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여동생이자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 골동품 매각 주도
영화 ‘공작’에서는 흑금성공작원 박채서가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를 두 번 만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한번 30분간 면담했다. 김정일 총비서가 박채서를 만난 목적은 광고사업과 골동품 판매 그리고 대남 대선 공작 건이었다.
국가안전보위부 반탐과장 김영수와 보위부 베이징 연락책 리철은 가끔 골동품을 한두 점씩 가지고 나와 박채서에게 처분을 부탁했다. 박채서는 오죽 경제 사정이 어려우면 이런 부탁을 할까 싶어서 가급적 도와주려 했다.

골동품 시장은 요지경 속이었다. 골동품을 처분하려면 상당한 기본 지식이 필요했다. 직접 골동품 책을 찾아 읽고 전문가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돈을 마련하려고 골동품을 처분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박채서도 처분 건수가 늘어나면서 다른 의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묘향산 동굴 속의 국보급 골동품들

박채서는 물건을 받아올 때마다 골동품계의 숨은 실력자인 한광무 선생에게 보였다. 한 선생은 골동품 거래에서는 ‘하급’이 나오는 라인에서는 하급만 나오고, ‘상급’이 나오는 라인에서는 상급만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져온 물건을 살펴보았을 때, 물건들에 흠이 있어 비록 상품 가치는 떨어지지만 ‘상급’ 이상의 라인을 유지하고 있어 골동품으로서 가치는 크다는 것이었다.
박채서는 골동품의 출처를 시험해 보기로 작정하고, ‘상품 가치가 없어 매매가 불가능하다’는 핑계를 대고 의뢰한 물건을 북측에 반납했다. 그러자 한 선생이 예측한 대로 훨씬 더 수준 높은 물건이 의뢰품으로 건네졌다. 보위부가 박채서를 시험하고 있던 거였다. 그것은 단순히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골동품 판매가 아니라, 김영수와 리철의 뒤에서 누군가 고위 인물이 시험 삼아 골동품을 흘리면서 조종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한 선생도 물건을 보니 ‘큰손’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이런 예상은 오래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북측에서 박채서에게 신뢰할 만한 골동품 감정사를 대동하고 방북해 달라는 요청을 전해 왔다. 박채서가 상부(안기부)에 보고하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 방북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박채서는 처음부터 북한 측 의뢰품을 감정해온 한광무 선생과 함께 방북길에 올랐다. 그들이 맨 먼저 안내한 곳은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 근처의 산속 동굴이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국보급 골동품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북측은 남한 전문가의 감정을 통해 이 골동품 전체의 실제 거래 가격을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박채서는 한 선생이 감정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를 당부했다. 감정가를 최저 감정가 이하로 산정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북측이 극비리에 보관해온 골동품의 감정을 요청한 것은 매각할 의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북측이 골동품을 팔려면, 보안을 유지해야 하므로 지금처럼 박채서를 통해 매각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지금 북측에 실거래가로 감정가를 알려주면, 박채서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사태를 겪을 수 있었다. 북측이 박채서에게 실거래 감정가로 팔아줄 것을 요구하면, 판매 대금을 실거래가에 맞춰줘야 하기 때문이다.
북측이 감정을 의뢰한 골동품들은 비전문가인 박채서가 보기에도 대단한 물건으로 비쳤다. 한 선생은 의뢰받은 골동품들을 하루 종일 꼼꼼하게 감정했다. 감정과 동시에 진품 여부와 예상 거래 가격을 판별했다. 북측에는 개별 골동품의 진위 여부와 대략적인 전체 감정가를 통보해 주었다. 가품으로 판단된 것은 10개 내외였다. 전체 감정가는 한국 돈으로 8천억~1조 원 정도였다. 감정을 의뢰한 북측 인사들의 귀가 입에 걸렸다. 한 선생은 박채서에게 제대로 거래가 성사되면 실거래가는 북측에 제시한 감정가의 3~4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한 선생은 그날 밤 향산호텔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는 평생 골동품만 들여다보고 살았지만, 이렇게 많은 진품을 한꺼번에 감정해 보긴 처음이었다. 그는 박채서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박 선생, 고맙소. 우리 업계에서 전설로 전해지는 물건을 구경하고 감정한 사실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오.”
그러면서 한 선생은 인상 깊은 골동품 몇 가지를 꼽으며 그 가치를 박채서에게 설명해 주었다. 한 선생은 그러고도 도저히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는지, 침대에 누웠다 벌떡 일어나기를 되풀이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골동품을 팔아 달라

박채서는 다음날 평양으로 돌아와서 기대했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묘향산의 국보급 골동품들은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대를 이어 수집해 놓은 개인 소장품이었다. 김정일 총비서는 그 모두를 처분해서 현금화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김씨 집안의 소장품이다 보니, 그동안 골동품을 한두 점씩 내보내 박채서에 대한 신뢰도와 감정 실력을 측정해본 것이었다. 그러니 박채서가 골동품을 판매한 돈에 욕심을 부렸다면 일이 틀어졌을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골동품 기획을 주관한 사람이 바로 김정일 총비서의 여동생이자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金敬姬)라는 사실이었다. 김경희는 박채서가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힘과 위상이 훨씬 더 막강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개인 소장품을 매각하는 것은 김정일 일가의 비자금, 즉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했다. 북한 내에서 김경희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였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소장해온 국보급 골동품의 매각은 박채서가 현장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일단 긍정적으로 방법을 모색해 보겠다고 답변을 했다. 박채서는 그날 초대소에서 북측 인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북측 인사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으로 함경남도 신포에 건설 예정인 경수로 공사에 전선이나 몇 가지 부품을 납품하는 일을 맡아줄 기업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국제 기준의 리베이트를 받으려고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이에 박채서는 골동품 감정 전문가가 평양에 온 김에 함께 개성을 방문해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같이 온 한 선생을 38년 경력의 ‘호리꾼’이라고 소개하고, 이참에 개성에 묻힌 고려 왕릉을 찾아내 발굴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설령 골동품 처분 사업과 경수로 납품사업이 제대로 성사된다고 해도, 그로서는 1원 한 푼 손대지 못하고 김경희의 관리계좌로 입금해야 했다. 만약 누구든지 김정일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외화벌이에 손을 댔다가는, 지위의 고하와 이유의 여하를 막론하고 처형될 것이 분명했다. 그즈음에 북한의 대성상사 직원들이 금괴 처리 과정에서 부정을 했다가 발각되어 32명이 총살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대성상사는 김정일이 직접 운영하는 외화벌이 창구였다.
그러나 북한 체제가 아무리 엄해도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들도 돈을 보면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김정일–김경희의 지시만으로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질 수만은 없다. 또 그들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박채서는 실제 자신과 일하는 부서와 책임자들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북측은 의외로 주저하지 않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의 제안은 나중에 업무를 수행할 때 큰 효과로 나타났다. 박채서는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 이 일을 하려면 나도, 선생들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 도록 일해서 생긴 돈을 다 갖다 바쳐야 한다면 무슨 재미로 일합니까? 고려 왕릉 하나만 온전하게 제대로 발굴하면 최소 3천만 달러를 챙길 수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3분의 2를 드리겠습니다.”
고려 왕릉을 발굴하게 해주면 2천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220억 원이라는 거액을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김경희의 대리인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래요? 고려 왕릉이 그 정도로 값어치가 나갑네까?”
박채서는 골동품 발굴 책을 읽어 그만한 지식은 있었다. 그는 자신 있게 힘주어 말했다.
“그렇습니다. 고려시대 무덤은 발굴하기가 아주 쉬워서, 입구만 찾아내면 크게 파헤치지 않아도 조용히 무덤 속 부장품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상대는 구미가 당기는 눈치였다. 이번에는 처분 방법을 물었다.
“처분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네까?”
“고려 왕릉 부장품은 묘향산 물건을 처리할 때 같이 처분해서 해외계좌로 안전하게 입금시켜 드리겠습니다.”
박채서는 상대가 관심을 보이자, 내친김에 구체적 방법까지 설명했다.
“발굴 시기는 광고사업팀이 방북해서 백두산을 배경으로 촬영할 때, 개성지역을 마지막 촬영지로 해서 1주일간 촬영시간을 끌며 발굴 지역에 텐트를 치고 작업을 하면 됩니다. 물건은 촬영 장비를 담았던 알루미늄 상자에 담아서 반출시키면 됩니다.”

개성 방문 건은 순간적인 상황 판단으로 내린 결론이었는데 의외로 효과가 컸다. 박채서와 한 선생은 평양 민속박물관을 둘러보고, 개성박물관과 개성의 명승지를 관광한다는 핑계로 개성을 찾았다. 급조한 일정임에도, 보위부 개성지부 책임자가 직접 나와서 안내하고, 식사와 숙소까지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박채서는 2박 3일 동안 체류하며 개성박물관, 박연폭포, 성균관, 공민왕릉 등을 둘러보았다. 박채서와 한 선생은 보위부 지부장의 안내로 휴전선 일대까지 들어가 개성을 찾은 목적을 100% 달성했다.
38년 경력의 ‘호리꾼’ 한 선생의 눈에 띈 발굴 예상지는 여섯 군데였다. 매의 눈으로 쓱 훑어본 한 선생은 여섯 군데에서 부장품이 발굴될 확률은 80% 이상이라고 말했다. 박채서는 슬며시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낮은 목소리로 한 선생에게 말했다.
“머릿속에만 그리고, 북측에 알려주지 말고, 나한테도 말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의 증언④…권영해 안기부장과 골동품 중개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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