은 총여학생회 역할을 총학생회를 비롯한 기존 기구에 편입하는 등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 연세대, 동국대 총여학생회와 성균관대 여성주의 모임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총여 폐지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강혜영기자] 


학생총투표로 사라지는 총여


이번 달만 서울 시내 대학교 두 곳에서 총여학생회 폐지안이 확정됐다. 지난 1일 광운대는 지난달 27일부터 사흘간 '총여학생회 폐지 및 회칙상 삭제'를 안건으로 진행된 학생총투표에서 폐지를 결정했다. 동국대에서는 지난 3일 한 '총여학생회 폐지 안건'의 총투표의 가결 확정에 따라 총여학생회가 폐지됐다.

 

이밖에도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서는 총여 폐지를 두고 10월15일부터 나흘 간 진행된 투표 끝에 총여학생회 폐지 안건이 가결됐다. 연세대학교에서도 총여학생회 재개편을 요구하는 학생 총투표가 발의돼 6월13일~15일 투표를 실시한 결과 재개편 안이 가결됐다.
 

 

'석순'에서 2016년 4월 전국의 206개 교육대학/대학교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벌인 결과 총여학생회장과 집행부가 존재해 총여학생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 시내 대학은 경희대와 감리교신학대 두 곳 뿐이었다.

조사 당시 비대위였던 동국대 총여는 이후 부활해 폐지 투표 전까지 운영 중이었다. 연세대도 조사 당시엔 비대위였지만 16년 5월 집행부가 꾸려져 유지돼 오고 있다. 2년전 총여학생회가 존재했던 경희대는 올해 집행부 구성에 실패해 현재는 사실상 총여가 없다.

따라서 12월10일 현재 서울 대학 중에서 총여학생회가 구성돼 운영하고 있는 곳은 감신대와 연세대 두 곳이 전부다.

총여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주요 원인, 페미니즘 반감도 한몫 해


총여학생회 폐지에 찬성표를 던진 학생들의 상당수는 이제 대학 내 총여학생회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광운대, 성균관대를 비롯한 대학교의 총여학생회가 구성에 실패해 자치기구로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와 광운대 모두 총여학생회 회장 자리가 10년 간 공석이었다. 광운대학교 2학년 박모(20)씨는 "우리 학교에 총여학생회가 있다는 것도 이번 투표를 통해 알았다"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기구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학우들이 많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어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은 더 이상 차별받지 않는데 여학생회가 꼭 있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박씨만의 생각이 아니다. 실제로 20대 남성 대다수가 비슷한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고려대 '불평등과 민주주의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라는 항목에 20대 남성이 동의한 비율은 23%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나온다. 연세대는 지난 5월24일 총여학생회가 인권축제에서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의 강연을 추진한 것을 계기로 총여에 대한 반발이 확산됐다. 은하선이 남성 혐오 발언 등을 일삼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라는 이유에서다. 은하선의 강연이 이뤄지기 전부터 10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강연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김 모(24) 씨는 "은하선 강연은 많은 재학생이 총여학생회에 등을 돌리는 도화선이 됐다"고 말했다. 또 "총여학생회가 내세우는 배타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해당 강의를 계기로 더욱 켜졌고, 총여학생회 재개편 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 연세대학교 성악과 3학년 연태웅씨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총여학생회 폐지 찬성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혜영기자]

 

이밖에 총여학생회비에 쓰이는 학생회비는 남학생도 내지만 투표권은 없다는 문제도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지난 9일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에서 총여 폐지에 찬성하는 1인 시위를 벌인 연세대학교 성악과 3학년 연태웅씨는 "남학우들은 총여학생회에 대해 납세의 의무만 있고 복지 혜택은 없다"며 "집행부원으로 노동할 수는 있어도 피선거권은 없다"고 말했다.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 총여, 백래시에 반발


최근 폐지가 결정된 대학 총여학생회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동국대 31대 총여학생회 '무빙'과 연세대 29대 총여학생회 '모음', 성균관대 여성주의 단체 '성균관대학교 성평등 어디로 가나(성성 어디로가나)'로 구성된 연대체는 총여학생회 폐지를 '백래시'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백래시(Backlash)는 사회적 진보 혹은 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일컫는다. 이들은 "올해는 미투로 시작해 여성주의 운동이 본격화 했다"며 "동시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백래시 역시 심화됐으며, 대학가는 이를 총여학생회의 폐지라는 형태로 경험했다"고 진단했다.

이들 연대체는 투표로 총여 폐지가 결정됐지만, 이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성성 어디로가나'는 공식 SNS를 통해 "소수자와 인권의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되거나 해결될 수 없음에도, 허울 좋은 '민주주의'라는 말 속에서 그러한 가치들은 공격받거나 거부됐다"며 "그 민주주의에 여성과 소수자는 없다"고 강조했다.
 

▲ 연세대, 동국대 총여학생회와 성균관대 여성주의 모임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총여 폐지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강혜영기자] 

 

세 단체는 백래시 대응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도 가졌다. 이들은 지난 8일 논란의 은하선 강의가 열렸던 연세대학교 위당관에서 '2018년 총여 백래시 연말정산' 포럼을 진행했다. 300명 남짓 들어가는 대강당에 이들의 얘기를 듣기 위한 학생들로 매워졌다. 주최측은 포럼을 통해 "총여학생회는 존재만으로도 비판을 받는 기구"라며 그동안 겪은 백래시를 돌아보며 소회를 밝히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9일에는 같은 주제로 총여학생회 폐지 규탄 집회를 열어 '총여가 여기서 쓰러질 것 같냐', '지지않고 지지한다' 등의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총여 여전히 필요" 재건 움직임도


"최근 서울의 총여학생회가 사실상 0곳이라는 등 존폐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총여가 세워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성균관대학교 재학생 성평등 모임인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가나' 활동가 노서영(22) 씨는 이렇게 말했다.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4학년인 노씨는 올해 총여학생회장직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입후보등록이 무산됐다. 총여학생회에 반발하는 움직임에 막혀 입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한 채 폐지를 지켜봐야 했다. 이에 노씨를 비롯한 학생들은 지난 9월 '우리에게는 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란 문구를 내걸고 성대 총여학생회를 되살리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가나'라는 학내 모임이 탄생했다.

현재 '성성 어디로가나'는 총여학생회 자체를 재건하려는 노력보다는 대학 내에서 총여가 도맡아 온 역할을 다시 세우는 데 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노씨는 "50%가 넘는 학생들이 총여 폐지에 찬성했기 때문에 당장 총여학생회를 부활시키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총여학생회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므로 학내에서 여성 운동을 비롯한 소수자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성성어디로가나'는 방학 동안 백래시 세미나와 패미캠프, 인권캠프 등의 추진을 논의 중이다. 또 학내 행사에서 총여의 빈자리를 채울 계획이다. 노씨에 따르면 성균관대에서는 문과대학을 제외하고는 새내기 배움터 등의 학내 행사에서 여성 문제가 다뤄지지 않고 있어 이를 담당할 기구가 필요하다. 학내 페미니스트들 간의 연결망을 구축해 사실상의 총여 역할을 할 연대체도 구성할 예정이다. 총여는 공식적으로 폐지됐지만, 총여의 역할은 존립하고 있는 셈이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지난달 24일 제30대 총여학생회 선거운동본부 '프리즘(PRISM)'이 당선됐다. 학생총투표 이후 연세대에서는 총여 재개편 TFT가 구성돼 8차례의 회의를 통해 총여학생회가 학생회의 형태를 유지할 것인지, 학생인권위원회로 변경할 것인지와 함께 회원의 범위 등을 논의하고 있다. 12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프리즘은 이를 승계하고 발전시키고 총여학생회 회칙 제정, 집행부 체계 정비 등을 통해 총여학생회 재건에 주력할 계획이다.

'학내 자치기구 위기'와 '페미니즘 부상' 사이에 놓인 총여, 나아갈 길은…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상황을 두고 "여학생에 대한 차별이 과거에 비해 줄어 대학사회에서 여학생만으로 구성된 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학에서 여학생의 인권만을 대변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더는 공감을 받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학내 자치 기구의 위기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최근 단과대 학생회, 총학생회 등 학내 자치기구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구성이 힘든 상황"이라면서 "총여학생회도 이런 현상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총여학생회가 여전히 필요한 기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차별, 성폭력 등 여성 관련 이슈가 존재하는 한 총여학생회의 역할은 유효하며 그 존재 역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과거와 달리 여성이 더는 숫자상으로 소수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여성이 늘 소수가 아니었다. 숫자를 근거로 소수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며 "젠더권력의 측면에서 여성은 여전히 약자이며, 약자를 보호하는 기관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수연 선임연구위원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된 사안인 만큼, 무조건적인 재건이 아닌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총학생회 내 여성 목소리를 주류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현재 상황이 학생회 내 여성 목소리를 주류화하자는 의견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총학생회 등 기존 기구가 성폭력 논의를 포함해서 총여가 담당하던 역할들을 충분히 해내기 위해서는 우선 남성 중심적 문화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K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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