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의 인사이트] 저출산 원인? 문제는 생물학이야 이 바보들아
임항
yh@kpinews.kr | 2023-04-14 15:06:40
비혼·만혼은 높은 경쟁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
인구과소 지자체, 서비스업 창업·문화에 눈 돌려야
파격적 향촌수당이나 농어촌 기본소득 절실
대형수조에 금붕어 200마리가 들어 있다고 치자. 어항은 보통 가장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하나의 생태계라고 본다. 이 수조의 금붕어 적정 최대개체 수가 100마리라고 한다면 금붕어들은 한정된 공간과 산소 부족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채 뻐끔거리며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수도권과 그 주민은 대형수조에 밀도 높게 갇힌 금붕어와 비슷하다. 이처럼 생존경쟁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금붕어가 새끼를 낳을까.
새롭게 가다듬은 저출생 대책이 지난달 28일 대통령 주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에서 나왔지만,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평가조차 차라리 진부하다. 국민들은 물론이고, 정책을 발표한 대통령과 이를 집행할 정부 관료들도 백화점식 대책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저고위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서 저출산 정책을 냉정하게 다시 평가하고,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적어도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초저출산의 가장 크고도, 근본적 원인은 수도권 집중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그것 자체가 신기록이지만, 서울은 출산율이 0.59명으로 그보다 훨씬 더 낮았다.
서울에 이어 부산(0.72), 인천(0.75), 대구(0.76) 등 광역대도시들이 합계출산율 바닥을 형성했다. 이에 비해 전남, 강원, 경북은 0.97, 0.97, 0.93으로 세종시(1.12)에 이어 2, 3, 4위였다.
상대적 고출산 지역 청년들이 저출산 지역으로 과다하게 이동함으로써 가뜩이나 심한 저출산을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저고위에서 나온 초저출산의 원인과 대책 가운데 수도권 과밀이나 균형발전은 없었다. 거시적 요인은 보지 않은 채 단기적 미시적 변수들을 나열하는 데 그친 것이다. 인구학 용어로는 원(遠)거리 요인을 간과하고, 근접요인만 따진 것이다. 큰 그림이 없으니 우선순위가 없고, 드러난 변수를 꿰뚫을 마스터키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수도권 편중의 인구 영향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저고위의 민간 자문위원이기도 한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저서 '인구, 미래, 공존'(2021, 북스톤)에서 "초저출산의 기저 원인에는 '인구밀도'와 '인구편중'이 있다"면서 "한국의 초저출산은 밀도 높은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적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1명 이하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한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이 모두 도시 혹은 도시국가라는 점을 들어 "서울 땅에서만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한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이 반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말로는 균형발전을 외치면서 여전히 수도권 과밀을 부추기는 정책을 펴고 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주거안정 대책이라는 구실로 수도권에 신도시를 계속 확장해 나간다. 인구 집중을 가속화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수도권의 교통인프라를 확대하는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5일 정부가 발표한 전국 15곳의 국가첨단산업단지(산단) 조성 계획에서 핵심은 경기도 용인을 대상지로 한 '첨단 시스템 반도체클러스터'다. 이를 위해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의 빗장도 풀겠다는 얘기마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코끼리와 같은 대형 포유류에서 출산율이나 첫째 출산 연령이 먹이 사정과 개체 밀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같은 지역 안의 같은 종의 모든 새들이 먹이의 가용성과 종의 개체 밀도에 따라 낳는 알의 수를 달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의 장이권 교수는 "번식을 여러 해 하는 동물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개체군 크기를 조절한다"고 말했다. 먹이나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자식을 성체로 키워낼 수 없거나 오히려 자식이 있어서 자기 생존이 불리해질 경우 동물들은 출산을 훗날로 미룬다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인구밀집 지역에서의 출산율 저하는 동물 종의 개체군에서처럼 경쟁 스트레스가 높아진 탓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수도권에서처럼 가용한 에너지(먹이와 자원)의 절대량이 풍부한 곳에서의 경쟁은 양상이 다르다. 단지 제 구실을 하는 성인으로 키워내기 위한 조건이 더 까다로워졌고, 좋은 보금자리와 좋은 학교, 좋은 일자리를 위한 경쟁은 갈수록 더 치열하다. 보통의 부모가 되는 것이 사실상 완벽한 부모가 돼야 함을 의미할 때 대다수 청년들은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수도권은 지금 인구가 급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인구밀도도 높고, 자원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흔히 지방소멸의 위기를 말하지만, 공동체로서 더 깊은 병이 들어 있는 곳은 오히려 수도권이다. 바쁜 출근시간에 고층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만원전철 속에 구겨 넣어질 때, 혹은 꽉 막힌 도로에 갇힌 승용차 속에서 나도 모르게 이웃에 대한 적개심이 생기는 경험을 수도권 주민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가 수도권에 많다고 하지만, 많이 벌어도 물가가 비싸고, 생활비가 많이 든다. 육아를 위한 공동체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서울은 우리나라 인구의 블랙홀이다.
앞서 말한 인구증감의 원(遠)거리 요인부터 따져 보면 수도권의 인구 편중을 줄이기 위해 경남북과 전남북, 그리고 춘천과 원주를 제외한 강원도에 청년, 특히 20~45세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도시로부터 이주한 청년들에게 1~2년간 파격적 금액의 농어산촌 수당을 주든가, 최근 선거공약으로도 등장하는 농어산촌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방안도 인구유입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구 과소지역인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매력적인 곳, 즐길 거리가 있는 곳을 여러 군데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처럼 제조업 일자리 만들기나 산업단지 유치와 같은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지향은 버려야 한다. 일본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는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없는 자치단체는 사라진다'라는 글에서 시골로 이주하려는 여성들의 관심사가 육아지원과 교육수준과 의료, 그리고 즐길거리와 있을 곳(문화)이라고 강조했다. ('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우치다 다쓰루 외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나라에서도 근사한 카페와 음식점이 늘어난 제주도에 인구가 제법 늘어났음을 상기해 보자. 혹은 인구가 느니까 개성 있는 가게도 늘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지자체가 우선 지원해야 할 대상은 다양한 서비스업종의 야심찬 청년창업자들이다. 이들이 대도시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초저출산을 먼저 경험한 일본의 경제학자 모타니 고스케는 "지금 유효한 방법은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생활비가 저렴하고 서로 돕는 기풍이 남아 있는 지방으로 아이를 원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을 많이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中)
중요한 것은 생활방식, 생활환경의 변화다. 경쟁 대신 공존과 균형을 추구하자. 다시 생물학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각자 생태학에서 말하는 적소(適所, niche)를 찾아 나서면 평화와 균형이 이뤄지고, 삶에 여유가 생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서울, 일류대, 대기업 취업 일변도의 경쟁적 삶의 지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와 이를 뒷받침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게 바로 결혼도 하고, 애도 낳을 환경인 것이다.
KPI뉴스 / 임항 사회전문기자 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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