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용서마저 내어준다면, 무엇이 남는가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1-03-17 18:17:14
무수한 경계가 겹치는 난민수용소 같은 사회
어둠을 직시하면서도 결국 환해지는 이야기
"숨이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교환하는 것"
'나른한 촉감의 시간이 배어 있던 오직 혼자만의 방, 자주 구름이 스며들어와 내 몸을 덮어주었던, 그러나 때로는 추운 대합실처럼 막막하기도 했던 그 방에 어느새 저는 들어와 있었지요. 저는 그 방을, 그 방이 있던 동네와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모른 척하며 살아왔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방이 저에게 새겨 넣은 상처가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는 것을요.'
조해진이 생애 최초로 기억하는 유년기 감각은 찰칵, 하는 문 잠그는 소리였다. 밖에서 문을 잠근 사람은 어머니였다. 밤기차를 타고 상경하여 문래 6가 무허가판자촌에 정착한 부모는 생계전선에서 바빴다. 공장에 나가기 위해 그녀를 방에 남겨둔 채 어머니가 밖에서 문을 잠그면 그때부터는 하루 분량의 기다림을 견디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고 후일 소설가가 된 그녀는 썼다. 최근 출간한 네 번째 소설집 '환한 숨'(문학과지성사) 말미에 수록한 자전소설 '문래' 이야기다.
그녀가 '문래'를 쓰기까지는 등단 이후 10여 년이 걸렸다. 발표해놓고도 소설집에 수록하기까지는 다시 7년을 묵혔다. 문래동 골목 찻집에서 만난 그녀는 "감추고 싶기도 했고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가방을 챙겨 도시의 경계나 국경 밖을 떠돌아다녔던 건 어쩌면 어딘가에서 좋은 소설에 대한 해답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지만 '아무리 먼 곳을 다녀와도 철학이 없는 빈 언어만이 이야기를 가장했다'고 썼다. 그녀는 어느날 동료들과 용산의 길을 걷다가 '문래'가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에 빚을 지며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거겠죠, 상처의 고유함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공평한 특권일 테니까. 만약 그때 제가 조금이라도 울었다면, 그건 단지 뜻밖의 장소에서 한 뼘 더 넓게 보게 된 풍경에 도취되어가기 때문일 거예요. …아마도 저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을 것입니다. 내 고향은 문래라고, 나의 문장[文]이 그곳에서 왔다[來]고.'
발표해놓고도 유보하다가 이번에 자신의 문학의 뿌리를 단행본에 포함시킨 것은 그만큼 깊어진 소설에 대한 태도 덕분일 터이다. 조해진은 "이전 소설집 '빛의 호위'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연대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번 소설집은 먼 역사보다는 지금 현재의 이야기들이 많다"면서 "범위가 좁아진 대신 나이가 들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좀 더 스며들면서 지금 여기의 이야기들이 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변화는 그녀의 시선이 '빛'에서 '숨'으로 옮겨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조해진의 감각에 포착된 지금 여기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는 군상의 삶은 대체로 허무하고 고통스럽다. 서두에 연이어 포진한 두 개의 단편은 유독 허무와 죽음이 강하게 지배하는 편이다.
'환한 나무 꼭대기'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여자대학 동창의 간병을 맡은 화자는 한때 출가했다가 환속했다. 동창이 죽은 뒤 그녀에게 남긴 지방의 아파트에서 머물다가 탈영병을 몰래 돌보게 되고, 다시 그가 죽이고 나온 선임에게로 연민은 이어진다.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살아 있는 자나 죽은 자 모두 허무의 테두리에 갇혀있기는 마찬가지다. '흩어지는 구름'의 화자는 홋카이도 화산에 다녀오면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산 정상까지 로프웨이를 타고 오르내리는 안내 직원이 '15분에 한 번씩 죽는 연습을 하는 셈 치겠다'고 한 말을 떠올린다. 이어지는 단편들에도 죽음은 빠지지 않는다.
"이전에도 죽음에 관해 많이 썼는데, 죽음이라는 게 영원한 끝이라기보다는 삶과 등을 맞대고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죽음이라서 슬픈 게 아니라, 죽음을 떠올리기 때문에 더 살 수밖에 없는 그런 게 아닐까요.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표현하는 걸 꺼릴 뿐이죠. 문학은 사람의 생각 속에 있는 근원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주제인 거 같습니다."
조해진은 죽음과 허무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절망하고 빛을 방기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이번 소설집 제목 '환한 숨'도 그런 맥락에서 지었다. 소설집 원고를 모두 출판사에 넘길 때까지도 제목을 정하지 못했는데, 원고를 훑어보니 키워드가 '숨'이었다. 그녀는 "혼자만의 숨이 아니라, 내가 내쉬고 다른 사람이 또 그 숨을 마시고, 그 사람 숨도 또 내가 교환하는 숨"이라면서 "어두워서 끝이 아니라 그 너머에 미세하게 번져가는 환한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사회의 다양한 어둠과 죽음을 직시하되 그 끝에서 미약하지만 희미한 빛을 발견하는, 그들의 숨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연이어 전개된다. '파종하는 밤'에서는 만 스무 살이 안 된 소년들이 온도계 제조사에서 수은중독으로 죽어간 이야기도 들여다본다. '하나의 숨'에서는 만 열여덟 살 특성화고 졸업반 '하나'는 공장에서 실습하다가 추락한다. 그 아이가 기간제 교사인 나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전화했을 때 나는 남의 돈 받는 게 원래 쉽지 않다고, 그건 남들도 다 똑같다고 말했다. 교사 계약이 해지되면 병실에 누워 있는 학생 문제는 더 이상 그녀의 소관이 아니어서, 후임 정교사에게 부탁하려고 하자 그 교사는 손사래를 친다. '그녀의 말은 모두가 공평하게 비정하다면 한 사람의 비정은 모두의 비정으로 희석된다고, 세상 어디에도 더 비정한 비정은 없다고, 그렇게 번역되어 들렸다.' 이 단편을 발표할 당시에는 계약이 해지되면서 하나의 문제에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했던 내용을 소설집에 묶으면서 교사가 택시를 타고 하나를 향해 가는 장면으로 고쳤다. 공평하게 비정하지 않기 위해, 희미한 빛 한 줄기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위해.
가장 최근에 발표했던 '높고 느린 용서'는 성추행 가해자가 사라짐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를 다루었다. 이 단편은 가해자를 아버지로 둔 두 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거니와, 교수였던 아버지는 스물여덟 살이나 어린 제자에게 비굴한 구애를 했고 이는 당사자에게 폭력이 되어 문제가 불거졌다. 아버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어디론가 증발해버리고 남은 두 딸은 가해자 가족의 멍에를 지고 고통당한다. 아버지의 제자였던 Y는 '용서'를 바라는 딸에게 묻는다.
'귀하는 모든 것을 잃은 그 사람을 용서해줄 수 없겠느냐고, 용서가 힘들다면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용기의 말이라도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용서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용서는 그 사람이 저만큼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표현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고통에는 저에 대한 미안함뿐 아니라 그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이 포함되어야 하고요. …귀하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사과를 받은 적 없고 앞으로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제가 용서마저 내어준다면, 그럼 제게는 무엇이 남는 겁니까. 저는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까.'
눈에 보이지 않고 감각되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경계선'을 천착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경계선 사이로'에서 '연진'은 선배들의 시위 때 빈자리에 채용된 기자. 시위를 하지 않고 노조에 얼씬거리지 않는 조건으로 채용됐지만 촛불혁명 이후 사내 분위기는 반전된다. 작가는 어느 한 쪽을 편들기보다는 양쪽의 입장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일하는 공간이 '원한이 반복되는 현장이자 무수한 경계선이 겹치는' 난민 수용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눈속의 사람'에 등장하는 '여진'은 역사를 전공하는 박사급 대학원생으로 출판사의 구술사 기획에 참여해 전쟁과 독재와 혁명의 역사를 현장에서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가 증언자들에게서 본 것은 혼란이었다. 전쟁통에 사람을 죽인 죄책감으로 평생 산에서 홀로 살다가 죽은 증언자의 마지막 모습은 '웃지도 울지도 않는, 그저 긴 통로 같았던 생애를 막 빠져나간 자의 무감한 얼굴'이었다.
"이별 허무 죽음 같은 삶의 어둠도 있고, 노동 여성 문제 같은 현실의 어둠도 있지만 그런 걸 모두 피하지 않고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둠을 직시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쉬는 숨이 교환되는 숨이라고 여기는 것, 그 고통과 허무와 사회적 이슈를 외면하지 않고 내 것, 나의 숨으로 받아들이고 내쉬었을 때 다른 의미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석될 수 있고 결국 환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죠."
조해진은 "소설은 여전히 저에게 위로이고 실용적으로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것도 위로이지만, 소설은 어쩔 수 없이 저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다"면서 "이번에는 좀 더 깊어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숨을 나누어줄 미지의 당신'에게 그녀가 전하는 말.
'내가 숨을 내쉬며 쓴 이 소설들에 당신이 숨을 불어넣어준다면 어떤 이야기가 비로소 완성되지 않을까… 내 경험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그 다양한 이야기… 어둠을 직시하면서도 결국엔 환해지는 그런 이야기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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