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순열 칼럼] 벚꽃 선물에 담긴 일본인의 속내는 무엇이었나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 2023-03-28 18:56:41

벚꽃의 계절이다. 비로소 다시 봄을 느끼고,즐긴다. 사람이 만든 게 아니다. 자연의 선물일 뿐이다. 그런데 불편한 진실이 있다. 우리가 즐기는 이 땅의 벚꽃은 우리꽃이 아니다. 국회 뒷길 벚꽃도, 진해의 벚꽃도 모두 일본산이다.

시민단체 '왕벚프로젝트2050'의 조사로 확인됐다. 작년과 올해 국회 뒷길과 진해 벚꽃을 전수조사했더니 거의 모두 일본산 '소메이요시노'더라는 것이다.

알고보면 이상할 것 없다. 당연한 얘기다. 애초 이 땅의 벚꽃은 일제에 의해 심겼다. 일본령을 알리는 침략의 징표로 방방곡곡 꽂혔다.

그 시절 벚꽃은 일본제국주의 군대와 함께 행진했다. 천황을 위해 사쿠라 꽃잎처럼 지라.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벚꽃을 침략전쟁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해방후 거리의 벚나무들이 잘려나간 이유다.

이 땅의 벚꽃역사는 그렇게 단절됐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 이후 부활했다. 일본 기업인, 언론인들이 대거 묘목 기증에 나섰다. 배로, 비행기로 묘목을 실어날랐다고 한다. 필자는 관련 사료를 발굴해 10년전 <벚꽃의 비밀>이란 책을 썼다.

일본산 벚꽃이 무슨 잘못이겠나. 자연엔 죄가 없다. 문제는 저들의 의도다. 미래친선의 선물인가, 식민지배의 추억인가. 대륙을 집어삼키던 그 시절 상징물을 복원하려는 의도는 없었나. 과거사를 부정하며 우경화한 일본을 보면 그 순수성을 믿기 어렵다.

일본인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감정의 표출을 수치로 여기는 정서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혼네'(本音·본심)와 '다테마에'(建前·겉모습)가 다르다.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저서 <국화와 칼>(1946년)에서 이 같은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베네딕트의 눈에 포착된 일본인은 손에는 아름다운 국화를 들고 있지만 허리에는 차가운 칼을 차고 있다. 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으면서(혼네) 겉으로는 국화를 쥔(다테마에), 이중적 모습이다.

게다가 정교하다. 꽃 조차 가공할 전쟁 무기로 활용한 이들이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도 그 정교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듯하다.

왜 게이오 대학이고, 왜 오므라이스였나. 게이오대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가 1858년 설립한 학교다. 그의 '탈아론'(脫亞論)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이어졌다. 이토 히로부미가 제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하필 그런 대학에서 설상가상 조선 멸시론자 오카쿠라 덴신을 인용해 연설한 것인가.

오카쿠라 덴신은 <일본의 각성>(日本の覚醒)이란 책에서 "조선 반도는 선사시대 동안 우리의 식민지였을 것"이라고 주장한 침략론자다. "일본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 군사적으로도 조선을 소유물로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조선이 원래 일본의 영토였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오므라이스는 또 어떤가. 강제징용된 중국인, 조선인 노동자 부부가 먹고살기 위해 만든 음식(역사학자 배기성 주장)이라는데 왜 또 하필 그런 음식이었나.

이 모든게 우연인가. 역사의 미세한 조각까지 기막히게 활용하는 일본의 정교함이 느껴진다.

벚꽃엔 죄가 없다. 꽃마저 전쟁범죄 수단으로 활용한, 추악한 인간사가 문제일 따름이다. 그러고도 반성과 사과는 없다. 했다고만 할 뿐 뒤집고 부정하는 게 지금 한일관계 현주소다. 이 땅의 벚꽃엔 그래서 역사의 먼지가 그대로다. 

'왕벚프로젝트 2050'은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출범했다. 2050년까지 거리의 벚꽃을 우리꽃 왕벚으로 바꿔나가자는 시민운동이다. 이들은 창립선언서에서 "벚꽃에 쌓인 역사의 먼지, 우리꽃 왕벚꽃으로 털어내자"고 외쳤다.
 

▲ 류순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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