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이들이 방황하는 노정을 다양하게 담아낸
세대와 젠더, 노년과 죽음을 아우르는 이민자 서사
"알지 못하는 것들 위해 한뼘쯤 마음의 공간 열어야"
왜 떠나는가. 혹자는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떠나기 전과 돌아왔을 때의 '나'는 같지 않다고 했다. 어느 쪽이든 돌아올 곳을 전제하고 떠나는 여행은 '파트타임 여행'이고, 길 위를 죽 떠도는 삶은 '풀타임 여행'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작가 반수연이 펴낸 두 번째 소설집 '파트타임 여행자'(문학동네)가 전하는 말이다. 첫 번째 소설집 '통영'에 이어 집 떠난 삶의 외연을 보다 확장해, 기실 '집'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행자의 정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들까지 살펴본 단편들이 이번 소설집에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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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 이민자로 27년째 살고 있는 작가 반수연. 첫 소설집 '통영'에 이어 4년 만에 외연을 확장한 새 소설집을 펴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표제작의 화자 '민'은 젖먹이 두 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다. 남편은 돈이 생기면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탕진했고, 돈을 잃고 돌아와서는 죄책감을 폭력으로 풀었다. 한국으로 돌아간 남편 대신 두 딸을 키웠지만 아이들마저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한국의 아빠에게 가버렸고 '민'은 홀로 남아 삶을 견디어야 했다.
그녀가 오래 품어온 꿈은 미국의 국립공원을 순례하는 여행자의 삶이었다. 아내를 잃은 같은 처지 '제이크'의 격려를 받아 길을 나섰지만 '민'은 왜 떠나야 했는지, 여행마저 노동으로 느껴지는 현실을 자각한다. 그 길 위에서 만난 클로디아, 민보다 두 살이 어린 한국 동포인 그녀는 아예 9인승 밴을 개조해 여행지를 삶터로 삼은 여성이다.
'난 풀타임 여행자야. 집이 따로 없어. 여기가 집이란 뜻이지. 어딜 가든 이혼한 남편이 찾아와 괴롭히는 바람에 도망가기 좋은 집이 필요했다고 클로디아는 말했다. 집을 남겨두고 떠나온 사람은 아무리 오래 여행해도 파트타임 여행자라 부른다는 것을 민은 처음 알게 되었다.' _'파트타임 여행자'
기실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하자면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풀타임 여행자인 셈인데, 그 안에 따로 파트타임 여행자가 있다는 사실은 모순이기도 하다. 캐나다 이민자로 27년째 살고 있는 반수연의 경우는 돌아갈 고국이, 그 집이 전제돼 있으니 유독 파트타임 여행자의 정서가 강할 법도 하다. 떨어져 있어봐야 집을 돌아볼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터이다. 그렇게 사는 것은 늘 한 뼘쯤 땅에서 발이 떠 있는 듯한 삶이어서 소설 속 인물들의 바탕은 대체로 스산하고 쓸쓸하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뉴욕의 한인 홈리스 여성을 내세운 '설탕공장이 있던 자리', 세대와 젠더 갈등을 포괄한 '조각들', 노년과 죽음을 파고든 '춤을 춰도 될까요' '화분의 시간', 상실의 무게를 가늠하는 '프레살레', 취향을 넘어서 현실을 직시하는 '빅터 아일랜드' 등 7편이 수록됐다.
-첫 소설집 '통영' 이후 달라진 점은?
"'통영'에는 자전적인 소설은 한 편도 없지만 대부분 제가 겪었거나 주변에 대한 것들이었다면, 이번 소설집은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쓴 편이다. 소재의 폭이 조금 더 넓어졌달까. 대체로 노인이라는 것과 이민자라는 두 마이너리티가 겹치면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 예전부터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소재나 이야기들을 천착하게 된 것 같다."

"삶에서 죽음까지 보면 결국 인생은 풀타임 여행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느낌이지만, 저는 고국이 한국이다 보니 돌아갈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는 같다. 캐나다에 뼈를 묻겠다는 것보다는 언제쯤 돌아갈까 이런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자들이나 디아스포라 정서가 파트타임 여행자와 비슷하지 않겠나. 한 편 한 편 쓸 때 의도한 건 아닌데 소설집을 다 묶고 보니, 대부분 여행 얘기여서 '파트타임 여행자'를 표제로 전체 내용을 포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탕공장이 있던 자리'의 '애나'는 주한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왔다가 남편의 폭력에 바닥까지 밀려 홈리스로 살아가는 여인이다. 첫 남편 조에게 맞아 앞니 네 개가 한꺼번에 부러진 이래 평생 온전한 치아를 가진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온 창녀로 매도당하며 길바닥을 떠돌다 한인 홈리스 셸터의 도움도 받지만 아들 '찰리'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감출 수 없다. 반수연은 이번 소설집 인물들 중 '애나'가 가장 가슴에 남는다고 했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인물에 더 마음이 가는 이유는?
"작정한 건 아니지만 생이 우리를 밀어낼 때마다 한 걸음씩 뒷걸음질 치다 보면 극한 상황에까지 몰려서 있는 경우가 있다. 단지 반걸음만 뒷걸음질 쳤을 뿐인데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상황까지 밀려가는 그런 인물이 있다. 그런 경우에 대한 감정이입이나 슬픈 이해의 느낌이 많다. 저도 여행을 좋아해서 자주 떠나는 편이기는 하지만 '파트타임 여행자'의 주인공처럼 언젠 떠나고 나서 내가 왜 왔지,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실 남들이 보면 집을 떠나 이렇게 한국에 와서 오피스텔을 얻어 북토크도 하고 인터뷰도 하면 좀 멋져 보일 수 있는데, 제가 저를 볼 때는 완전 독거노인이다. 왜 우아하고 강하고 아름답게 이 시간을 보내지 못할까 싶은 회한도 있다."
'아름답고 강한 혼자'가 되고 싶다는 '파트타임 여행자'의 바람이야말로 반수연의 소망인 셈이다. 상실의 무게를 비교하는, 노르망디 해안의 소금기 섞인 풀을 먹고 오히려 고소한 우유를 생산하는 '프레살레'의 전언에 이르면 생을 대하는 자세가 보다 의연해질 수 있을까. 몽셰미셸 바닷가에 뿌리기 위해 남들 모르게 남편의 유해를 용각산 통에 넣어왔지만 도둑맞은 그녀와 명품들을 쟁여둔 큰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자신의 상실이 더 크다고 왕왕대는 여자 사이에서 화자가 깨달은 건 생의 '비정'이 아니라 '비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잃어버린 가방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가방과 함께 떠내려간 것들이 그리 아쉽지도 않았다. 어떤 일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생겨나고 어떤 일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되레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다. 잃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것들을 잃고도 살아진다는 건 생의 비정이 아니라 생의 비밀인지도 몰라.' _'프레살레'
-'상실의 무게'를 비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뭘 잃고 이루었든 간에 그것이 과연 우리의 100퍼센트 노력이나 100퍼센트 실수로 벌어진 건 아니지 않은가. 돌이켜 보면 수많은 기적과 정말 알 수 없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상실에 대한 순정한 자세는 자기도 소멸해야 될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죄의식을 가지거나 제대로 상실을 애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잃었던 것이 애초에 우리의 잘못이 아니듯, 다시 복원해서 살아가는 것도 그런 생이 주는 축복이지 자신이 비정해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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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트타임 여행자'의 인물처럼 자주 여행을 떠나는 반수연. 그는 "아름답고 강한 혼자를 지향하지만, 정작 떠나고 나면 회한에 젖는다"고 말한다. [작가 제공] |
지난해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안겨준 단편 '조각들'의 아버지는 미국에 와서 딸 '지나'가 한 살도 되기 전에 아내가 죽었다. 목수인 그는 성 구분을 거부하는 '논바이너리'여서 따돌림 당하는 '베리'를 조수로 받아들이지만, 역시 문신으로 몸을 도배하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딸 만큼이나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는 딸을 돕기 위해 휴가를 내 동행하며 부녀가 나누는 대화가 애틋하다. 아버지는 마리화나 얘기를 하려다 참고 딴소리를 한다.
"지나야, 울지 말고 잘 지내. 너 안 울리려고 여기까지 데려 왔는데……."
"용감해지려고 우는 거야, 아빠. 울다보면 무서운 게 좀 사라지거든."
"우리 지나, 세상이 아직 많이 무서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근데 아빠, 내가 해보니 이민 이거 쉽지 않네. 우리 아빠 고생했네."
-'다만 알지 못하는 것들을 위해 공간을 한 뼘쯤 벌려두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편견과 폐쇄성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 놓는 경우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 우리 자식들이 살아가는 삶도 정말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저력이 있고, 알고 보면 부모가 약자이고 그 아이들이 훨씬 더 현명하다는 걸 나중에 느끼게 된다. 이런 마음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런 자세는 이민자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극심한 분열과 혐오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한 뼘쯤 마음의 공간을 벌려두는 자세야말로 절실하다. 반수연의 소설이 이민자 서사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내게 소설을 쓰는 일은 진짜 마음을 알아가는 여정이었다"면서 "내 소설은 절망과 의심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라고 썼다. '파트타임 여행자'의 말.
'집을 떠나온 후에야 뒤늦게 민은 왜 자신이 그토록 떠나고 싶었는지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아름답고 강한 혼자가 되고 싶었다는 걸 기억했다. 늙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고, 죽는다는 건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산다는 건 애가 타는 일이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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