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공작원, 북한 심장부 들어갔다"

김당

| 2018-08-07 10:30:24

['공작' 비화]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의 증언②
'포대갈이'를 역이용 장성택 일가에 접근하다
▲ 영화 '공작'의 메인 포스터

 

'공작'은 1990년대 중반 북한 핵개발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북측 첩보기관에 잠입한 안기부 이중공작원 박석영(암호명 흑금성·황정민 분)과 그를 둘러싼 남북 권력층의 첩보전을 그린 영화다. 원작에 해당하는 논픽션 〈공작〉이 99%의 사실과 1%의 허구로 구성되었다면, 영화 ‘공작’은 실화 반(半) 허구 반(半)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공작’의 도입부에는 국군 정보사 대북공작단 공작관이었던 박석영 소령이 북한의 정보기관에 침투하기 위해 신용 불량자로 ‘신분 세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위장 포섭을 당하기 위해 여건을 조성하는 과정이다. 또한 박석영이 중국 조선족 핵물리학자를 유인공작해 자녀의 미국 유학과 돈으로 포섭하고, 중국 농산물의 ‘포대갈이’ 사업을 하던 북한 유력자의 아들을 곤경에 빠지게 해놓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북측이 ‘미끼’를 물어 자연스레 북측과 선(線)이 연결되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다.

적(敵)의 심장부에 직진해 들어가는 공작

실제로 박채서 소령은 북한 핵개발 첩보수집 공작을 수행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할 일은 북한에 선(線)을 구축해 필요한 대북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작관이 되어 정보사 공작단의 공작 실태를 살펴보니 대부분이 우회침투 공작이었다. 일본 조총련(朝總聯;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출신 재일교포를 통한 공작이 대부분이고, 가끔 미국이나 캐나다의 미주교포를 통하거나, 1992년 8월 한–중 수교로 이제 막 왕래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중국 조선족 교포를 활용하는 공작이 고작이었다.

우회공작은 제한적인 요소가 많았다. 제3자를 경유하다 보니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 어렵고, 중간 협조자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첩보의 양과 질이 현격하게 차이가 났다. 협조자의 이해 부족으로 엉뚱한 정보가 수집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협조자가 과장되거나 조작된 첩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문제점은 협조자들의 보안상 취약점이 노출되어 역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박채서는 기존의 우회침투 공작 유형에서 벗어나 적(敵)의 심장부로 직진해 들어가는 공작을 수행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수많은 포섭 대상자와 여건을 물색하던 중에 마침내 바라는 목표에 근접한 대상자와 여건을 접할 수 있었다. 청주중·고교 1년 선배로 조그만 오퍼상을 운영하는 김영진 씨였다.

김씨는 청주고 졸업 후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해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한 국가의 공관에 근무할 때 안기부 영사와 잦은 업무 마찰로 직업에 대한 회의에 빠져 일찍 외교부를 나왔다. 그는 무역업을 하다가 주식에 빠져 퇴직금까지 날리고, 서울 반포에 여럿이 사무실을 공동 운영하는 오퍼상을 차려, 고교 동기의 형인 ‘시바다 아리오시(한국명 서재호)’의 도움을 받아 중국산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었다.

박채서가 주목한 것은 이들이 호두, 땅콩, 고구마순, 버섯 같은 값싸고 구하기 쉬운 중국산 농산물을 북한으로 보내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국내로 들어와 많은 차익을 내고 있었고, 속칭 ‘포대갈이’라는 ‘농산물 세탁’ 과정에서 북한 사람들이 중국 현지에 나와 중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채서 팀이 파악한 바로는 당시 북한 실권자의 한 사람인 장성택의 형 장성우 북한 인민군 중장의 아들인 장현철이 김영진이 하는 중개무역에서 북한 측 ‘농산물 세탁 해결사’였다.

당시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북한산 수입 농산물을 내부 거래로 간주해 관세를 면제해 주는 정책을 취했다. 관계 당국은 일부 무역업자들의 그러한 불법적인 행태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북한과의 교류를 확대해 접촉면을 늘리려는 의도에서였다. 초기에 일부 무역업자들은 이러한 국가 시책을 활용해 값싼 중국산 농산물을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수입해 시중에 팔아 이중으로 이익을 취해 재미를 톡톡히 봤다.

대북공작국이 주목한 ‘포대갈이’ 사업
 

▲ 고려민항 승무원과 함께 한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씨

중국산 농산물은 값싸고 물량도 많았지만, 수입에 여러 가지 제한이 따랐다. 반면에 북한산 농산물은 국내에 수입할 때 내부 거래로 취급되어 관세가 면제되었다. 따라서 국내에서 인기있는 농산물을 중국에서 값싸게 대량 구입하여 북한 남포항에서 포장만 바꾸고, 북한 당국의 원산지 표시 증명만 받으면 많은 이익을 남기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당시 관련 업자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우선, 북한 측 고위 인사의 협조가 없으면 원산지 표시 증명이 불가능했고, 안기부나 정보사 같은 관련 기관의 협조 없이는 북한산으로 둔갑된 중국산 수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중국 여행조차도 정부 당국으로부터 ‘특정국가 여행허가’를 받아야 할 만큼 제한되어 있었다. 하물며 북한 사람을 만나 사업을 논의하고 협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극소수의 한국인들만 가능했다. 그러한 현실에서 중국 농산물을 ‘포대갈이’로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수입하는 김영진의 무역업은 박채서 팀이 중국과 북한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사업 여건이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을 잇는 김영진의 ‘포대갈이’ 3각 무역업에 올라탄 박채서의 사업은 국가안전기획부 대북공작국의 주목을 끌었다. 국가정보기관인 안기부는 국군 정보사와 기무사, 경찰청 보안국 같은 부문정보기관에 대한 기획–조정권을 갖고 있다.

기획–조정의 핵심은 사업, 즉 공작에 대한 예산통제와 결산, 그리고 평가이다. 안기부에서 대북공작으로 잔뼈가 굵은 남영식(南永植) 8국장과 송봉선(宋鳳善) 8국 공작2단장은 정보사 공작단의 박채서 팀장이 올라탄 ‘포대갈이 사업’을 면밀하게 주시해왔다. 그리고 기획 단계인 ‘광고제작 사업’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우량주’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영식 국장은 박채서팀에 예산을 지원하는 대신에 M&A(인수합병) 방식을 선택했다. 안기부가 정보사의 박채서 공작관을 스카우트해서 직접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박채서 소령은 전역을 해야 했다. 물론, 전역 사유도 군 인사 및 진급 누락에 따른 불평불만으로 위장을 해야 했다.

이미 지휘관의 길을 포기한 박채서는 ‘정보사 공작관’에서 ‘안기부 공작원’으로 변신하는 데 동의했다. 그로서는 안정 궤도에 오른 공작여건을 가진 안기부 비밀 공작요원이 되어 큰 배로 갈아탄 격이었다. 안기부로서는 정보사가 진수시켜 안전하게 항해 중인 공작선 한 척을 선장과 함께 ‘턴키 베이스’로 사들인 격이었다. 결국 공작선의 ‘마스트헤드’가 정보사에서 안기부로 바뀐 셈이었다.

박채서는 수 차례 일본을 방문해 조총련계 시바다 아리요시(서재호)와 만나 그의 신임을 얻고, 신덕샘물 등 몇 가지 아이템으로 대북사업 실적을 쌓아 갔다. 이어 1995년 3월경 안기부의 공식인가를 받은 대북공작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박채서는 안기부 소속 서기관급 국가공작원으로 정식 채용되었다.

여건 조성 : 장성택의 장조카에 올라타기

 

▲ 2012년 8월 14일 베이징에서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왼쪽)과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이 경제 개발 협력에 합의한 후 악수하고 있다. [출처: 중국 상무부 웹사이트]

박채서는 서울교역에 정월 대보름에 대비해 북한산 호두와 잣 등을 평소보다 물량을 크게 늘려 주문하도록 했다. 그는 사전에 경동시장 도매업자들을 움직여 주문하도록 해 김영진 대표도 내막을 모르게 했다. 평소 15~20만 달러어치에서 3배가량 늘려 수입가로 50만 달러어치를 넘게 구매했다. 당시까지 북한산 단일 농산물 수입액으론 최대였다.

그는 다른 나라와의 무역거래와 달리 대북한 무역은 신용장(L/C)이 조건부 결제라는 점도 활용했다. 즉, 북한과의 무역거래는 예기치 않은 문제가 자주 발생해 상대국에서 선적할 때 자동 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내에서 하역 후에 물품 확인절차가 끝나면 결제해주는 방식이었다.

박채서는 구매한 농산품이 인천항에 들어오자, 관세당국에 미리 손을 써서 보세창고에 쌓여 있는 북한산 농산물을 검역한다는 구실로 인천항 출입 기자들을 대동하고 공개 확인하도록 했다.

정부는 그동안 일부 무역업자들이 중국산 농산물을 북한산으로 위장해 반입하는 정황을 감지했지만, 대북 교역의 활성화 차원에서 눈감아 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북한 당국이나 국내 수입업자들도 관행적으로 북한 남포항에 들러 원산지 표시 증명 확인만 받아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남포항에서 북한산으로 둔갑시키는 ‘포대갈이’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원산지 증명만 받아온 것이다. 그러니 검역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날 저녁 9시 뉴스에 헤드라인 뉴스로 보도되었고, 이튿날 신문에도 대서특필 되었다.

신용장이 결제되면 중국인들에게 지불하기로 약정한 중국 선양(瀋陽)의 장현철은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중국의 농산물 수출업자들이 장현철에게 대금 지급을 독촉하자, 여윳돈과 예비비까지 몽땅 털어 지급하고도 15만 달러의 미수금이 발생했다. 그러자 수출업자들은 중국 공안에 장씨를 고소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중국 당국은 10일 이내로 물품 대금을 완납하라는 최후 통첩과 함께 출국할 수 없게 연금 조처했다. 놀랍게도 북한에서 막강한 장씨 집안이 15만 달러를 구하지 못해 중국 공안에 사실상 구금이 된 것이다.

북한측 ‘포대갈이’ 사업 관련자들은 장씨가 연금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호떡 집에 불난 듯 야단법석이었다. 박채서는 어둠 속에서 혼자서 미소를 지으며 불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최후통첩 10일을 하루 앞둔 마지막 날에 서재호를 앞세워 남은 물품 대금을 정리해 주었다. 박채서는 이로써 장씨 일가에 큰 빚을 안기며 북한 수뇌부에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하나 걸쳐 놓았다.

여건 조성 단계에서 망외의 소득은 북한의 외환 관리 실태와 위기상황 대처 능력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북한 당국은 남측이 알고 있는 이상으로 외환 관리통제가 철저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누이(김경희)의 시댁인 장씨 일가에서 15만 달러를 변통하지 못한 것은 외환이 예외 없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편, 북측의 상황 대처 능력은 제로(0)에 가까웠다. 시키는 일만 습관적으로 하다 보니 스스로 해결할 방안을 찾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서 생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계속해서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의 증언③…장성택과 골동품 중개 편이 이어집니다)

 

KPI뉴스 /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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