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 展…생업과 예술 사이서 핀 36인 예술가의 대서사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5-07-25 09:56:47
'두 개의 방·추(錘)·사회적 존재' 주제로 총 3관서 각양각색 작품
수원고색뉴지엄·안산경기도미술관·양평군립미술관서 순차 전시
삶은 고단하다. 예술을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 삶은 고단함을 넘어 '절벽에 선' 것 같은 위태로운 투쟁이다. 거리에 앉아 담배 은박지 뒷면에 그림을 그려 팔던 이중섭이나 미군 PX에서 종일 고되게 몸을 부린 뒤 늦은 밤에야 붓을 들었던 박수근 같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은 '절박한 생의 기록'일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끝내 예술을 향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았던 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포에서 열리고 있는 '시소 : 일상과 이상 사이' 전(展)은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예술가들의 투쟁 현장이다. 이 전시의 큰 주제는 본래 '본업'이다. 이번 김포 전시는 '본업' 전시를 여는 첫 단추다. 전시 부제에 드러난 '시소' 타듯 예술과 삶의 균형을 잡아 온 36인의 예술혼을 KPI뉴스가 지난 21일 찾았다.
전시는 3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1관 '두 개의 방'은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이중의 공간―이상과 현실, 상상과 일상―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창작과 생업을 병행하며 구축한 내면의 서사가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드러나고 있다.
14년 차 목수이자 작가인 이진화는 전통 목가구의 실용성과 조형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참죽나무, 먹감나무 등 국내산 재료와 전통 장석을 활용한 작품 '서안'은 생활 속 예술과 나눔, 공생의 철학을 담고 있다. 경기도 양평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허윤선은 지역 커뮤니티와 협업해 일상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냈다. '동동동그라미'는 아이의 손동작을 관찰해 육아와 창작 사이에서의 균형된 삶을 모색한 회화 작업이다.
작가 줄라이 현은 인문학 텍스트를 시각적으로 오독(誤讀)하는 실험으로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탐색했다. 그런 점에서 '받아쓰기02-01: 빛과 낭만'은 감정의 여운을 담은 시각적 서신이자 텍스트와의 긴장 관계로 읽힌다.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선입견 없는 시각으로 작업해 온 작가 임승균은 레지던시 기간의 감각을 작품 '요코하마 드로잉 82'에 담았다. 작품엔 도시의 소리, 움직임, 감정 등이 자유로운 드로잉으로 기록돼 있다.
작가 김이태는 신경다양성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제도의 억압을 자전적 캐릭터 '던진글'을 통해 표현했다. '밤이 쏘다니는 자리'는 소통의 언어를 모색하는 캐릭터로 주체적 생존 가능성을 탐색한 작품이다. 작가 파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종 소녀와 야생 늑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묻고 있다. '늑대와 소녀'는 늑대의 시선을 빌려 생존과 연대,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의미를 감성적으로 재해석했다.
작가 박다빈의 '두 개의 태양, 두 개의 달'은 AI 초상 데이터와 실제 인물 인터뷰를 결합해 '진짜'와 '닮음', '자연스러움'의 경계를 묻고 있다. 작가의 이미지 재구성은 인식론적 화두를 끌어내며 데이터 시대의 도출된 초상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 박현철은 이질적인 동물 외피를 조각하듯 다루며 감각의 충돌과 흔적의 생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색인(죽음)'은 봉합과 절단, 흔적과 물성의 상호작용으로 죽음과 기억을 감각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이해된다.
작가 이경민은 일상에서 만나는 '구름'이라는 불확실한 대상을 소리와 드로잉으로 기록했다. '구름 끝을 매만지듯'은 무계획과 우연, 경계와 흐릿함을 겹겹이 쌓아 구름의 변화를 시각화한 회화 작품이다. 작가 오다솔은 망각과 기억의 불완전함을 테마로 삼아 몽타주적 회화를 시도했다. '몽타주-2401'은 색면, 파편화된 공간 이미지, 드로잉 선 등을 조합해 가짜 기억이 진짜처럼 작동하는 인간 기억의 메커니즘을 은유하고 있다.
작가 서호석은 자작한 백자 도판 위에 음각과 청화 안료를 활용해 전통과 현대,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작 '달빛'은 윤슬이 비치는 보름달을 형상화해 '민족 정서와 물리적 감각'을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작가 김현조는 자연, 존재, 개체성에서 기인한 불명확한 감정과 이미지를 수채와 카제인(casein, 물감재료)을 활용해 풀어내고 있다. '곰돌'은 돌과 곰을 닮은 형상 속에 애틋함과 두려움, 고요함과 생명력의 경계에 선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제주를 배경으로 자연과 감정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 오은희는 즉흥적 유화 드로잉으로 치유력 있는 정서를 그려 내고 있다. '그 바다'는 올레길을 걸으며 느낀 자연의 다정함과 감동을 직관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 고홍석은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숨'과 '풍선'을 매개로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확산을 시각화하고 있다. '피어나다'는 감정이 피어나는 순간을 사랑과 희망이라는 시각적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다.
2관 추(錘) – 감정의 균형은 감정의 무게와 균형을 주제로 다룬 관이다. 이 관에선 내면의 흔들림을 시각화한 회화, 설치, 오브제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작가 김희연은 폐역의 잊힌 풍경에서 감정의 섬세한 파동을 감지해 내고 있다. '해 질 녘'은 정지된 시간 속 고요한 빛을 포착해 잊힌 장소의 감성을 새롭게 불러내고 있다.
작가 주현옥은 감정의 레이어를 색채로 쌓아올리고 있다. '추억 4'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얽힌 기억과 감정의 복합성을 화면 위에 중첩해 드러내며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 이수진의 '비'는 빗속에서 고개를 든 여성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부조리한 현실 속 연약한 존재가 갖는 고통, 두려움, 슬픔의 감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 이현지의 '고요한 유토피아(3)'는 수증기 같은 감정을 레이어로 쌓고 긁어낸 화면 속에서 잃었던 감각을 환기하고 있다.
작가 백준승의 '럭키 박스 – 빛과 고요'는 책을 읽는 소녀, 촛불, 픽토그램을 통해 동화적인 고요함과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주는 몽환적 회화 작품이다. 작가 한슬기의 '무제'는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하는 낯섦과 심리적 동요를 강렬한 색채, 왜곡된 형태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익숙함과 불안의 경계선을 탐색하고 있다. 작가 감기배의 '물을 위한 개념적 오브제'는 불멍과 물멍의 상반된 감각을 제시한다. 또 향의 속성을 결합해 도시적 내상의 흔적과 회복을 조형 언어로 제안하고 있다.
작가 풍기문의 '항해2'는 태초의 생명성과 본능 그리고 삶의 여정을 꽃과 여성 누드로 상징화한 작품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작가 구하림의 '보호색 시리즈 – 무제 22'는 아픔과 불안을 감추고 치유해 가는 과정을 표현한 판화 작품이다. 작가 정세윤의 '웅장한 정원'은 귀엽고 동화적인 동물 캐릭터를 내세워 현대인의 불안을 위로하는 동시에 풍자와 위트를 담은 사회적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3관은 '사회적 존재 – 관계와 사회 속의 균형'이다. 이 관에선 사회와 관계,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개인의 자리와 사회적 연대의 감각을 묻는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작가 김지현의 '영원한 빛'은 자연과 인간, 우주의 순환을 그린 단채널 영상이다. 이 작품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감각적이고 생태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 서도이의 '프로토게노이'는 장례식 후 새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재창조, 존재의 리셋 가능성을 회화로 펼친 작품이다. 작가 현수영의 '이미지 250704 (아이덴티티)'는 '젤리 곰'을 내세워 사회 속 자아의 위장과 소외, 소비사회적 페르소나의 공허함을 드러낸 작품이다.
작가 장은혜의 '실뜨기'는 워킹맘, 비혼 여성,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가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 작품이다. 작가 조태광의 '한낮의 자장가'는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는 지점을 상상력으로 이어 붙인 작업이다. 작품 속에서 나무와 숲은 유토피아적 회화 속 주체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작가 정해민의 '물은 좋고 날은 밝고 조금은 시끄러운'은 도시의 하천에서 살아가는 오리, 고양이 등을 내세워 생명체의 안식처를 그려 낸 서정적 회화다.
작가 박수예의 '작은 방2_운동하자'는 각자의 방에서 갇혀 고군분투하는 존재들의 취향과 염원을 응원하는 희망의 일러스트 회화다. 작가 박용화의 '죽어서도 틀에 박힌'은 철조망에 걸린 나무뿌리를 통해 현대 도시의 억압된 공간 구조와 인간 존재의 생존 조건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작가 오혜린의 '얽히고 설킨'은 바다에서 수집한 낚싯줄과 필라멘트를 엮어 만든 작품으로 모든 생명체는 연결된 공생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설명하고 있다. 작가 정지은의 '오브젝트9'는 기억이 사라진 공간 이미지를 재구성해 현실과 가상이 혼재한 동시대 도시인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시각화하고 있다. 작가 홍지연의 '꿈의 개척자'는 양모와 실을 터프팅(Tufting·실을 천 위에 박아 입체적 질감 내는 것)한 작업으로 스스로 여정의 설렘과 불안을 겹겹의 파도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 송수연의 '집 잃은 곰'은 모든 존재의 생태적 공존 비전을 담은 흙 조형물이다.
총 36인이 참여한 이번 김포의 '본업' 展은 단발성 전시가 아니다. 경기문화재단이 기획한 '본업: Art as a Vocation(예술은 소명이다)' 전은 '기회소득 예술인 기획전'을 경기지역에서 총 4회 순차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첫 단추에 해당하고 이후에는 수원 고색뉴지엄(8.8~9.17)에서 '공간이 장소가 될 때', 안산 경기도미술관(11.13~12.21)에서 '스타트 업', 양평군립미술관(11.28~2026.2.22)에서 '전쟁과 평화'라는 소주제로 관련 기획전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멀리 돌아갈 뿐 목적지는 같다"라고.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본향으로 향하고 있는 이들의 전시는 오는 9월 7일까지 김포아트빌리지에서 이어진다. 관람은 무료이고 월요일은 휴관한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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