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절치부심 재집권 탈레반, 포용이냐 공포로의 회귀냐

이원영

lwy@kpinews.kr | 2021-08-18 15:45:44

이슬람 부흥운동으로 집권…공포정치 오명
극단적 보복·율법 정치 돌아갈까 우려 커져

15일 전격적으로 카불을 점령하면서 아프간 통치권을 20년 만에 되찾아온 탈레반 조직이 앞으로 어떤 통치를 펼칠 것인가.

카불 점령 소식이 알려지면서 미군 수송기로 달려들어 필사의 탈출극을 보여준 아프간인들의 모습에서 극도의 공포심을 읽을 수 있다. 거리에서 여성들이 자취를 감춘 것도 탈레반 통치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16일 첫 기자회견을 갖고 일단 유화책을 발표했다. 부역세력에 대한 보복은 없을 것이며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국제사회와 아프간인들의 불안과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7일(현지시간) 수백 명의 사람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밖에 모인 가운데 한 남성이 미국을 위해 일했음을 증명하는 증서를 들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전역에 '사면'을 선포하고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정부에 합류할 것을 촉구하며 자신들이 변했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AP 뉴시스]

그러나 탈레반 세력이 회교 율법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원리주의자들임을 감안한다면 옛 공포정치는 언제든지 다시 회귀할 수 있을 것이란 불안감도 여전하다. 이들이 기자회견에서 '회교율법의 범위 안에서'란 단서를 붙인 것만 봐도 통치방식에 있어서 체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란 기대에 의문이 들게 한다.

탈레반은 지난 1996년 집권해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무너질 때까지 5년간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에 따라 극단적인 율법정치를 구현했다.

춤, 음악, TV 등 각종 오락이 금지됐고, 도둑에 대한 형벌로 공개적으로 손목을 자르는가 하면, 불륜으로 적발된 여성을 돌로 때려 죽게 하는 형벌도 내렸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극심해 각종 취업과 학교를 포함한 사회활동이 금지됐다. 외출할 때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뒤집어쓰는 것이 의무화됐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후 모든 부분에서 자유와 인권의 신장을 경험한 아프간 여성들은 바로 이런 극단적인 여성 차별 통치가 되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탈레반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서 철수까지(1979~1989년) 벌어진 소련군과 이슬람 무장세력 무자헤딘 간의 10년 전쟁의 부산물이다.

무자헤딘의 끈질긴 항쟁과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소련이 물러나면서 아프간은 수많은 종족과 정파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종족간 대량학살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아프간인들이 부패하고 분열된 무자헤딘에 실망하고 있을 때 탈레반은 새로운 이슬람 부흥운동을 내세우며 세력을 키웠다. 탈레반이 처음 결성된 것은 1994년. 이슬람 근본주의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이끄는 30여 명의 신학생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레반'은 학생 또는 제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와 데오반디즘을 신봉했다. 데오반디즘은 비윤리적 유혹에 빠지고 서구의 물질주의에 휩쓸리면서 이슬람이 낙오되었다고 주장하며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학파다.

이런 탈레반의 주장은 종족 간 내전에 지친 아프간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고 탈레반은 세력을 키운 끝에 마침내 1996년 카불을 점령하고 정권을 잡았다.

아프간을 관통하는 무역로가 필요했던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전폭 지원한 것이 탈레반 세력 확장의 큰 힘이 됐다. 

2001년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국의 침공을 받아 한달 만에 정권을 내놓은 탈레반이 20년 만에 다시 정권을 되찾은 것이다.

탈레반이 어떤 정치를 펼지 아직은 미지수다. 공포와 혼돈을 잠재울 것인지, 아프간을 더욱 미궁 속으로 빠뜨릴 것인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K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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