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모 아지트 대표 "대한민국 문화계 살리는 '난장판' 전국에 열겠다"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 2023-12-22 15:33:56

매의 눈으로 한국 문화계를 분석하는 이가 있다. 당장엔 쓰지만 훗날 문화계에 보약이 될 만한 통찰이 거기에 담겼다. 스스로 '문화 코디네이터'로 부르는 양한모 아지트 대표 얘기다. 

 

양 대표는 우리도 문화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선 공유문화경제, 공유문화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히 그는 "매년 우리나라엔 문화실업자가 대거 양산하고 있다"며 "문화계 대변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안 없이 예술계에 발을 딛는 청년 예술가들을 살리기 위해선 예술계 전반에 퍼진 여러 고질적 병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양 대표의 '회초리론'을 들었다.

우선 그는 "우리 예술계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에 있다"고 했다. 매년 적잖은 관련 인적자원을 배출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청년들이 나아갈 바를 제시하지 못하는 속 빈 강정이란 얘기다.

 

"선배로서 뼈아픈 대목입니다. 아는 체하는 선생들은 많지만, 현실에 걸맞은 대안을 제시하는 주체는 없지요. 교육계 전반에 걸친 문제이긴 합니다. 대학 교육이 현장과 유기적이고 구체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겁니다. 글로벌시대에 우리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나아갈 다양한 해외 창구를 개척하는 일도 사실 교육계의 몫입니다."

 

양 대표는 우리 교육계가 아직도 밥그릇 싸움에 연연하고 있는 점은 아직도 우리 예술계가 갈 길이 멀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 문화코디네이터 양한모 아지트 대표. 지난 16일 UPI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문화론을 펼치고 있다. [제이슨 임]

 

해석에 따라 장밋빛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도 전해줬다.


K-팝, K-무비 등 대중 예술은 현재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미술이나 사진 같은 분야는 아직 우리의 실력이 해외에서 저평가되고 있다는 얘기다. 언젠가 큰 가치로 발현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처럼 읽혔다.

"미래에 온전한 평가를 받는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요. 크로아티아 작은 도시의 작가들조차 캐논 같은 유명 글로벌기업으로부터 적잖은 지원을 받습니다. 자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나라 카메라 시장은 세계 2위인데도 이런 지원이나 투자를 받지 못합니다. 아직 우리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양 대표는 예술계를 지탱하는 원동력인 문화 소비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아쉽지만 그는 해당 분야에 있어 우리는 아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냉정한 평가도 내놨다.

 

"유럽을 돌아보면 문화 소비가 보편화돼 있습니다. 작품을 소장하고 서로 자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겁니다. 이런 양질의 소비문화가 예술 발전의 자양분입니다. 문화 소비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술작품을 꼭 정해진 곳에만 걸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요. 해외 선진국 사람들은 거실이든 주방이든 주어진 공간에 자신이 수집한 작품을 자유롭게 걸고 향유합니다. 문화향유의 생활화죠. 부럽고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그는 예술은 그저 있는 자들이나 아는 체하기 위해 골방에 숨겨놓은 전유물이 아니며 어디나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도시도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는 혁명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 서울 상암동 DMC빌에 마련된 아지트 갤러리 내부 [SayArt(세이아트)]

 

"건축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오랜 세월 세계 유수의 건축 박람회와 여러 도시를 둘러볼 수 있었지요. 이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디자인 자체가 하나의 도시를 먹여 살린다'는 겁니다. 과거 오세훈 시장의 기조로 우리도 DDP를 열며 이런 생각과 같은 야심 찬 도전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더 나가지 못하고 있어 아쉽습니다. 우리 도시도 다른 해외 유명 도시처럼 예술 자체가 도시에 녹아든다면 경제적 가치를 넘어 아등바등 생활전선에서 분투하는 국민에게 큰 위안이 되고 쉼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계의 고질적인 병폐로는 '가오다시'(かおだし·顔出し) 문화를 꼽았다. '가오(카오)'는 얼굴, '가오다시'는 '얼굴을 내민다'는 뜻으로, '잘난 체 하기', '있는 척 하기'의 의미다.

 

"좋게 말해 '폼생폼사'지 실속이 없는 허영이죠. 전시 한번 연 청년 작가가 작가 인양 들떠 작품의 질보다 오히려 액자나 프레임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면 선배로서 생각이 많아져요. 이런 겉치레 문화는 본질을 추구해야 하는 예술 분야에 암적인 존재입니다."

 

양 대표는 "작가는 벼슬이 아니라 끝없는 내적 탐구를 통해 자신의 예술혼을 시대정신에 녹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혼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문화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며 파주 출판단지를 실례로 꺼냈다. "초기엔 참 좋았어요. 하지만 아직도 크게 활성화하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죠. 공간과 지역은 언제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필요하죠. 물론 그런 것들이 아예 없었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너무 빨리 가려고 서둘렀던 게 아닌가 싶어요. 문화는 결코 빨리 달린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죠. 시간을 두고 서서히 스며들어야 해요. 유명 작가 몇 명 붙여 요란을 떨어도 한순간의 이벤트로 끝나기 쉽죠." 그의 이런 설명은 예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성과주의'에 대한 경고로 들렸다.  

 

▲ 양한모 대표와 관계자들이 서울 상암동 DMC빌 1층 로비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SayArt(세이아트)]

 

잠시 숨을 돌린 그는 이야기를 돌려 '대안'을 꺼내 들었다. 연거푸 이어진 회초리가 '대안 없는 지적질'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가 꺼내든 카드는 '난장'이다. 지역의 유휴공간을 잘 활용해 문화 성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직접 운영비용도 들지 않는 프랑스의 '메종' 같은 곳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설명도 구체적이다.

 

"이 난장의 주인공은 청년 예술인입니다. 지역의 여러 가지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물리적 공간으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물론 계획은 단기에서 장기까지 꼼꼼히 세워야 하죠." 

 

구체적인 예도 들었다. "경부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부터 대전 국도 인근에 있는 근대 건축물이 있어요. 정선과 더불어 두 개밖에 없고 지금은 출입이 폐쇄됐죠. 이곳을 '난장'으로 바꾸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해요. 청소년 록 콘서트가 고가 위에서 펼쳐지고 청소년 오감 교육장이 있는 곳 혹은 교각에 매달려 잠잘 수 있는 숙박 공간을 꾸미면 어떨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뿌듯하죠. 상상의 나래를 따라가다 보면 공간과 콘텐츠, 예술과 관객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난장'을 만날 수 있죠." 

 

그의 설명은 지역의 유휴공간을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연결하고 이곳에서 난장판을 벌일 예술가들이 공존한다면 단순 이벤트가 아니고 지속해서 지역사회와 예술가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선순환 문화 경제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런 난장을 전국 여러 곳에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문제는 매번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에 맞는 정치적 고려나 이벤트성 성과주의로 방향타를 트는 때가 많다고 했다.

그가 꿈꾸는 예술계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호응하는 세계다. 그는 이런 흐름을 한국의 '네오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내년엔 아예 단체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그는 사실 이를 위해 이미 많은 일을 저질러놨다. 공유잡지, 인터넷 신문, 전시공간 등 분야도 다양하다. 그가 추구하는 방식은 '공유'다. 말하자면 함께 힘을 모으고 나누는 방식이다. 실례로 그는 이미 꾸려놓은 하드웨어를 활용해 예술가를 위한 현실적인 잡지도 만들고 있다. 편집비용도 일체 받지 않는다. 제작이 필요한 이들이라면 스스로 규모에 맞는 소비를 통해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는 흩어진 여러 프로젝트를 뭉쳐 하나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게 하려는 꿈도 있다. 그가 운영하는 아지트는 그 가운데 미술을 위한 교두보다. 아지트는 "갤러리가 문화다"라는 기치로 이미 독특한 예술가를 중심의 여러 전시를 선보여 왔다. 

 

▲ 아지트는 현재 상암동 DMC빌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전을 열고 있다. [SayArt(세이아트)]

 

"한국 사회는 출산율 저하로 여러 방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어요. 한 계층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문화적으로 잘 놀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살맛 나는 세상이 돼야 출산해야 할 이유도 생깁니다. 현재 상암동에 마련된 아지트에선 내년 봄이 되면 야외에서 무료 결혼식을 열고 무료로 사진 촬영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한국 전통 결혼식이니 입주 외국인에겐 독특한 경험이 되고 우리는 한국 문화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예술과 문화는 어느 한 곳에 한정된 것은 아니에요. 어떤 고리든 연결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것이 예술이고 문화입니다."

문화 코디네이터로 그는 혹한에도 비지땀을 흘리며 '일인다역'을 소화, 자신이 꿈꾸는 '대한민국 난장 문화'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지만 사실 그는 어엿한 중견 사진작가다. "예전에 궁 사진을 찍는데 관계자가 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다 지붕에 집중하게 됐지요. 나중에 한·중·일 삼국의 지붕은 서로 다르다는 걸 알고 한동안 삼국의 지붕을 비교하기 위해 적잖은 시간을 보냈어요. 한번은 전남 구례의 운조루가 250년 만에 개·보수를 한다는 소식에 7개월 동안 매주 현장에 내려가 노숙을 하며 역사의 속곳을 앵글에 담는 기회도 잡았습니다."

▲ 양한모 대표의 한옥 사진 작품들 [SayArt(세이아트)]

 

그러고 보니 그 자신도 예술가였다. 자신의 사진 작업 이야기를 시작하다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방언이 터지듯 자신의 예술세계를 설파했다. "한옥은 살아있는 문화입니다. 누마루 하나 허투루 짓지 않았죠. 풍광은 바람길조차 막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합리적인 구조 때문에 지붕만 조정하면 99칸까지 늘릴 수 있어요. 하나가 방이 되면 하나는 툇마루, 하나는 부엌으로 꾸밀 수 있어요. 오늘날 모듈 주택의 원형입니다. 마당은 채웠다 비웠다 할 수 커뮤니티 공간이었고 들문을 들어 툇마루를 확장할 수 있죠.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들고 자연으로 환원시킨다는 점에서도 유익합니다. 특히 한지 한 장을 막아 겨울을 나는 지혜는 외국 건축학자들을 놀라게 할 따름입니다."

문화코디네이터로 '난장'을, 사진작가로 '한옥 문화'를 각각 말하지만 그가 말하는 예술론은 사실 동일한 것일 듯했다. 한옥이 삶과 문화를 함축한 공간인 것처럼 문화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대안 공간인 '난장'은 콘텐츠 그리고 예술가, 관객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게 하는 '공유문화경제'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인터뷰 끝머리에 양 대표는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았으니 남은 인생은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이 발 딛는 문화계가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양한모 대표가 이끄는 아지트는 현재 서울 상암동 DMC빌리지 1층 로비에서 연말 전시 '12월 크리스마스 선물전'을 열고 있다. 유휴공간을 활용해 열리는 이번 전시를 둘러보면 그가 말하는 '난장'의 작은 실마리를 확인할 수 있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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