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만에 '최고'…실생활 위협하는 高환율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5-11-24 17:04:53
유동성 확대·對美 투자 증가·'서학개미' 등 상방 요인 '겹겹'
하방 요인은 정부 개입뿐…"정부가 1500원 안 넘게 관리할 것"
환율안정 '4자 협의체' 가동…'국민연금 환헤지' 카드 논의
원·달러 환율이 7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어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실생활까지 위협받고 있다. 수입물가 상승세가 휘발유와 외식 가격 등 생활물가도 끌어올려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지는 형국이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1.5원 오른 1477.1원을 기록했다. 지난 4월 9일(1484.1원) 이후 7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원화 가치는 '비상계엄 사태'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관세 위협이 겹쳤던 연초 수준보다 아래로 내려갔다.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89.09(2020년=100)로 지난 3월 말(89.29)보다 더 낮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8월 말(88.88) 이후 16년2개월 만에 가장 낮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100을 넘으면 기준 연도 대비 고평가, 100보다 낮으면 저평가란 의미다.
한국 실질실효환율 수치는 BIS 통계에 포함된 64개국 중 일본(70.41), 중국(87.94)에 이어 세 번째로 낮았다. 10월 한 달간 실질실효환율 하락폭(-1.44포인트)은 뉴질랜드(-1.54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원화 가치는 달러화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주요국 통화 상대로 약세"라면서 "즉, 최근 환율 오름세는 달러화 강세보다 원화 가치 자체가 떨어진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11월엔 실질실효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은 10월엔 주로 1420~1430원대였으나 11월 중순부터 뚜렷한 오름세를 보이며 1450원대에 진입했다. 이후 더 크게 상승해 1470원 선을 넘나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여행만 안 가면 환율 상승세는 나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무지한 의견"이라며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도 뛰기에 당장 실생활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38.17로 9월(135.56)보다 1.9% 상승했다. 4개월 연속 오름세다. 특히 10월 상승폭은 지난 1월(2.2%) 이후 9개월 만에 최대치다. 한은 관계자는 "환율 상승이 주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수입물가 오름세는 이미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1월 셋째 주(16~20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전주 대비 리터 당 25.8원 오른 1729.7원을 나타냈다. 경유(1636.6원)도 38.5원 상승했다. 휘발유와 경유 모두 4주 연속 뛰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폭 축소와 함께 원·달러 환율 상승도 영향을 끼쳤다"며 "차후 오름세가 지속돼 휘발유 가격이 1800원을 넘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지역 칼국수 평균 가격은 지난해 12월 대비 4.91% 올랐다. 삼계탕(4.23%), 김밥(4.17%) 등도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밀가루 가격이 오른 탓"이라며 "밀가루는 대부분 수입산이라 환율 영향도 크게 받는다"고 분석했다.
확장재정으로 인한 원화 유동성 확대, 한미 관세협상 따른 대미 투자 확대 전망,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매수 증가 등 상방 요인이 겹겹이 쌓인 상태라 환율은 더 오를 전망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 흐름이 한동안 지속될 듯 하다"며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을 거란 얘기도 나오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고 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환율이 상승할수록 달러화 자산 투자심리도 강화될 것"이라며 고환율 기조가 환율 오름세를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방 요인이 여럿인 것과 달리 원·달러 환율 하방 요인으로는 국민연금 환헤지(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현재 시점에서 미래 환율을 미리 고정하는 행위) 등 정부 개입뿐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과도한 원화 약세를 억제해 줄 수 있는 구원투수는 정부 말고 전멸했다"고 지적했다.
외환당국과 국민연금 등은 이날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4자 협의체를 가동했다. 기획재정부는 언론공지를 통해 "기재부와 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과정에서의 외환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한 4자 협의체를 구성했다"며 첫 회의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이날 첫 회의에서는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 투자가 외환시장 수급에 미치는 변동성을 줄이는 방안이 비중 있게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 투자를 위한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환율을 밀어올리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기재부는 "앞으로 4자 협의체에서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독립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 강관우 대표는 "환율이 1500원에 근접하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며 정부가 1500원은 넘지 않도록 관리할 거라고 기대했다. 강 대표는 중장기적인 환율 흐름에 대해 "내년부터 점차 안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안정되려면 나스닥 등 미국 주식 불패 신화에 대한 개인들의 믿음이 깨지거나 연기금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마무리돼야 한다"며 "해당 시점은 2027년 이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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