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다시 강조되는 오너 경영체제
UPI뉴스
| 2022-11-23 10:33:41
IMF 이후 망한 이유도 생존비결도 모두 오너 경영
오너 경영, 전문 경영인 폐해 고려해야…조화 절실
지난 21일 로버트 앨런 아이거 전 월트디즈니 CEO가 다시 디즈니로 복귀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월가의 반응은 "왕이 돌아왔다"로 화답했다. 당일 다우와 나스닥 지수 모두 하락세를 보였지만 디즈니의 주가는 한때 9%까지 올랐다가 6.3% 오른 수준에서 마감했다. 상승폭으로 따져서는 2020년 12월 이후 최대에 해당한다.
아이거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디즈니를 이끌며 엔터테인먼트 공룡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CEO가 된 이듬해 픽사를 인수한 이후 마블과 스타워즈를 만든 루카스필름, 21세기 폭스의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잇달아 인수해 경쟁력을 키웠다. 또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OTT 시장에 디즈니 플러스로 도전장을 내민 것도 바로 아이거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이거가 디즈니를 이끄는 동안 주가는 5배 이상 올랐고 연간 순이익은 4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디즈니 이사회가 아이거를 다시 CEO로 내세운 것은 현재 디즈니의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말로 끝난 회계연도 4분기의 디즈니 매출은 201억5000만 달러로 시장 예상치 212억4000만 달러를 밑돌았고 OTT 사업에서는 1년 전보다 두 배가 넘는 14억7000만 달러의 손실을 냈다. 주가는 올들어 40%가 넘게 빠졌고 주당 2백 달러를 넘어섰던 2021년 3월과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위기에서 디즈니를 구해낼 마법으로 아이거라는 전문 경영인을 택했고 투자자들도 아이거의 귀환을 반긴 것이다.
한국에서는 드문 전문 경영인
아이거는 CEO 한 사람이 주가를 요동치게 하고 실적 전망을 밝게 해 주는 전문 경영인이고 기업의 선장, CEO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 20대 그룹을 보면 전문 경영인이라고 내세울 만한 인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나라 1호 전문 경영인으로 꼽히는 인물로 1969년 동양 맥주 사장으로 오른 고 정수창 회장이 있다. 1981년까지 전문 경영인으로서 두산그룹을 지휘했지만 이후 두산은 다시 오너 경영 체제로 복귀했다. SK 그룹의 경우 고 최종현 회장이 타개한 이후 최태원 현 회장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손길승 회장이 전문 경영인으로 그룹을 이끌었던 선례가 있다. 또 현대중공업 그룹(HD 현대)이 1991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30년을 이어오면서 고속성장을 이뤄냈다.
공기업에서 출발해 민영화의 길을 걸어온 포스코와 KT는 태생부터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갖출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별개로 쳐야 할 것이다. 그 밖의 나머지 그룹들은 계열사 사장을 전문 경영인으로 채우고 있지만 사실상 오너의 지휘를 받는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고용 사장, 월급 사장으로 봐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오너 경영을 더욱 강화하는 한국 기업
우리 재계도 한때 전문 경영인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견기업인 교촌에프앤비가 2019년 롯데 출신 소진세 회장을 선임했고, 지난해 12월 미래에셋의 최현만 수석부회장과 삼성전자 김기남 부회장이 각각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전문 경영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이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다. 한 달 전 삼성전자 이사회가 이재용 부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사실 고 이건희 회장 타개 이후 이재용 부회장이 실질적인 회장 역할을 해 왔지만, 회장 취임은 오너 경영체제로의 복귀를 상징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그밖에 농심이 계열사인 메가마트의 경영을 창업자의 3남인 신동익 부회장에 맡기면서 오너 경영으로 복귀했다. 교촌에프앤비 역시 오는 12월 창업자 권원강 전 회장이 복귀할 예정이다. 또 30년 전문 경영인 체제를 이어온 현대중공업 그룹도 정몽준 이사장의 아들인 정기선 대표가 작년부터 경영을 맡으면서 다시 오너 경영체제로 복귀가 확실한 상황이다.
경제위기와 오너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로 오너 경영 회귀
이렇게 다시 오너 경영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지금의 경제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적 공급망 혼란과 미중 갈등, 여기에다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미래를 낙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너가 책임지고 그룹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 전문 경영인을 강조하면서 무슨 일만 터지면 오너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도 오너 경영으로의 회귀를 촉구하고 있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사고와 SPC 계열사의 빵 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카카오의 서비스 장애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고를 낸 해당 기업의 CEO는 모두 전문 경영인이었지만 비난의 화살은 오너에게 돌아갔고, 오너가 책임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한 것이다.
오너 경영, 폐해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문 경영인 체제는 관리는 잘 되지만 단기 실적에 급급해 기업의 미래 동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비해 오너 경영은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나 배터리 사업 같은 분야는 오너 체제가 아니라면 키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너 경영체제는 독단적 경영으로 흘러 결국에는 기업을 망하게 만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재벌 총수도 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 욕심, 의심, 변심이라는 소위 3심이 잘못 작동하면 기업을 나락에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30대 재벌의 자취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오너 경영의 장단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살아남은 16개 재벌의 생존비결은 오너 경영이었지만 망한 14개 재벌의 실패 요인도 역시 오너 경영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너 경영체제, 전문 경영인체제 어느 것이 우위라고 말할 수 없다. 기업도 역시 인사가 만사다. 오너, 즉 대주주가 주인 의식을 갖고 기업을 이끌어 나가되 직원들을 키워서, 또는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서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해 주는 것이 답일 것이다.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