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머리와 심장 사이 눈물의 대장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1-08-04 12:38:16

김선우 여섯 번째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팬데믹 사태 직면 '마스크에 쓴 시들' 포함
티끌 같은 존재의 사랑과 연대를 향한 노래
"가짜 뒤섞인 광장, '눈물의 연금술' 필요"

푸른발부비새를 보신 적 있는가. 푸른 가죽신발 같은 파란 물갈퀴를 지닌 이 새는 양쪽 발을 번갈아 들면서 구애를 한다. 암컷이 받아들이면 서로 마주보고 함께 기우뚱거리며 춤을 춘다. 김선우 시인이 최근 5년 만에 펴낸 새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창비)은 '푸른발부비새, 푸른 발로 부비부비'로 시작한다. 

 

"바스락, 으쌰으쌰, 사랑하자사랑하자인생별거없다그래도좋다그래서좋다너를안으니좋다/ 단순한 낙천성의/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힘// 꼬리를 살랑거리다 가버린 빛에 대해 말하는 것이/ 꼬리를 끌고 막 도착한 빛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이런 바스락,// 우리에겐 다만 빛 드나드는 마음의 창문을 열어두는 연습이/ 으쌰으쌰, 으쌰으쌰/ 바스락, 바스락"

▲5년 만에 새 시집을 펴낸 김선우. 그는 "독자들에게 잘 닿아서 힘이 되는 시들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꼬리를 살랑거리다 가버린 '빛'을 '사랑'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그 사랑, 떠나갔지만 이제 막 꼬리를 끌고 도착한 사랑은 가버린 그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인은 그 빛이, 사랑이 그저 넘나들 수 있도록 다만 마음의 창문을 열어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으쌰으쌰, 푸른발부비새의 춤으로 노래한다. 고향 강릉으로 돌아가 무너진 몸을 추스르는 중인 그가 전화기 너머에서 말한다. 

 

"우리는 다들 엄청나게 소통하는 듯한 착각 속에서 살고 있어요. SNS도 있고, 언론들은 온갖 이슈를 쏟아내고, 모든 매체들이 열려 있어 뭔가 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데, 사실은 저마다 고립의 벽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패거리를 만들어 내 편 아니면 다 적이라는 생각으로 상대방 말을 들으려고 안하죠. 개인이건 집단이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말 들으려고 하는,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 한쪽을 열어두는 겁니다. 인생이란 따지고 보면 별거 없는데, 예쁘고 소망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닫아버리면 안되죠."

 

시인은 팬데믹 사태와 함께 내내 앓았다. 코로나19에 감염됐던 건 아니다. 가뜩이나 대지의 기운에 민감한 시인이 전 지구적인 바이러스 창궐에 직면해 '마스크에 쓴 시' 연작을 준비하면서 도처의 고통에 집중하다가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아픈 사람처럼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했지만 딱히 문제가 될 만한 건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환경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그가 좋아했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1949~2020)가 코로나에 쓰러진 국면이 파멸의 묵시록처럼 다가와 심정적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쇳조각 하나를 들고 돌 앞으로 가는 당신을 보았어요/ 창백한 사금파리를 갈아 요동치는 바늘이 될 때까지/ 매일의 기도를 멈추지 않은 사람/ 죽은 꽃잎을 바느질해 꽃나무를 살리려 한/ 간곡한 눈물의/ 작은 사람// 강이 사랑한/ 밀림이 사랑한/ 고독한 바위가 사랑한"('마스크에 쓴 시 5-루이스 세풀베다를 기리며') 

'마스크에 쓴 시' 연작을 쓰다 보니 분량이 늘어나 따로 서사시처럼 묶으려는 생각도 했지만, 이번 시집 3부로 편입시켰다. 이번 시집에서는 사회 현실에 대한 우회하지 않는, 보다 적극적인 발언들이 눈에 띈다. 그는 '투표 인증 숏을 보내온 벗에게'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에 대해 말한다. 독재자들을 위한 선거는 세계 여러 곳에서 지금도 반복되지만 "그보다 흔한 것은 상전만 바뀌는 선거/ 국민이 주인이라고 예의 바르게 말하면서/ 주인들의 합법적 상전이 되기 위해 치르는 절차"라고 쓰고, "꽃을- 따러 오는,/ 꽃만- 따러 오는,/ 줄 댄 채 차례 기다리는 저 예비 상전들로부터/ 어떻게 꽃을 지킬 것인가" 묻는다. '대숲에서'는 "권력을 가지기 위해 정의로운 자들이 인간계에는 너무도 많소, 혐오를 혐오하는 나의 검은 그들의 정의를 유일하게 혐오하오"라고 외친다. 그에게 매일 쏟아지는 정치판 뉴스들은 '양아치들의 ○○사'로 요약된다. 

 

"몸의 어두운 데를 씻는 중이었어 절망과 분노가 쌓이는 장기들, 자주 햇빛 목욕을 시켜주지 않으면 탁해져 빛으로 닦고 바람으로 말려야지 거풍이 안 되면 썩고 마니까 매일 쏟아지는 정치판 뉴스들 (이쪽은 저쪽과 다르다고 저희끼리 다투는데 부끄러움을 조금 알거나 전혀 모르거나 1에서 3 정도 눈금 차이랄까 조금쯤 주저하며 부끄러운 짓을 하고 곧 잊어먹는 양아치나 시종 뻔뻔하고 당당한 양아치나 어느쪽이 더 낫다고 하긴 참) '양아치들의 ○○사'로 요약될 세력 다툼에 휩쓸려 작은 사람들의 밥상이 쪼개지는 골목들이 슬프니까 슬픔이 흘러든 장기들이 점점 고독해져 딱딱해지면 더 슬프니까 저기요, 여보세요, 잠시만요, 이 햇살 좀 보세요 이 바람은 어때요 몸 닦기 좋아요 영혼도 물론이죠, 아마도 그런 일을 이 골목의 시(詩)는 하고 싶은 것 같은데, 일테면 빛의 목욕탕이나 바람의 악보 같은 것 손 닿지 않는 어딘가를 긁어주는 세 손가락 긁개 같은 것"('오늘 만난 시집의 가제로 「평의회의 아름다움」이라고 적어두었다')

 

"시인밖에는 이런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아요. 물론 소수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사람들만이 아닌, 많은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지금 한국사회는 너무 이분화 되어 양극으로 쪼개져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함부로 하기를 두려워하는 시대입니다. 어디 가서 잘못 입을 벙긋했다가는 언제 어떻게 몰매를 맞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나는 시인이잖아요. 대중에게 많이 노출돼서 언론을 이용해야 되는 사람도 아닌, 자유로운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시인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싶었어요. 정말 다들 너무 미친 거 같을 때가 너무 많거든요."

 

"외로워서 SNS가 필요한 것인지/ 그로 인해 더욱 외로워지는 것인지/ 네, 간단치 않은 문제로군요 좀더 생각해봅시다// 음모의 발명과 음지의 발굴, 심판의 욕망에 관해서도/ 손쉽게 전시되고 빠르게 철거되는 고통의 회전율에 관해서도/ 공유하고 분노한 뒤 달아오른 속도만큼 간단히 잊히는 비참의 소비 방식에 관해서도/ 늘 새로운 이슈가 필요한 삶의 소란스러움과 궁핍에 관해서도/ 가벼워지는 눈물의 무게, 그만큼 식어가는 녹슨 피의 온도에 관해서도"('일반화된 순응의 체제 3-아무렇지 않는 아무의 반성들')

 

▲김선우는 "지구 거주민 인류가 다다른 최상급 진보"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와 환경 파괴에 대한 반성은 근본적으로 시인의 생명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연대가 기반이다. 김선우는 여섯 번째 시집에 이르러 달라진 점이라면 난해하게 시 자체에 복무하기보다도 대중과 더 원활하게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투사된 점이라고 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잘 닿아서 힘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현실을 정확히 같이 보았으면 좋겠고, 같이 보아야 뭔가 더 나은 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아는 나의 이야기도/ 당신이 모르는 나의 이야기도/ 당신이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도/ 내가 알거나 모르는 당신의 이야기도// 비로 내린다/ 비가 내린다// 누군가의 피로 자기 피를 만들지 않는/ 식물들의 귀가 커진다"('비의 열반송')

 

시인은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경쟁에서 이겨야 되고 자원을 착취해야 의식주가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면서 "남의 피로 내 피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내 피를 스스로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거기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인격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른 존재들을 멸종시키면서 스스로 멸종 위기종이 되어가는'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으려면, 그 돌이 정말 '빛나는 모서리'를 가진 '짱돌'이 되려면 모두 제대로 반성하고 스스로를 단련시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 말에 제가 속아 넘어가고 세상은 기만 투성이인 채 서로 비난하다 지구와 함께 파괴돼 갈지 모른다. 시인이 '머리와 심장 사이에 눈물의 대장간을 만든 이들'을 바라는 까닭이다. 

 

"그 돌은 작은 모래 한 알로부터 자라났다/ 눈물이라는/ 모래 한 알로부터// 살다보면 틀림없이 닥치는 어느날/ 서둘러 눈물을 닦아 말려버리지 않고/ 머리와 심장 사이에 눈물의 대장간을 만든 이들이/ 그 돌을 가지고 있다// 거래를 위한 셈법이 없는 문장들로/ 눈물을 벼려 담금질한 이들만이/ 투명하게 빛나는 돌을/ 손안에 쥔다// 자신과 세상을 지킬 눈물의 돌/ 체념으로 증발하지 않는/ 아름다운 모서리를 가진 돌을"('눈물의 연금술')

 

▲김선우는 고향 강릉에 내려가 팬데믹 시대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중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부정의하고 옳지 못한 현실에 대한 올바른 싸움이 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반드시 '눈물의 연금술'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광장에 진짜와 가짜들이 어중이떠중이로 뒤섞여 있어요. 자기 이익을 위해 광장에 있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진짜로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짱돌'을 들 수 있는, 그런 영혼의 강인함은 스스로가 '눈물의 대장간'을 자기 가슴에 품어본 사람들일 겁니다. 그 시간을 거쳐서 나오는 눈물, 이것이야말로 빛나는 모서리를 가진 돌이 되겠죠."


그는 "내가 티끌 한 점인 걸 알게 되면 유랑의 리듬이 생긴다"면서 "영원을 떠올려도 욕되지 않는 역사는 티끌임을 아는 티끌들의 유랑뿐"이라고, '티끌이 티끌에게-작아지기로 작정한 인간을 위하여'에 썼다. 한없이 작아진 몸의 눈으로, 사라졌지만 보이는 따스한 '유령'들을 발견한다. '방금 일어난 침대 흐트러진 시트에 아직 묻어 있는 온기…… 꽃 진 가지 끝에 여전히 꽃처럼 떠 있는…… 막 개봉한 편지에서 제일 먼저 느껴지는, 편지를 봉하기 직전의 숨결…… 휴대폰 액정에 살짝 떠오른 따스함, 발송 버튼을 막 누른 너의 손끝……' 같은 유령들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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