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롯데의 기술탈취 혐의…또 대기업의 '기술 도둑질'인가
김기성
bigpen@kpinews.kr | 2023-02-07 13:09:10
중소기업 90% 이상, 대기업 납품시 기술자료 요구받아
징벌적 손해배상액 높이고 형법상 절도죄 적용 검토해야
롯데헬스케어가 스타트업의 기술을 탈취했다는 혐의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6일 조사에 나서면서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번 공정위 조사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가 롯데헬스케어를 공정위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가 자신들의 핵심 아이디어를 베낀 제품을 내놨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1년 9월 롯데케어가 사업 협력을 제안해 미팅을 진행하면서 자신들의 핵심 기술인 개인 맞춤형 영양제 디스펜서(정량공급기) '뉴트리션 엔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 이후 협상이 결렬되자 이 기술을 베낀 제품을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CES 2023에 소개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를 사업 활동 방해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한 것이다. 이에 대해 롯데헬스케어는 알고케어가 주장하는 디스펜스 기술은 이미 해외에 출시된 보편적인 기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맞을지는 앞으로 조사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기술탈취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이후 법정 공방까지 감안하면 스타트업이 제대로 보상을 받기까지는 길고도 험난한 과정이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중소기업 94.1% 계약 전부터 기술자료 요구받아
기술탈취의 대표적 사례를 보자. 어떤 특정한 기술로 재료나 부품을 대기업에 납품하는 업체가 있으면 대기업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요구한다. 그러면 그 중소기업은 납품을 끊기지 않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은 이렇게 손에 든 기술자료를 다른 협력업체에 제공해 또 다른 납품업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기존 납품업체에 대해 단가를 깎을 것을 요구하거나 발주를 중단하는 횡포를 부리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중소기업 중앙회의 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의 94.1%가 계약 전에 기술자료를 제공할 것을 요구받았고 75.6%가 별다른 보호 조치 없이 기술자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생협력법, 기술탈취 때 3배까지 배상하도록 규정
대기업의 기술탈취는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악질적 불공정행위이다. 또 4차 산업의 발전에 대비해 첨단 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도 기술탈취는 근절돼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꾸준히 법적 보완을 통해 기술탈취를 막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8년 제정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이다. 이 법에 따라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면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 대기업이 납품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도 비밀유지계약을 의무적으로 체결하도록 했다.
피해 중소기업 장기간 법정공방에 지치기 마련
그러나 이런 법적인 보완에도 불구하고 기술탈취를 근절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우선 기술을 탈취당해도 중소기업으로서는 증거 등 입증자료를 제시하는 게 쉽지 않다. 2021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특허 소송을 보더라도 중소기업의 패소율이 무려 7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술탈취 혐의가 드러나도 결국 재판으로 결론이 나는데 중소기업으로서는 길고 긴 법정공방을 이어갈 만큼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다. 실례로 국내 은행계 카드사와 기술탈취 소송을 벌이고 있는 한 핀테크 스타트업의 경우 4년째 법정공방이 이어지면서 직원들은 흩어지고 법률비용만 쌓여가고 있다며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더불어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3배인 것도 미흡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재판에서 손해배상액으로 입증된 평균 금액이 5000만 원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대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을 탈취해서 별일 없으면 좋고 문제가 되더라도 배상해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액 늘리고 구제절차 간소화해야
전문가들은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한도를 지금의 3배 이내에서 5배 이내로 높일 것을 주장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고, 중소기업 기술 보호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와 관련된 관련 정부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 특허청,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부처가 있고 각각의 법률도 별도로 규정돼 있다. 피해를 본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법률에 따라 어느 곳에 문제를 제기해야 할지 모르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특허나 영업비밀 등을 한 번에 조회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해야 구제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기술탈취에 대해 형법상 처벌 강화해야
아무리 규제를 늘려도 기술을 탈취해서 남는 게 있다면 중소기업의 기술을 넘보는 대기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미국처럼 민사소송의 손해배상이 아니라 형법상의 절도죄를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스타트업이 활성화된 이스라엘은 특정 기업이 기술을 탈취하면 평판이 추락해 업계에서 매장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는 제도가 아니라 산업계 전체가 기술 보호 중요성을 인식할 때 가능한 것이다. 경제계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이 모두 힘을 모아야 할 일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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