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집단면역' 불가론…'확진-거리두기' 공식에 물음표
이원영
lwy@kpinews.kr | 2021-08-11 13:44:47
오명돈 "방역 패러다임 바꿔야" 공론화 주장
'묻지마 방역' 고민해야 '방역독재' 비난 벗어
지난달 19일 영국은 '자유의날'을 선포했다. 마스크 착용 등 최소한의 코로나19 방역 규제도 없앤 것이다. 일일 감염자가 5만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와중에서다. 세계는 놀란 눈으로 영국의 결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후 감염자는 2만~3만 명으로 줄었고 입원 및 사망자도 현저하게 감소했다. 일일 사망자는 피크 때인 지난 1월 1200명 대에서 10분의 1로 줄어 100명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이 이처럼 확진자 숫자에 관계없이 규제를 해제한 데는 백신 접종률이 70%에 달하고, 특히 고령 접종자들의 입원 및 사망률이 크게 떨어진 점에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률에도 불구하고 델타 변이를 중심으로 감염이 창궐하는 가운데 규제를 해제하자 영국이 '집단면역'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집단면역 불가론은 10일(현지시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에 참여했던 앤드루 폴라드 옥스퍼드대학 교수가 정치인들과 모임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집단면역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본격 수면 위로 올랐다.
폴라드 교수는 "다음에는 바이러스가 아마도 백신 접종자에게도 전파가 잘 되는 변이를 내 놓을 것"이라면서 "대규모 검사를 실시하는 방식에서 증상이 심한 사람들을 검사하고 치료하는 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장(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이 11일자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 '꾹 참고 있었던' 발언을 내놨다.
오 교수는 "국민 70%가 올해 11월 접종을 완료해도 5차 유행은 올 것이다. 이제는 코로나19를 두창처럼 근절하거나 홍역처럼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변이 때문에 집단면역은 불가능해졌지만 백신은 고령층의 사망·위중증을 90% 가까이 예방하는 효과는 확인된 만큼 이에 따른 방역 패러다임의 변화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요지는 백신은 고령층 완전접종을 우선 순위로 하고, 확진자보다는 중증환자 치료 위주로 의료자원을 집중하며, 질병 부담이 극히 낮은 학생들은 전면 등교를 하는 등 거리두기 방침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취지다.
영국과 우리나라의 전문가 입에서 동시에 '집단면역' 불가론이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백신접종률이 60% 이상 높은 영국, 이스라엘, 캐나다, 아랍에미레이트 등 소위 백신선진국에서 델타 변이가 여전히 확산세를 보이며 백신으로 확산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전문가의 고백은 접종률을 끌어올려 집단면역을 달성한다는 방역 목표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19를 백신으로 예방한다는 것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지적한 이가 이왕재 서울의대 명예교수(전 대한면역학회 회장)다. 이 교수는 올해 초 UPI와 인터뷰를 갖고 "상기도 점막 감염질환인 코로나19는 감기나 독감과 마찬가지로 혈중에 투입되는 백신으로 예방을 할 수가 없다. 다만 고령 기저질환자의 중증화를 예방하는 효과는 있다"고 주장했었다.
각국에서 백신 완전접종자에게도 돌파감염이 줄줄이 발생하는 것만 봐도 이왕재 교수의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지만, 지금까지 방역당국은 '집단면역'만 강조했지 백신의 한계에 대한 합리적 의심에 대해서는 논의 자체를 금기시했다.
오명돈 교수가 "델타 변이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열었는데도 70%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을 언급하는 것은 학술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한 것도 이제는 되지도 않을 집단면역이라는 미몽에서 벗어나자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국민들은 방역 준칙을 준수하면 이 사태가 곧 종결되리라는 희망으로 당장의 어려움을 참으며 묵묵하게 당국의 방침에 순응해 왔다. 그러나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 숫자가 어느날 드디어 제로(0)가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불편한 진실'이 되었고 다들 그렇게 믿고 있다.
백신을 맞아도 감염과 전파를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목줄을 죄고 일자리를 앗아가는 거리두기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방역 제도권에 있는 오명돈 교수의 용기 있는 발언을 계기로 방역당국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확진자-거리두기 공식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감염병 재난은 의학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기에 의료계 전문가들에게만 기대지 말고 사회의 숙의와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는 오 교수의 말대로 이젠 '묻지마 방역'이 아닌 공론의 장이 필요한 때다.
영국의 앞선 경험과 오 교수의 제언과 국민들의 합당한 질문에 방역당국이 계속 귀를 닫는다면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방역독재'라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K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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