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 '웃는 얼굴...Stay Gold', 내년 1월10일까지 비채아트뮤지엄 전시
화순으로 터 옮긴 후 지역 작가로…"지역 역사성 작품에 담으려"
전시관에서 마주친 아이 조각상의 웃는 얼굴이 상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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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원 특별초대전 '웃는 얼굴...Stay Gold' [심그린 세이아트(SayArt)] |
수은주까지 얼어붙게 할 것 같던 18일 오후 서울 한 갤러리에서 마주친 대형 조각 '웃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은 한파에 눌려 잔뜩 웅크린 기자의 어깨를 한순간 펼쳐 세웠다.
푸른 살갗 위에 듬성듬성 흰 자국을 두른 웃는 아이 모습은 맑은 겨울 하늘과 구름의 분신과도 같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도 선보였다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고단한 삶에 잠시 휴식을 주고 싶은" 작가의 소회가 담겼다.
끝 모를 우크라-러시아 전쟁, 새롭게 시작된 이-팔 전쟁 등 지구촌 곳곳서 날아드는 암울한 소식이 지구촌 시민의 가슴을 짓누르는 나날이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웃는 아이 조각상의 해맑은 웃음은 이런 엉클러진 세상을 잠시 잊게 했다. 이 작품은 수년 전부터 '웃는 아이' 시리즈로 국내 관객의 '꽃'이 되기 시작한 조각가 이기원의 것이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찡그린 세상에 '웃음'을 던지고 있는 이 작가의 예술 인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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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는 아이' 시리즈의 조각가 이기원. [심그린 세이아트(SayArt)] |
이기원 작가는 애초 광주광역시 사람이다. 고등학생 시절 광주항쟁을 몸으로 겪고 그곳에서 '격동의 반세기'를 보냈다. 코로나가 막 창궐하던 2019년 전남 화순으로 터를 옮겨 작업실을 꾸며 예술혼을 이어가고 있다. 손수 일군 2평 남짓 텃밭엔 오이, 방울토마토, 고추도 심었다. 땅을 비집고 나오는 생명의 신비는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과 깨달음을 줬다. "저와 그것들 모두 자연의 일부죠. 자연은 언제나 많은 걸 일러주는 스승이죠."
그는 젊은 시절 '사회참여' 작가로 여러 해 활동했다. 어린 시절 기억은 그를 작업실에만 머물게 놔두질 않았다.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한 친구, 선혈이 낭자해 고함치던 친구들의 생생한 모습은 초기 그의 예술 활동에 큰 영향을 줬다. 1990년대까지 이어진 그의 이런 예술 활동은 말하자면 '민중미술'이다. 당연히 그의 작품엔 어둡고 암울한 기운이 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온전히 작업실로 돌아온 건 독재가 끝난 뒤였다.
1996년의 결혼과 2세 출산은 그의 작가 일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생명에 대한 경외로 열린 새로운 시야였다. "아이가 제 발가락을 닮았더라고요. 신비로웠죠." 그때부터 그는 '모성 시리즈'를 시작했다. 엄마 품에 안긴,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쩜 이런 그의 작품들은 긴 암울한 터널을 뚫고 나온 새 시대를 읽기 시작한 그의 자화상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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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원 작가가 18일 UPI뉴스 인터뷰에서 '웃는 아이'시리즈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심그린 세이아트(SayArt)] |
나이 50이 되자 그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이란 화두에 매달렸다. 4년여의 세월. 엎치락뒤치락 밤을 설친 끝에 2015년쯤부턴 '관객과 소통'이란 명제에 다가설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의 변화로, 작가는 기존 작품, '엄마 품에 안긴 아이'를 세상에 따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을 '웃는 아이의 작가'로 부르기 시작했다.
"웃는 아이 시리즈 장르는 팝아트라고 할 수 있죠. 몇 해 동안 매달린 화두의 끝은 결국 '대중과의 소통'이었죠. 광주에서 열린 키스 해링(Keith Haring) 전시도 이런 화두의 정리에 도움이 됐죠. 작가의 소통은 결국 생명이라고 생각해요." 전시관에서 마주친 '웃는 아이'는 꽤 긴 시간을 거쳐 세상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셈이다. 엄마 품에서 내려앉은 아이는 소통을 위해 한 단계 성장한 작가 자신의 자전적 모습인 셈이다.
초견에 누구의 닫힌 맘이라도 활짝 열어젖히는, 마법의 웃는 아이 얼굴. 해석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불안한 현실을 초월한 아이 본연의 그저 '천진난만' 웃음일 수도, 폭주하는 자본주의나 엉터리로 흘러가는 현재에 대한 냉소적인 웃음일 수도 있다. 해석은 물론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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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각가 이기원 [심그린 세이아트(SayArt)] |
이런 철학적 화두는 차치하고 조각상 '웃은 아이'는 기존의 조각과 다름의 미학이 있다. 아이의 몸에 덧입힌 색상이다. 보통의 조각은 무채색으로 마무리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유독 이 작가의 작품에 회화적 요소인 '색상'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을 '회화적 요소를 가진 조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또 색의 선별이나 처리가 일반회화 수준을 넘어선다.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해 7수를 했다. 결국 고향에 내려가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헛공부는 없었다. 입시를 위해 밤낮 연습한 회화연습이 지금의 큰 자산이 됐다"고 했다.
"아이의 웃음을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존귀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리고 싶은거였죠." 이를 위해 그는 최근 레진(Resin·고무나 플라스틱 같은 합성수지)으로 만든 작은 아이 조각상에 금박을 입히기 시작했다. 세속주의적인 금박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의외로 그의 설명은 심플하다. "금은 지구가 만들어질 때 처음 생성된 것으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하나의 원소다. 인간의 생명도 이처럼 유일하고 존귀하다"는 설명이다.
금박 작업엔 유명 공중파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에 출연했던 고교 동창인 '금박 달인' 박영걸이 힘을 보탰다. 레진으로 만들어진 아이 위에 옻칠하고 그 위에 금박을 올려 수백수천 번을 두드려야 금박은 생명력을 얻는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금박 웃는 아이는 다이빙대, 높게 키를 늘린 의자나 교각 위에 올라선 것도 특징이다. 이런 받침은 현재의 불안한 현실을 나타내는 하나의 장치로 볼 수 있다. 여러 불안요소가 바닥에 깔려 있지만 이를 초월한 듯 찬란하게 웃는 아이 얼굴은 이채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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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업 중인 조각가 이기원 [작가 제공] |
이 작가는 대형 웃는 아이 조각상의 작업 과정도 설명했다. "소재는 스티로폼이다. 처음엔 압축 스티로폼을 니크롬 열선으로 깎아서 모양을 잡고 나중에 세밀한 부분은 커터 칼로 작업해요. 모양이 다 갖춰지면 여러 날 사포질로 시간을 보내야 하죠. 나중에 덧씌워지는 색상은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지막 작업으로 보면 됩니다." 이런 작업은 시간을 한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작업이 더뎌지는 이유는 유일하다. 생각이 막혀 작업 능률이 나지 않는 탓이다. 그러면 이 작가는 얽히거나 섞인 생각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면 더러는 여러 달 한발치도 못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사실 웃는 아이의 얼굴은 어느 날 우연히 본 후배의 아기 얼굴을 참조한 것이라 귀띔했다. 기독교신자인 이 작가는 그날 어쩌면 아이의 얼굴에서 예수를 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화순을 주목했다 "올해 7~8월엔 운주사 복합문화관 재개관전에 초대작가로 불려 여러 작품을 전시했다. 운주사는 유홍준 작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등장하는 국내 유명사찰이다. 나는 화순이 좋다. 화순에 왔으니 앞으로 지역 작가로서 여러 활동을 하려 한다"고 했다.
그가 화순에 애착을 같은 이유도 있다. 화순은 우리 독립역사에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었고 민주역사에 이한열 열사와 같은 큰 별을 낸 곳이기도 하다.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림의 거두인 조광조가 유배돼 여러 흔적을 남겼고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이 생을 마쳐 '초분지'가 세워졌던 곳이다. 또 100여 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탄광지가 문을 연 곳이기도 하다. 작가로서 욕심낼 만한 예술적 이야기 재료가 많다는 얘기다. 그는 화순의 역사는 조각 보다는 캔버스 같은 평면에 담고 싶다고 했다. "조각가의 본류를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화순 땅의 역사를 작품에 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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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중인 조각가 이기원 [심그린 세이아트(SayArt)] |
그는 특별초대전을 위해 25년 만에 상경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이제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소일거리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이제야 만개한 듯 하루가 열흘보다 길다.
이번 전시엔 신작 19점을 준비했다. 골판지 위에 그린 고인돌과 붉은 양귀비꽃 그림도 출품했다. "평소 물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골판지는 고인돌의 긴 세월을 표현하는데 요긴했다. 한때는 권력자였을 이의 고인돌이나 그 옆에 붉게 핀 화려한 양귀비 모두 '권력의 헛됨'을 말한다"고 했다.
수은주는 영하 10도를 가리키지만 벌거벗은 '웃는 아이'는 추위를 모른채 시종 웃음 짓는다. 작가는 이번 특별초대전 관객들에게 '자신들 속에 있는 아이'를 세상에 꺼내놓으라고 채근하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내 속의 아이를 찾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면 이깟 추운 날씨뿐만 아니라 암울하고 엉터리로 돌아가는 세상조차 가벼운 기지개와 웃음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듯하다.
19일부터 시작한 조각가 이기원의 특별초대전 '웃는 아이(Stay Gold)'는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서초구 방배동 '비채아트뮤지엄'에서 열린다. 웃음을 찾아나서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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