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것"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1-12-09 10:44:09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 시선집 '기러기' 국내 첫 출간
초기작부터 망라 142편 엄선, 세상의 '경이'에 헌정
동성 연인과 살면서 날마다 숲과 바닷가 시에 담아
"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 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어, 평생/ 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 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죽음이 찾아오면')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1935~2019)는 신부였고, 신랑이었다. 자연의 경이와 세상의 신랑 신부였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신부였고 신랑이었다. 미국 북동부 대서양으로 길게 뻗어나간 케이프코드의 프로빈스타운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그곳 숲과 바닷가를 날마다 시로 옮겼다. 그녀는 죽음이 찾아오면 "특별하고 참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의심하고 싶지"도, "한숨 짓거나 겁에 질리거나 따져대는 나를 발견하고 싶지"도, "그저 이 세상을 다녀간 것으로 끝내고 싶지"도 않다는, 세상의 경이를 한껏 안으려는 태도를 고수했다.

▲미국 북동부 해변마을에 살면서 자연과 삶의 경이를 시로 길어 올린 메리 올리버. [마음산책 제공] 


메리 올리버의 시를 초기작부터 망라해 선별한 시선집 '기러기'(민승남 옮김·마음산책)가 국내에 소개됐다. 전미도서상(1992)을 받은 이 시선집 표제작 '기러기'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 9·11 테러 추모식에서 낭독했고, 대학 기숙사 방을 장식할 만큼 널리 알려져 사랑받는 시편이다. 국내에서도 소설가 김연수가 이 시편의 열네 번째 행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장편 제목으로 사용해 친숙한 편인데, 메리 올리버의 시 전체를 아우르는 시선집이 국내에서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과 울창한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기러기')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말 것이며, 섣불리 참회하지도 말고,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라고 자신과 세상을 향해 당당히 말하는 시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며 어딘가에는 너를 안아줄 곳이 있음을 결코 잊지 말라고, 시인은 '기러기'의 입으로 말한다. 1620년 청교도들이 은신처를 찾아 처음 도착한 곳이지만,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가 자리잡은 '아웃사이더 마을'에서 50여 년 살면서 시를 썼고, 말년에 플로리다에서 잠시 머무르다 세상과 작별한 그녀의 발언이기에 울림이 더 크다. 

'습지 순찰자'이자 '자연 세계의 포기할 줄 모르는 안내자'로 불리는 그녀답게, 142편을 엄선한 이 시선집도 숲과 바닷가에서 길어 올린 시들이 압도한다. 푸른부전나비, 작약, 북양가마우지, 황금방울새, 양귀비, 물뱀, 왜가리, 눈덧신토끼, 능소화에 잠시 멈춘 벌새, 모카신꽃, 소라게, 백합, 백조, 웃음물총새, 들판을 드나드는 흰올빼미, 돔발상어, 불가사리, 거북, 나방, 해바라기, 버섯, 독수리, 앉은부채, 혹등고래, 홍합, 검정뱀, 검은 호두나무, 까마귀…. 제목만 몇 개 나열해도 그녀의 시세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법하다.


"영혼은 쇠처럼 단단할까?/ 아니면, 올빼미 부리 속 나방의 날개처럼/ 가냘프고 부서지기 쉬울까?/ 누가 영혼을 가졌고, 누구는 갖지 못했을까?/ 난 계속 주위를 둘러보지./ 말코손바닥사슴의 얼굴이/ 예수의 얼굴처럼 슬퍼./ 백조가 흰 날개를 천천히 펼쳐./ 가을이면, 검은 곰은 어둠 속으로 나뭇잎들을 옮겨./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영혼은 형상을 갖고 있을까? 빙산 같은?/ 벌새의 눈 같은?/ 뱀과 가리비처럼 폐가 하나일까?/ 어째서 나는 영혼을 갖는데, 제 새끼들을 사랑하는/ 개미핥기는 영혼을 못 갖는가?/ 어째서 나는 영혼을 갖는데, 낙타는 영혼을 못 갖는가?/ 그러고 보니, 단풍나무는 어떨까?/ 파란 불꽃은 어떨까?/ 달빛 아래 홀로 앉아 있는 작은 돌멩이들은 어떨까?/ 장미, 레몬, 그리고 그 빛나는 잎들은 어떨까?/ 풀은 어떨까?"('당신이 할 수도 있는 몇 가지 질문들')

메리 올리버는 누구나 충분히 질문은 할 수 있지만, 생산적인 질문은 오직 하나 뿐이라고 설파한다. "질문은 오직 하나뿐,/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한 것인가."('봄') 국내에 앞서 소개된 시집 '천 개의 아침'에서 그녀는 이런 태도에 대해 "물론 언젠가는 포기를 하게 되지만 그때쯤이면 경이감에 반쯤은 미쳐버리지"('어리석다고? 아니, 그렇지 않아')라고 부연했다. 그녀는 "살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뻐,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참으로 기뻐. 나는 삶의 끝에 가까워서도, 마지막 숨을 쉬면서도, 그런 경이들을 잃은 후에도, 여기에서, 그것들을 위한 자세를 취할 거야."('만약에 내가')라고 거듭 생의 경이를 찬탄했다.

"당신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으리라 나는 믿어./ 당신이 속았으리라 나는 믿어./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는 고독과 불행이었으리라 나는 믿어./ 당신의 가장 바쁜 적은 분노와 우울이었으리라 나는 믿어./ 당신이 기쁨이라는 노래를 마음껏 즐기지 못했으리라 나는 믿어./ 당신이 평안을 갈구하면서도 늘 그것과 낯선 사이였으리라 나는 믿어./ 음악은 우울한 것 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믿어./ 그 어떤 장신구 그 어떤 귀금속도 당신의 비통함만큼/ 빛나진 못했으리라 나는 믿어./ 당신이 여전히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이 달래지지 않은 채로 마침내 관에 누워 있으리라 나는 믿어./ 오, 산비탈에 피어난 거칠고 부도덕하며 무모하고 평화로운 꽃들 아래 묻힌/ 차갑고 꿈 없는 당신."('비통')

▲날마다 바닷가와 숲을 산책한 메리 올리버는 '자연 세계의 포기할 줄 모르는 안내자'라는 평을 들었다. [마음산책 제공]


이 세상을 살면서 '비통'할 이유는 '행복'의 조건을 모두 뒤집어놓은 것들이다. 메리는 '차갑고 꿈 없는 당신'에게 '비통'과 헤어지라고 호소한다. 물론 그녀도 세상 모든 것들이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믿는 건 아니다. "모든 것들이/ 변해가지, 모든 것들이/ 긴 오후의/ 푸른 소매 속으로/ 빙그르르, 툭 날아들기 시작하지./ 모든 것들이 물러지며 끓어올라/ 물질과 빛깔로 돌아가는 사이/ 풀들이 소멸된 입으로/ 우우 휘파람 불지."('마지막 날들')라면서도 "밤새 내 마음 불확실의 거친 땅 아무리 돌아다녀도, 밤이 아침을 만나 무릎 꿇으면, 빛은 깊어지고 바람은 누그러져 기다림의 자세가 되고, 나 또한 홍관조의 노래 기다리지"('천 개의 아침')라고 세상과 삶에 대한 무한 긍정과 낙관의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개에 대한 애정도 산문과 시에 자주 새겨 넣었다. 그녀는 "개는 야생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그건 우리에게도 득이 된다"면서 "개는 우리에게 우아한 운동 능력을 지닌 육체의 즐거움, 감각들의 날카로움과 희열, 숲과 바다와 비와 우리 자신의 숨결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고 산문집 '완벽한 날들'에서 예찬했다. 작지만 용감했고 말할 때면 트럼펫을 연상시켰으며, 바닥을 북치듯 긁었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사랑했던 '퍼시'를 그리워하며, 메리는 쓴다.

"개는 당신에게 와서 당신 집에서 당신과 함께 살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개를 소유하는 건 아니야, 당신이/ 비나 나무, 그것들과 관련된 법칙들을 소유하는 게 아니듯.// (…)// 개는 세상의 냄새들을 통해 알아낸 걸/ 당신에게 말해줄 수 없지만, 당신은, 개를 지켜보며,/ 자신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지.// (…)// 그 개는 앞장서서 들판을 헤매어 다니다가도, 내게로/ 돌아오거나, 나를 기다려 주거나, 어딘가에 있곤 했지.// 이제 그 개는 소나무 아래에 묻혀 있어.// (…)// 흔들림 없는 잠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침내,/ 산더미 같은 사랑의 파도가/ 우리에게로 부서져 내리네."('개의 무덤')

▲메리 올리버는 함께 살았던 개에 대한 애정을 시와 산문에 자주 새겨 넣었다. [마음산책 제공]


'기러기'에는 대자연에서 채집한 소재들 외에도 윌리엄 블레이크, 제임스 라이트, 로베르트 슈만 등 메리가 사랑한 예술가를 다룬 시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시편들도 함께 수록됐다. 아무리 대자연의 '경이에 반쯤 미쳐' 버리는 그녀라도 '당신'이 없으면, 그것들은 모두 황폐할 풍경일 따름이다. 메리 올리버는 "당신 없는 내 삶엔/ 바싹 말라 부러진 나무들만 서 있을" 것이라고, '보스턴 대학병원'에 썼다.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어. 팔꿈치며 발목이며. 기분이며 욕망이며. 고통이며 장난기며. 분노까지도. 헌신까지도.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하긴 한 걸까? 내가 30년간 함께 살아온 이 사람은 누굴까?// 이 맑고 알 수 없고 사랑스러운 휘파람 부는 사람은?"('휘파람 부는 사람')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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