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날개 달린 아이가 살아남은 명랑한 비법"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4-05-27 13:09:55

리뷰와 에세이집 두 권 나란히 펴낸 서평가 김미옥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미오기傳'에 담은 책과 삶
아픈 기억 혹독한 성장기 불러내 객관적 분석, 화해
"쓰다 보니 웃게 되었고 웃다 보니 유쾌해졌다"

​서평가 김미옥 씨가 그동안 SNS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 책 두 권을 한꺼번에 펴냈다. 어떻게 책과 운명적인 인연을 맺어왔는지, 책에 대해 쓴 글들은 어떻게 다시 독자들을 유혹하는지, 그 실상이 담긴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파람북)와 '미오기傳(전)'(이유출판)이 그것이다.
 

▲ 전주 강연장에서 만난 서평가 김미옥. 그는 "우리는 능동적 독자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감으로…'에는 책에 관한 에세이 성격의 리뷰 74꼭지를, '미오기傳'에는 살아남아 '이기는 방법'을 찾기 위해 헤쳐온 삶의 내력을 담았다. 단번에 읽히지만 여운이 만만치 않다. 아픈 가족사와 지독한 가난 속 성장기는 한 발짝 떨어져 전달되는데, 이면의 아픔과 치열한 생존기가 짐짓 명랑하다. 종횡으로 엮인 읽기 편력을 바탕으로 문학은 물론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포괄하는 다양한 독서일기는 도서관 서가를 찬찬히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주에서 열린 그의 초청 강연을 뒷자리에서 지켜보다가 인근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울분을 속에다 품지 않고 터뜨리는 게 글쓰기"라면서 "제가 볼 때 글쓰기는 한풀이 같다"고 강연장에서 말했다. 그는 "독자가 작가를 아끼고 좋은 작가를 알아보면 우리 독서도 달라진다"면서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다"고 독자들을 '선동'했다. 그는 "누가 김미옥에 대해 물으면 능동적인 독자라고 말하라"면서 "한마디로 독자가 달라졌다"고 강연을 맺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마다 나는 과거를 불러 화해했다. 쓰고 맵고 아린 시간에 열을 가하자 순한 맛이 되었다. 나는 술래잡기하듯 아픈 기억을 찾아내 친구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통증 지수가 높은 기억의 통각점들을 골라 쓴 점묘화다. _ '미오기傳' 서문

-과거를 불러내 화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직면하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맞다. 확확 늙는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실은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주저앉는다. 그러면 안되는데, 과거와 똑같이 주저앉는 걸 못하겠더라. 나보다 힘이 센 권력자들, 오빠들이나 엄마라든가 혹은 상사나 사회에 내가 무릎을 꿇고 치욕과 모욕을 그대로 겪어나가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겠더라. 나름의 이기는 방법을 찾아 받아친 거다."

-나름의 이기는 방법이란 과거를 불러내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싸우는 건가.
"사람은 절대로 시행착오로 배우는 게 아니다. 시행착오를 또 한다. 항상 거기서 부딪친다. 글쎄 내가 바보도 아닌데 왜 이런가 생각했다. 분석을 하니까 용감해지더라. 자기를 더듬어 쓰다 보면 지금 나의 어떤 습관 같은 것을 분석할 수 있다. 이유도 없이 원죄의식에 시달리는 경우가 꽤 있는데 분석하고 쓰다 보면 찾을 수 있다."

김미옥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해 '읽고 쓰는 일'로 구원받았는지 그 상세한 내막은 두 권의 에세이집 편편에 스며 있다. 그는 '감으로…' 서문에 "위태로운 청춘을 무사히 건너게 해준 것이 독서였다면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글쓰기였다"면서 "생각하면 나는 죽고 싶을 때마다 글을 썼다"고 썼다. 그가 쓰는 글의 유일한 독자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뿐이었지만, 그것은 그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고 말한다.

최종학력 국졸인 세 오빠 중 한 명은 자살했고, 엄마와 살고 있는 두 형제도 암 투병에 알코올중독이다. 형제들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을 다녔지만, 손가락만 잃었다. 엄마는 그를 초등학교도 채 마치기 전에 캬라멜공장으로 내몰았다. 월급날에는 공장 앞에 서서 기다렸다. 그가 태어나던 날, 어린 언니가 잘못 불러온 '남자' 산파가 엄마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만취해서 뒤늦게 들어온 아버지가 발견했다. 아버지는 불륜 현장을 목격한 양 대로하여 탯줄도 정리하지 않은 핏덩이를 마당으로 던져버렸다. 세상을 떠난 오빠가 생전에 허공에서 너울거리던 탯줄을 두고 '너는 날개가 달렸다'고 되뇌인 그림이다. 그는 언니조차 오빠 말에 수긍을 해서 한동안 실제 날개가 달렸는지 찾아보곤 했다. 그를 견디게 만든 건 '명랑' 콘셉트였고, 학급문고 열쇠를 그에게 맡긴 선생 덕분에 시작한 '남독'이었다.

노란 빨랫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있어왔다. 엄마는 이걸로 세상을 하직할 거라고 우리에게 협박했다. 아니 내게 협박을 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가고 벚꽃이 화사한 봄날이었다. 엄마는 아파트 화단의 벚꽃 가지에 노란 나일론 빨랫줄을 감고 있었다. 내가 짝짝이 슬리퍼를 신고 총알처럼 튀어나오는 걸 본 후의 행동이었다. 딸년은 혼비백산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무에 감은 노란 빨랫줄을 풀면서 떠들곤 했다. "죽기엔 아까운 날씨네. 저녁에 고기 구워 먹을까?" _ '노란 빨랫줄'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객관화시켜 희화하는 맷집이 탄탄하다.
"그 힘은 책이었다. 사람은 환경과 경험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책도 간접경험이다. 책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가난, 특히 집안을 두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적어도 너희와는 다르다는 어떤 자신감의 바탕은 책이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쓰기 시작했다. 내 얘기를 안 들어주니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을 해도 아무도 이해를 못하니까, 사실은 내가 나에게 쓰는 글이었다. 내가 나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보내야 할 원고로 낑낑거리다 갑자기 막걸리를 먹고 싶어졌다. 명랑은 나의 콘셉트이다. 어릴 때 남자 형제들에게 죽어라고 얻어터지면서도 나는 명랑했다. 그야말로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젓가락 장단에 일가견이 있다. 양은 상판 드럼통을 두들기며 잘 논다. 물론 노래는 다른 사람들이 부른다. _ '명랑한 저녁'

-힘든 환경에서 어떻게 '명랑'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내가 터득한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였다. 밟으면 밟히는대로 있으면 땅 속으로 들어가야 되겠더라.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살아가는 방법 하나를 택한 거다. 그대로 그냥 무너지면 버틸 힘이 없어지니까. 나쁜 기억은 안 없어진다. 밥 한 공기에 쌀이 가득 들어 있어도 돌 하나에 이빨이 나가는 거랑 똑같은 거다. 조심해야 한다. 그때그때 없애야 한다."

-'진실을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선 진실에다가 반드시 거짓말을 덧대야 한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을 언급한 대목이 보인다. '진실'을 위해 과장하거나 꾸민 측면도 있는가.
"덧댄 게 아니고 뺀 것들은 많다. 실은 너무 잔혹동화 같은 얘기들이 꽤 있다.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는 다 피곤해 한다. 인생 자체가 힘든데, 약간 현실감이 결여되면 받아들이기 쉽다. 현실하고 조금 떨어진 이야기여야 재미가 있고 그 이야기를 찾는다. 가끔 너무 감정 이입되는 글을 피한다. 사회과학에 코를 들이 박는 이유 중 하나가 지나친 감정 소모를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쉼없이 서평을 쓰는 김미옥의 에너지는 놀랍다. 아주 오래전 동호회 선배가 '그 애의 광적인 모습이 너무 좋다'고 했다는데, 그 광기의 뿌리는 '몰입'이라고 했다. 한 번 무언가에 흥미를 느껴 확 빠지면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데, 철로에서 책을 읽다가 기차가 아무리 기적을 울려도 듣지 못해 죽을 뻔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 동호회 선배는 함께 서점에 갔다가 '애인'이 있는 것도 잊은 채 책을 들고 집으로 가버린 그에게 노발대발했다던가.

 

▲김미옥은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쪼깐'(조조간趙早揀) 할머니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던 밤 옆에 누운 어린 미오기에게 '너는 애비를 닮아 의리가 있고 외할미를 닮아 영악하다'면서 '똑똑하면 사는 게 고달프다'고 말했다고 썼다. 할머니와는 달리 기골이 장대했던 외할머니는 또 딸을 낳았다 하여 이름이 '또귀딸'이었는데 면서기가  '강도귀달'(姜都鬼達)로 한자 이름을 지어주었다.

진주의 면서기는 강도귀달에게 여자이지만 귀신 두목처럼 남자를 호령하며 살리라는 주술을 걸었고, 밀양의 면 서기는 조조간이 지아비가 없어도 앞날을 내다보며 후손을 잘 키워내리란 주술을 걸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남자들의 세상에서 남성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_ '면서기의 주술'

-아버지가 마당으로 던진 '날개 달린 아이' 나 할머니들 이야기가 설화 같다.
"에세이 형식으로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어느 선을 넘어서 너무 힘들거나 괴로우면 사람들은 피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소설로 써야 될 것 같다. 사실 여기 글들이 모두 소설의 씨앗이다. 알고 보면 결국 자기가 아는 얘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주교육대학에서 저녁에 열리는 '김사인 함께 읽기' 출판 기념회에 초대 받은 그가 시간에 쫓겨 서둘러 일어났다. 각광받는 서평가이자 페이스북 인플루언서로 바쁜 그는 좋아하는 작가들을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북토크를 자주 기획한다. 그는 "내가 톨스토이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그 작가에 베푸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게 된다"면서 "도움을 받은 이는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는 서문.

아무도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느낄 때, 나는 글을 쓰라고 말한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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