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끼리도 하지 말라는 동업, OCI·한미약품은 성공할까

김기성 / 2024-01-21 07:56:51
OCI·한미약품 그룹 이례적 통합 선언
서로의 자금, 신사업 통한 시너지 기대
단기적 필요로 접근하면 '동업'은 필패

우리 재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전혀 다른 사업을 하는 두 그룹이 통합하기로 한 것이다. 한미약품 그룹과 OCI그룹 얘기다.

 

▲OCI 로고와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각사 제공]

 

지금까지는 같은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아도 형제간에 서로 사업을 분리하는 게 일반적이고 수십 년 동업했다가 얼굴 붉히며 헤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사업을 하는 두 그룹이 통합하기로 선언한 것이다.

 

OCI그룹과 한미약품 그룹은 현물출자와 신주발행을 통해 두 그룹을 통합하기로 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OCI그룹의 지주사인 OCI홀딩스가 한미약품 그룹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27%를 취득하고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OCI홀딩스의 지분 8.62%를 갖게 돼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자금과 신사업 능력이 합쳐지는 긍정적 통합 주장

 

이러한 통합에 대해 두 그룹은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OCI그룹은 신사업으로 점찍고 있는 헬스케어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한미약품 그룹은 OCI그룹을 등에 업고 연구개발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OCI의 자금과 한미약품의 신약 개발 능력, 미래먹거리가 합쳐진 것이다. 이러한 명분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처한 두 그룹의 문제를 보면 '제사(명분)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통합의 수명은 길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한미약품 그룹, 상속세 부담 덜고 신약 개발 자금 확보

 

먼저 급했던 쪽은 한미약품 그룹이다. 창업주인 고 임성기 명예회장이 2020년 타계하면서 오너 일가에 5400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가 부과됐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사모펀드 운용사를 통해 일부 지분을 매각하는 계획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는 회사를 통째로 매각해야 하는 위기에 몰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OCI가 백기사로 등장했다. 지분을 OCI측에 넘기면서 상속세를 낼 수 있는 돈을 마련했다. 또 한미약품 그룹의 대주주 지위는 포기했지만, 신약 개발을 위한 동력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다가 OCI홀딩스 지분을 확보하는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

 

OCI, 이 회장의 취약한 지배력 보완이 목적?

 

그렇다고 OCI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은 아니다. OCI 창업주의 손자인 이우현 OCI그룹 회장은 총수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지배력에 문제가 있었다.

 

OCI그룹은 개성상인으로 유명한 고 이회림 창업주가 만든 동양화학공업을 모태로 한다. 이회림 창업주 이후 장남인 고 이수영 회장이 이어받았고 3대째 총수가 이수영 선대회장의 장남인 이우현 회장이다. 그런데 상속 과정에서 지분이 분산돼 이 회장의 작은 아버지인 이화영(7.41%), 이복영(7.37%) 두 사람의 지분율은 15%에 육박한다. 이에 비해 이 회장의 지분율은 6.55%에 불과하고 동생 이지현 OCI미술관 관장의 지분 2.39%를 합해도 10%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늘 경영권 위협 리스크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곤 했다.

 

그런데 한미약품 그룹과의 통합이 마무리되면 이 회장의 지분은 5.87%로 줄어들지만, 임주현 사장(8.62%), 임 사장의 모친인 송영숙 한미약품 그룹 회장(1.75%)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게 돼 15%가 넘는 지분을 확보하게 돼 경영권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로 약점 해결된 이후에도 통합 유지될까?

 

문제는 시간이 흘러 이러한 각각의 약점들이 해결된 이후에도 통합이 계속되겠느냐는 것이다. 한미약품 그룹의 주 사업인 신약 개발은 알다시피 '대박' 아니면 '쪽박'의 특성이 있다.

 

업황의 극적인 변화는 동업자 간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고려아연의 사례에서 익히 본 바가 있다. 고려아연은 2차 전지의 급성장으로 주목을 받게 되면서 오랫동안 동업 관계를 유지해 온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 사이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두 집안은 서로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 70년 넘는 동업 관계가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게 사실이다.

 

나쁜 선례가 이번 통합에 적용될 것으로 예단할 필요도 없고, 또 두 그룹이 내린 중대한 결단에 초를 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상황이 극단적으로 변할 때, 예를 들어 신약 개발 사업이 엄청난 수익을 내거나, 혹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을 때도 통합이 유지될 수 있을까? 더구나 서로 전혀 다른 업종에서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한미약품 그룹 측의 가족 간 경영권 분쟁도 불씨

 

이에 앞서 통합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걸림돌도 있다. 한미약품 그룹 측에서 이번 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고 임성기 회장의 부인인 송영숙 회장과 장녀인 임주현 사장이다. 그런데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인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이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7일에 수원지방법원에 이번 통합 추진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가처분 신청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가족 간의 분쟁은 조기에 매듭될 것 같지 않다.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로까지 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런데 양측의 지분 차이(임주현 측 30%, 임종윤 측 26.9%)가 크지 않다. 결국 통합이 성사되더라도 여진이 계속될 것이고 이는 OCI와 임주현 사장 측이 바라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OCI·한미약품 그룹 확실한 준비로 동업의 좋은 선례 만들어야

 

동업은 사업의 덩치를 키워 부가가치의 창출을 늘릴 수 있는 좋은 수단임에도 유독 우리나라는 동업에 대해 부정적이다. "동업은 형제끼리도 하지 말라"는 속설이 있다. 사업에 대해서는 전부(All) 아니면 전무(Nothing)라는 극단적 소유 욕구가 우리 경제계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두 그룹의 통합이 좋은 선례로 남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고 앞으로 예상되는 여러 분란 가능성에 대해 확실한 해결방안을 계약서와 같은 문서로 철저히 꼼꼼하게 남겨둬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이해관계가 맞는다고 좋은 게 좋은 것으로 접근했다가는 동업이 다른 악연으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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