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조련사' 최남욱 교수 "행복해야 끝까지 갈 수 있어"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3-04-06 11:15:07
"왜 대중음악 하는지, 음악이 행복한지 고민해야"
"한국, 음악 이론과 실기 체득할 펀더멘털 갖춰져"
K팝은 이제 하나의 장르다. 세계 주류 음악으로 자리잡았다. 싸이나 BTS, 블랙핑크 성공신화만이 아니다. 수많은 K팝 스타들이 탄탄한 실력으로 세계 무대에 나서고 있다.
일찍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꿈도 못 꾸던 일이다. 1980년만 해도 대중음악인은 '딴따라'로 불리기 일쑤였다. 집안에선 걱정거리로 취급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딴따라들이 이제 K팝 조련사가 돼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동서울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최남욱 교수도 그중 하나다. 최 교수에게 K팝 산실인 '실용음악과'에 대해 들어봤다.
실용음악과는 1988년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교)에 처음 개설됐다. 현재 전국 여러 60여 대학에 학과가 개설됐으니 이제 산업역군을 키우는 요람이 됐다. 최 교수는 "예전엔 관련 학과도 거의 없어 일반 사설 학원에서나 대중음악을 접합 수 있었다"며 "이제 다양한 과정이나 기회가 있으니 미래 음악도에게는 참 꿈같은 날"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가왕으로 불리는 임재범 5집 프로듀서로 활동했으며 김정민의 '굿바이 마이프렌드' 허준호의 '반항2' 등 여러 곡을 히트시킨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 출신이다. 그는 일찍 데뷔했다. 나중에 '다 줄거야'로 유명 가수가 된 고교시절 친구인 조규만과 하드록 밴드 한가람을 결성해 정식으로 데뷔했다. 당시가 1980년대 후반이었으니 그는 말하자면 그도 원조 '딴따라'인 셈이다.
그는 요즘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시절이 많이 바뀌었죠. 요즘 친구들은 재능도 놀랍고 정신적으로 유연하니 우리 때와는 사뭇 달라요. 참 창의적이죠. 예전엔 작곡·작사·편곡자의 역할이 달랐지만 요사이엔 작곡과 편곡은 팀 단위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리듬을 책임지는 비트메이커와 화성악기를 주로 담당하는 트렉메이커, 주요 멜로디를 담당하는 톱라이너 등 여러 명이 한팀이 돼 경쟁력 있는 작품을 빨리 만들어내죠. 예전엔 작품 하나 맡으면 서너 달 여유를 두고 작업했지만 최근엔 작업 마감기한이 매우 짧아져 1주일 정도 혹은 하루 이틀 사이에 작품을 완성해야 하거든요."
그는 대중음악을 하나의 산업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예전엔 곡이 히트하더라도 그 범위나 대상이 제한적이었지만 이젠 세계인을 상대로 하니 파급력이 엄청나죠. 확실히 산업으로 이해해야 할 듯해요. 물론 경제적 지표는 전문가들이 추산해야겠지만 글로벌 히트 작곡가가 되면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가 되는 것도 꿈이 아니죠."
이런 한국 팝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최 교수는 진단은 이렇다. "지금 엔터테인먼트사를 대표하거나 의사결정자 대다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뮤지션으로 활동했던 이들이죠. 그 이전엔 사실 전문적으로 음악공부를 한 이들이 드물었죠. 당시 작곡가들은 밴드 활동을 하는 그룹사운드가 아니라면 통기타 하나로 곡을 써 전문 편곡자에게 달려가는 경우가 허다했죠. 희끗한 머리에 빵모자를 쓰고 파이프 담뱃대를 물던 나이 많은 편곡자들에겐 말조차 붙이기 힘들었죠. 하지만 90년대 등장한 컴퓨터 음악은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꿔놨죠. 한 사람이 작곡부터 편곡, 녹음 등을 모두 끝낼 수 있게 했으니 말 그대로 천지가 개벽한 거죠. 그때부터 많은 젊은 작곡가들은 작곡뿐만 아니라 편곡 녹음 믹싱에 이르는 전반적인 프로듀싱 기법을 손에 익힐 수 있었죠. 또 외국에서 공부한 이들도 속속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우리보다 앞선 외국 음악 정보를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어요. 인터넷의 발달도 큰 힘이 됐죠. 결과적으로 대중음악 실력이 상향평준화 했다고 봐야죠. 물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분야는 한국인 특유의 집중 교육 방식이 힘을 발휘한 것 같아요. 엘리트 체육 같은. 세계를 놀라게 한 칼군무가 좋은 예죠."
실용음악과를 준비하는 이들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대중음악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죠. 특히 스타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봐야 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왜 대중음악을 하려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자세가 중요해요. 모두가 스타가 될 수는 없지만, 음악을 중심으로 보면 다양한 꺼리나 방향도 많죠. 그래서 중요한 것이 음악에 대한 재미를 놓치지 않은 거예요. 꾸준히 매달리다 보면 나와 걸맞은 혹은 더 잘할 수 있는 음악적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행복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으니 음악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를 심사숙고하는 게 좋을 듯해요. 그저 스타가 되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최 교수는 지금까지 한순간도 음악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행복했기 때문이라며 유명 작곡가든 교수든 모든 타이틀은 그저 부차적으로 따라온 것이라 했다.
최 교수는 더러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실용음악과에 입학하고도 자신의 길에 회의를 느껴 방황하는 친구들이 있어 애가 탄다고 했다. "교수 이전에 나는 그들의 선배다. 그들이 지치지 않고 자신에 맞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고 에너지가 있다. 꿈은 꿈꾼자가 실현하면 되지만 숨겨진 에너지를 건드려주고 찾아주는 것은 나의 역할이다. 교수가 별거이겠는가. 학생들이 즐겁게 수학하도록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국내 60여 대학 실용음악과는 100퍼센트 실기만으로 선발하는 학교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실기와 학생부 성적 비율이 6대4쯤 된다. 보통 실기가 당락을 가르는 셈이다. 더러 실기에서 음악 이론 시험을 병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대학에선 실기를 주요 선발 요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뮤지션이 된다면 악기 하나쯤은 통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컴퓨터가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죠"라고 했다.
실용음악과을 졸업했다고 스타가 되는 건 물론 아니다. 최 교수는 "실용음악과 과정은 프로뮤지션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범위의 과정을 살피고 이수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설명. "다만 다양한 과정이나 범위를 안다면 향후 프로 뮤지션 활동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도 쌓을 수 있어 좋다. 같이 공부한 동료나 선후배를 통해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학과의 경우 무엇보다 많은 무대 경험을 쌓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보통대학의 실용음악과에선 졸업 공연 정도만 무대에 올려요. 하지만 우린 학기별로 크고 작은 무대공연을 연거푸 진행해요. 더러는 홍대 등의 사설 공연장에 학생들의 공연을 올리죠. 학생들은 공연이 많아 더러는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하지만 많은 무대 경험은 향후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무대 위의 연주자가 아닌 작곡이나 편곡자가 되더라도 자주 무대에 오르면 가수나 연주자들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 더 극적인 곡들을 쓸 수 있을 거예요."
교수실 책장엔 과거 그가 활동했던 여러 흔적이 남아있다. 그가 참여한 앨범이나 활동 당시의 사진들이다. 실용음악가 교수답게 일렉기타와 클래식 기타가 한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그는 90년대 중반 돌연 일본으로 떠났다. 이미 히트곡을 가진 작곡가였지만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싶었다.
"당시 일본 음악은 여러 면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었어요. 모든 믹싱이 마쳐진 스테레오 음원을 최종적으로 보정하는 것을 마스터링이라 하는데 그 기술은 상상을 초월했죠." 그는 당시의 음악적 충격을 회고했지만 구태여 이젠 외국 유학이 필요 없는 시대가 왔다고 했다. "이미 국내에서 다양한 음악 기법이나 이론과 실기를 체득할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우리에겐 펀더멘털이 갖춰졌죠. 오히려 세계인과 교류를 위해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좋을 듯해요. 이제 글로벌 경쟁시대니까요."
최 교수는 수십 년 한길을 달렸다. 어땠냐는 질문에 "행복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난 늦은 저녁 삼겹살에 소주 여러 잔이 테이블을 돌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친 학생들은 연신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불편 없이 눈인사를 건네는 학생들에게 최 교수는 늦깍이 선배처럼 보였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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