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주년 기획 '코로나 이후'⑦] 부동산, 대면 없이 블록체인으로 거래한다
김이현
kyh@kpinews.kr | 2020-07-23 13:21:10
사실상 위·변조 불가… 과정 간소화되면서 효율성도 높아져
관건은 '민관협력'…"정부 부처 간 시행착오와 마찰비용 발생"
최근 아파트를 산 A 씨는 며칠 동안 서류봉투를 들고 돌아다녔다. 건물에 대한 등기사항전부증명서, 토지대장, 집합건축물대장 등 부동산 종이공부를 계약 단계마다 발급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을 위해 신원확인서류(주민등록등·초본 등)와 소득증명서류 등을 은행에 제출했고, 법무사를 통한 소유권 이전을 위해 또다시 주민등록 등·초본, 부동산거래계약신고필증 등 각종 서류를 등기소에 내야 했다.
이처럼 복잡한 절차는 조만간 사라질 전망이다. '블록체인'이 부동산 거래와 접목되면서다. 건축물 정보와 부동산종합증명서 등을 실시간으로 열람·활용할 수 있고, 비대면 거래도 가능해진다.집 안에서 이른바 '원스톱 거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블록체인 기반의 '부동산 거래 플랫폼' 구축을 위해 정보화전략계획 사업에 착수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이버 견본주택이 등장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비대면'이 화두로 떠올랐는데,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 플랫폼 구축되면 본격적인 비대면 거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핵심은 '신뢰'…중개자 없애고 참여자 모두가 합의
블록체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뢰'다. 블록체인은 서로를 알지도, 믿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사람들이 제3의 공인인증기관 없이도 신뢰가 보장되는 기술이다. 문영배 디지털금융연구소장은 "거래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미들맨'(중개자)의 역할을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보다 안전하게 하는 세상이 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뢰가 형성되는 원리는 간단하다. A 씨가 B 씨에게 100만 원을 송금한다고 가정하면, 여기서 은행이 중개자가 된다. 은행은 A 씨의 계좌에 100만 원이 있는지 확인한 뒤 B 씨의 계좌로 전달한다. 이어 A와 B 두 명의 이체내역을 은행 장부에 기록함으로써 돈이 전달됐다는 것을 보증한다. 둘만의 거래이면서도 제3자에 의존하는 셈이다.
블록체인은 '중개자의 개입'을 없앤다. 거래 이력을 제3기관이 독점하지 않고, 참여자 모두가 합의하는 방식이다. 가령 10명의 참여자가 있을 때 2번 사람이 5번 사람에게 10만 원을 보내야 한다면, 2번의 잔고와 거래 내역을 확인한다. 이후 '2번이 5번에게 10만 원 입금'이라는 내용을 10명 모두 각자의 장부에 기록하고 블록에 넣는다. 다른 거래도 마찬가지로 내역을 적어 블록에 넣고, 블록이 가득차면 다른 블록을 새로 쌓는다. 모든 거래 내역이 적힌 블록들은 서로 '체인'처럼 연결된다.
사실상 위·변조가 불가능한 구조다. 동일한 장부를 각자 나눠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비교할 수 있다. 이 '공공거래 장부'는 일정 시간마다 새로고침 돼 잘못된 부분을 수정한다. 만약 3번이 악의를 품고 '3번에게 100만 원 입금'이라고 장부에 적었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9명이 가진 장부의 내용과 다르기 때문에 증명이 안 된다. 무엇보다 참여자가 10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라면, 거래 기록에 대한 위·변조는 원천봉쇄되는 것이다.
국토부가 강조한 것도 높은 '보안성'이다. 현재 부동산 거래는 물건 확인, 계약 체결, 대출신청, 등기변경 순으로 진행된다. 공인중개사, 은행, 법무사 등이 거래에 필요한 부동산 공부를 종이형태로 발급 받아 확인·제출하는 절차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공문서 위·변조 등 범죄 위험에 노출된다.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이 구축되면, 각종 부동산 공부를 정부 기관에서 자동으로 실시간 확인·검증할 수 있다. 앞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기관은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자 부동산 전자계약을 도입한 바 있다. LH 관계자는 "임대차계약 시 PC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를 활성화하는 건 코로나 이후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 등에 블록체인을 융합한 스타트업도 있지만, 국토부가 주도해 블록체인 시스템을 접목한 건 처음이다.
부동산 산업 변화 바람…해외에선 이미 시행 중
시간과 비용이 대폭 줄어든다. 국내에서 부동산 거래에 활용되는 증명서는 모두 18종이다. 그동안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주택대출을 신청할 때 등기소나 국세청, 은행 등에 종이로 된 부동산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2017년 기준 국토부와 법원에서 발급·열람된 부동산 증명서는 1억9000만 건에 달하며 약 1292억 원이 수수료로 쓰였다. 인증 과정이 간소화되고 소유권 이전 비용도 절감되는 등 부동산 산업의 근간이 바뀌는 셈이다.
해외 각국은 이미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스웨덴은 2016년 모든 부동산 거래를 블록체인 거래 장부로 바꾼 '디지털 토지장부'를 개발했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크로마웨이(ChromaWay)와 은행 등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덕분에 위조 방지 및 사기 감소, 거래 촉진은 물론 연간 약 1억 유로의 예산을 절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온두라스, 조지아 등도 국가적 차원에서 공공장부 시스템 구축을 시도 중이다.
미국의 블록체인 기반 부동산 플랫폼인 렉스(REX·Real Estate Exchange)도 혁신을 선언했다. 2018년 미국 1위 부동산 정보 플랫폼인 질로우(Zillow)의 데이터 업데이트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렉스가 블록체인을 통해 질로우의 한계를 넘어서겠다고 나섰다. 특히 중앙서버 없이 참여자들이 직접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거래수수료를 6%에서 2%로 인하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기존 부동산 포털(플랫폼)의 한계를 한 방에 해결하며 시장을 흔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부처 고유 업무 사라져…마찰비용 발생할 수도"
국내에서 관건은 '민관협력'이다. 데이터를 관리하는 기관이 제각각인데다,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여러가지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등기부등본은 대법원, 전자계약은 한국감정원이 관리하는 등 소관이 저마다 다른데, 현재 협조가 원활한 건 아니다"라면서 "중개사나 법무사도 일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여러 부분을 같이 논의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떻게 협의하느냐에 따라 설계 모델과 예산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블록체인 부동산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보안성이 높아지고 참여 업체가 다양해지는 등 효율이 지금과 크게 달라진다"면서도 "대법원의 등기시스템은 필요가 없어 진다. 기존에 가졌던 공적 체제에 대한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시스템이 바뀌겠지만, 그 과정에서 부처 간 시행착오와 마찰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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