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의 인사이트] 저출산 시대 씁쓸한 어린이날 풍경

임항

yh@kpinews.kr | 2023-05-04 11:10:46

청년 수도권 주거지원? 지방이주 지원 전환 절실
가정내 성평등 이루려면 남성 육아휴직도 늘려야
육아휴직급여 소득대체율 높이고 수혜자 확대해야

어린이날 풍경이 달라졌다. 부모가 많은 자녀에게 선물을 사주느라 허리가 휘던 건 옛날 얘기다. 요즘은 부모, 이모, 고모, (외)삼촌까지 집안에서 유일한 어린이 한 명에게 선물을 하고 같이 논다. 마치 아이가 외롭고 지친 어른들을 되레 위로하는 날인 것 같다. 초저출산시대의 씁쓸한 풍경이다. 

▲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어린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걷고 있다. [UPI뉴스 자료사진]

'저출산 대응정책,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최근 잇따르고 있는 초저출산 관련 토론회 현수막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제목이다. 지난 4월25일 국회가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제3회 국가현안 대토론회를 온라인으로 시청하면서 '저출산 대책이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와 의문이 교차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잘 추려내도 반은 성공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된 것은 다음 두 가지 정도다.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의 지나친 포괄성을 버리자. 즉 백화점식 대책을 지양하고 저출산과 직접 연관성 높은 정책에 집중하자. 다른 하나는 일회성, 한시적 현금급여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다만, 현금급여 전반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했고, 증액 의견도 있었다.

해야 할 것으로는 저출산 대응정책의 재구조화가 많이 거론됐다. 특히 육아휴직급여를 내실화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이 나왔다. 육아휴직급여의 상한액을 높이고, 적용범위를 넓혀 수혜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통상임금의 80%인 육아휴직 급여의 상한액이 150만 원이라서 최저임금의 80%인 165만 원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 단축의 중요성도 여러 번 강조됐다. "출산 육아지원정책의 모든 전제는 노동시간 단축입니다." (김은지 여성정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 "제가 아이를 낳고 양육환경에 제일 도움이 된 것은 '주52시간제 도입이었습니다.'"(임아영 경향신문 기자) 

육아휴직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이 저출산의 근접요인 대응 가운데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아휴직급여 수준을 높여도 어지간히 인력사정이 좋은 회사가 아니고서는 신청하기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근로감독만으로 노동시간과 휴직신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노사정이 직종별로 프리랜서 인력풀을 만들어 중소기업의 육아휴직으로 생기는 일터의 공백을 메우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간 정부는 저출산에 대해 주거지원과 일자리 확대 등 경제적 지원을 위주로 접근했다. 그런데 주택난과 실업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난제들이다. 지금 같은 격차 사회의 수도권에서 번듯한 일자리와 주택 마련이 대다수 젊은이에게 애당초 불가능하다면 정부는 헛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가구 및 청년 주거지원(출자·융자)은 24조 6000여억 원으로 전체 저출산 대응 예산(51조7000억 원)의 46%나 차지한다. 그런데도 결혼건수와 출산율은 급전직하를 멈추지 않는다. 

이는 젊은이를 지방으로 유도하는 강력한 정책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젊은이들 수도권 주거지원 대책은 유턴을 감행해서 청년 귀촌 및 향촌 지원 프로젝트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 봄직하다.

대도시의 인구밀집도와 낮은 출산율, 그리고 전쟁 직후 시기와 높은 출산율 간의 일관된 상관관계를 보면 결혼과 출산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적 힘도 작용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난달 14일 이 칼럼에서 청년인구의 지방 이주가 가장 우선적 대책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흔한 오해로서 저출산이 여성이 애를 낳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특히 남자들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남자가 결혼도 안 하려 하고 육아에도 협력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도 결혼을 꺼리는 게 현실이다. 

이런 남성과 사회의 육아 비협조가 비혼과 만혼을 낳고, 이것이 저출산의 직접 원인이다. 실제로 출산율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가정 내 성평등 수준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조영태 서울대교수에 따르면 호주의 인구학자 피터 맥도널드 교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출산율은 내려가지만, 가정에서의 지위가 높으면 출산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가사노동에 정부가 개입할 수는 없으므로, 남성 육아휴직이 중요한 간접적 정책수단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한국 남성의 육아휴직률은 2021년 기준 4.1%(일본 민간기업 13.97%)이고, 여성의 육아휴직률도 65.2%(85.1%)로 일본보다 낮다. 

일본정부는 3월17일 발표한 저출산대책에서 남성 육아휴직률을 2030년까지 여성과 같은 85%로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한 정책에 강제력을 부여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직원 1000명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남성 육아휴직률 공표를 의무화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남성 육아휴직의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채 부모가 공동으로 육아휴직을 쓸 경우 지급하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확대하겠다고만 밝혔다. 

민간기업과 아빠들의 행동을 단기간에 바꿀 묘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아빠들에게도 1개월 이상의 산전후(출산) 휴가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최슬기 교수의 제안에 적극 동의한다. 남성에게 육아 초기단계에 이뤄지는 출산휴가를 의무화하면 육아의 고됨과 함께 기쁨과 보람도 느끼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육아휴직 요구가 늘어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육아휴직급여 등 (부)모성보호급여를 고용보험이 아닌 일반회계에서 지출하도록 해야 한다. 토론회에서 강대훈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장은 "육아휴직은 급여의 재원을 고용보험기금에 의존하면서 대규모 사각지대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조 원에 이르는 모성보호급여를 국가재정에서 담당토록 하는 것은 육아는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한 이를 통해 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니라서 육아휴직급여의 사각지대에 있는 자영업자와 특수고용노동자도 떳떳하게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이번 토론에서 드러났고, 임아영 기자도 말했듯이 적어도 저출산 대응에서는 노동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보건복지부 대신 노동부를 간사부처이자 사령탑으로 임명해야 한다.

KPI뉴스 / 임항 사회전문기자 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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