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는 오늘, 수출은 3년 뒤...조선업 경제효과의 시간표
한상진 기자
shiraz@kpinews.kr | 2026-10-23 11:36:01
설계부터 기자재·용접까지, 인도 전에도 생산·고용 효과
조선업이 호황이다. 장기 '슈퍼사이클'이라고 한다. 지난달 선박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29.9% 늘었다. 조선 3사 수주액도 383억2000만 달러(약 51조 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최근 늘어난 수출은 올해 수주의 성과일까. 쌓이는 수주액은 언제 매출과 현금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조선업 호황을 이해하려면 '실적이 잡히는 시계'를 들여다봐야 한다. 자동차나 냉장고는 통상 완성된 제품을 고객에게 넘길 때 매출로 잡힌다. 선박은 다르다. 수주부터 인도까지 수년이 걸린다. 그동안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완공 전에 매출을 잡는다. 완공 전에 진행률에 따라 계약금액을 나눠 매출로 인식한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은 공사 예정원가를 고의로 낮춰 매출과 이익을 부풀렸다. 원가를 낮추면 같은 비용을 투입했어도 공사가 더 많이 진행된 것으로 계산돼 매출을 앞당겨 인식하게 된다. 이후 대규모 부실이 드러나면서 경영위기로 몰렸고 구조조정을 거쳐 한화그룹에 편입됐다.
최근 나타나는 수출 실적 역시 과거 수주의 결실이다. HD현대중공업이 올해 인도한 LNG운반선 중에는 2023년 수주한 선박도 있다. 계약을 맺으면 수주액이 쌓이고, 건조 과정에서 매출과 고용이 발생하며, 대금은 계약 조건에 따라 들어온다. 국가 수출 통계에는 완성된 선박이 수출 통관될 때 반영된다. 같은 배 한 척이라도 수주와 매출, 대금 수령, 수출의 시계는 서로 다르게 움직인다.
2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달 선박 수출액은 37억6000만 달러(약 4조9703억 원)로 전년 동월보다 29.9% 증가했다. LNG운반선과 초대형가스운반선(VLGC) 등의 인도 물량이 늘어난 영향이다. 올해 1~9월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 조선 3사 누적 수주액도 383억2000만 달러(약 50조6583억 원)에 달했다.
수주와 인도 사이에는 수년의 시차가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자회사 HD현대중공업은 2023년 초 오세아니아 소재 선사로부터 20만㎥급 LNG운반선 3척을 수주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 가운데 1호선은 지난 4월 30일, 2호선은 지난 7월 6일 인도를 마쳤고 3호선은 연내 인도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통상 선박은 수주부터 인도까지 2~3년 정도 걸린다"며 "LNG운반선은 3~3년 반 정도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크기와 사양에 따라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 잔고와 도크 일정 등을 감안해 계약을 체결하기에 건조 착수나 인도 시점 등이 늦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선박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인도 전부터 일자리와 생산이 발생한다. 같은 사양의 선박을 여러 척 건조하는 '시리즈선'은 첫 선박의 설계와 기자재 구매 등에 약 1년이 걸린다.
이후 선박 건조에 필요한 첫 철판을 자르는 '스틸커팅(강재 절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건조에 들어간다. 같은 사양의 후속 선박은 앞선 설계를 활용할 수 있어 설계 등에 필요한 기간이 줄어든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설계 단계에는 설계 전문인력이 투입되고 강재 가공과 블록 조립 과정에서는 용접공·도장공 등 생산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완성 단계에서는 시운전 인력도 투입된다. 계약 이후부터 인도까지 조선소와 기자재 업체에서 생산과 고용이 이어지는 구조다.
조선사 매출은 이러한 건조 진행률에 따라 나눠 반영된다. HD현대중공업의 경우 1000억 원에 수주한 선박의 회계상 진행률이 50%라면 누적 매출액은 500억 원이 되는 식이다.
선주에게 실제 대금을 받는 시점은 매출 인식과 별개다. 조선업에서는 대금을 계약과 건조 단계별로 나눠 받고 인도 때 상대적으로 큰 금액을 받는 '헤비테일'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지급 조건은 계약마다 다르다. 건조 진행률(공정률)이 50%라고 계약금액의 절반을 받은 것은 아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매출은 선박 건조 진행률을 기준으로 인식하고 대금 지급 방식과는 별개"라며 "인도 시점에 대금의 절반 이상을 받는 계약도 있지만 매출은 그 이전부터 공정 진행에 따라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국가 수출 통계에 반영되는 시점도 다르다. 완성된 선박이 수출 통관될 때 수출액으로 집계된다. 수주 실적은 계약 당시, 생산·고용 효과와 매출은 건조 과정에서, 수출 실적은 완성된 선박이 해외로 나갈 때 각각 나타나는 셈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수주했을 당시 잡히는 금액과 별개로 2~3년 뒤 건조한 선박들이 인도되면서 수출로 잡힌다"며 "계약 이후 인도까지 공정마다 투입되는 인력이 달라 사실상 계속 고용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한상진 기자 shiraz@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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