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벗어 던졌다…이슬람권에 부는 '페미니즘' 바람
임혜련
| 2019-10-22 11:12:13
사라지는 '마흐람'…운전대 잡고 해외여행 떠나는 사우디女
지난 10일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 캄보디아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은 이란에 있어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란은 이날 캄보디아를 14-0으로 완파하며 승리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의 축구 경기장 입장을 금지했던 이란에서 38년 만에 여성의 관람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할당된 좌석은 판매가 시작된 지 몇 분 만에 매진됐다.
이날 여성에게 판매된 좌석은 3500석으로 아자디스타디움의 전체 좌석인 7만8000석의 4%에 불과했다. 또한 여성에 배정된 구역은 총 72구역 중 4구역에 불과했으며 여성 구역에는 임시 분리벽이 설치됐다.
아직 완전한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여성이 처음으로 축구장에 입장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변화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슬람 율법을 적용해 여성의 스포츠 경기 관람을 금지해왔다. 1981년 여성이 처음으로 축구 경기장에 들어간 사례가 있었으나, 이는 실제 경기는 아니었다.
선수나 고위 인사의 가족 등 일부 예외 사례를 제외하고는 여성의 입장을 금기시됐다.
10일 여성의 축구 관람이 허용되기에 앞서 많은 일이 있었다. 앞서 지난 8월에는 4명의 여성이 남장을 한 후 경기를 관전해 당국에 체포됐고, 지난달에는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다가 적발된 한 여성이 분신을 시도했다.
이 여성은 징역 6개월의 실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분신을 시도했고, 전신에 90% 이상의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여성의 축구 경기장 출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역시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허용하지 않으면 이란 대표팀의 월드컵 출전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비판이 거세지자 이란 당국이 여성의 입장을 허용한 것이다.
히잡 벗는 이란 여성들…"여성에게 복장 강요말라"
많은 이슬람권 국가들은 남녀를 구분하는 1400년 전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따르며 이를 기반으로 여성 활동에 제동을 건다.
샤리아는 무슬림 세계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포괄적인 체계로 일반적인 법체계와는 다르다.
대표적으로는 샤리아에 기반한 '탈라크(Talaqㆍ이혼을 뜻하는 아랍어)'라는 관습이 있다. 이는 이슬람 문화에서는 관행처럼 행해지는 제도로 '탈라크'를 세 번 외치면 즉각 이혼이 성립되는 문화이다.
탈라크 문화가 남아있는 인도에서는 최근 무슬림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 탈라크를 세 번 외쳐 이혼하는 남성을 범죄자로 처벌하겠단 법안을 도입하기도 했다.
샤리아를 기반으로 자치권을 인정받은 인도네시아 아체 주(州)에서는 경찰이 샤리아에 어긋나는 옷을 입은 사람들을 단속해왔다.
특히 몸에 붙는 청바지를 입거나 짧은 하의를 착용한 여성이 단속 대상이다. 수단에서도 샤리아법이 강화되며 바지를 입거나 머리카락을 드러낸 여성을 경찰이 체포하는 사건이 있었다.
간통 등의 죄에 있어 여성에게만 편파적으로 과한 처벌이 집행되기도 했다.
이란도 예외는 아니다. 이란은 사우디와 함께 여성인권 최하위국이다. 사우디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8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149개국 중 사우디와 이란은 각각 141위, 14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여성 인권향상을 위한 이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여성이 히잡을 써 머리카락을 가리는 것이 의무였던 이란에서는 히잡 착용에 저항하는 운동이 이어졌다.
이는 이란 출신의 작가이자 기자인 마시 알리네자드가 지난 2014년부터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이미지를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나의 비밀스런 자유(My Strealthy Freedom)' 캠페인을 벌이며 시작됐다.
이 캠페인은 히잡 착용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수요일마다 흰색 스카프를 착용하는 '하얀 수요일(White Wednesdays)'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한 여성이 막대기에 하얀색 히잡을 매달아 흔들고 있는 영상이 SNS 등을 중심으로 퍼지며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 여성은 테헤란의 번화가 높은 곳에 올라 히잡을 흔들며 종교적 규율에 항의했고,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벗었다는 이유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이란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머리카락이 보이는 여성들에 대해 징역 2개월 미만의 형량과 함께 25달러의 벌금형에 처하고 있다.
그러자 같은 장소에 또 다른 여성이 나타나 히잡을 벗어 흔들었고 곧 많은 이란 여성들이 캠페인에 잇따라 동참하며 시위가 확산했다.
사법 당국은 캠페인에 참여한 여성 30여 명을 공공질서 위반 혐의로 체포했으나, 이후에도 세계 여성의 날에 SNS를 통한 히잡 반대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운전면허 허용부터 자유로운 해외여행까지…사우디의 '비전 2030'
사우디는 이란만큼 여성 권리 향상에 있어 뒤쳐져왔던 국가이다. 사우디 역시 여성의 복장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으며 여성 참정권도 불과 2년 전에 허용됐다.
사우디는 악명 높은 마흐람 제도로도 유명하다. 마흐람 제도는 사우디 여성들이 결혼·이혼, 여행, 사업 계약, 취업, 은행 거래, 병원 치료 등 법적 활동을 할 때 반드시 마흐람(남성 가족)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도다.
마흐람은 아랍어로 여성이 결혼할 수 없는 친족을 뜻하며 이 제도에 의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받지 못했다.
그러나 사우디에서도 최근 여권 신장을 위한 조치들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는 2016년부터 경제개발계획인 비전 2030 개혁을 추진 중이다.
개혁 성향을 가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로 시행되는 이 개혁은 탈석유 시대를 대비해 이슬람 국가가 금기시했던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활성화해 국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목표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사우디는 1월에는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허용했고 이어 9월에는 사우디 국영방송 알 사우디야에서 사상 최초로 여성 앵커가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에게 운전면허 발급을 허용하며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사우디에서는 여성들이 남성의 도움 없이 이동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이 허용되며 여성도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됐다. 활동반경이 넓어지며 여성의 사회활동 진출도 활발해졌다.
그 연장선상으로 사우디 당국은 지난 8월에 해외여행에 한해 마흐람 제도를 폐지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사우디 여성들은 남편이나 아버지 등 남성 인솔자 없이 여권 발급도, 해외여행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 칙령에 따라 21세 이상의 여성이 남성 인솔자의 승인 없이 여권을 신청할 수 있으며, 여성이 독자적으로 관청에 출생·사망 신고도 할 수 있게 됐다. 결혼과 이혼 등록도 가능해졌다.
또한 사우디에서도 이란의 히잡 벗기 운동과 비슷한 맥락으로 '니캅 밟기 운동'도 전개됐다. 니캅은 이슬람권의 전통 복식으로 여성의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복장이다.
여성들은 니캅에 저항하는 의미로 SNS에 니캅을 밟는 사진과 해시태그를 올렸다.
빈살만 왕세자는 최근 니캅 착용과 관련해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아울러 빈 살만 왕세자는 인터뷰에서 "오늘날 사우디 여성들은 여전히 완전한 권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 길을 걸어 왔지만 아직 갈 길이 남았다"고 말했다.
K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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