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상영 취소, 압수 수색, 전기 차단…4·3 영화 수난사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04-03 16:24:15

4·3 소재 대중적 극영화 '내 이름은', 15일 개봉
1990년대부터 4·3 영화 제작…초기엔 다큐 위주
1997년 상영 '레드 헌트', 4·3 영화사에서 분수령
2013년 개봉 '지슬', 선댄스영화제 최고상 수상

제주 4·3사건(1947~1954)을 소재로 한 영화 '내 이름은'이 15일 개봉된다. 이를 앞두고, 3일 제주에서 시사회가 열린다. 지난해 4월 3일 촬영이 시작된 후 1년 만이다.

'남영동 1985' 등을 만든 정지영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염혜란이 주연을 맡았다. 앞서 2월에 초청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상영 후 관객들의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 영화 '내 이름은' 포스터. [CJ CGV, 와이드 릴리즈㈜]

 

돌아보면, 4·3사건을 이렇게 영화로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이 사건 관련 영화 제작·상영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했다.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초래한 4·3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독재 정권 시절 금기시됐다. 문화 예술 부문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을 수십 년간 찾아볼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8년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이 금기를 깼다. 빨갱이로 몰릴까 무서워 다들 쉬쉬하던 4·3사건의 실상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했다. 이것이 문제가 돼 현기영은 이듬해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작가는 고초를 겪었지만, '순이삼촌'은 한국 사회에서 4·3사건 진실 탐구의 문을 열었다. 그 후 문학 이외 부문에서도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작업이 이어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 영화 부문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초기에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1993년), '잠들 수 없는 함성 4·3항쟁'(1995년), '무명천 할머니'(1999년) 등 피해자의 고통을 조명하고 4·3사건의 실상을 파헤치는 작품이 연이어 제작됐다.

1997년 공개된 '레드 헌트'(감독 조성봉)는 4·3사건 관련 영화사에서 분수령이 된 작품으로 꼽힌다. 1992년 북제주군에서 다랑쉬굴이 발견되고 여기서 이 사건 희생자 유골이 다량으로 나오자, 얼마 후 당국이 굴 입구를 콘크리트로 덮어 봉쇄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레드 헌트'라는 제목은 빨갱이 사냥을 뜻한다.

학살을 비롯한 4·3사건의 진실을 추적한 이 작품은 1997년에 수난을 겪어야 했다. 먼저 작품 최초 공개가 예정됐던 서울다큐멘터리영상제에서 상영이 취소됐다. 상영을 앞두고 주최 측에서 감독에게 '희생자 수나 인터뷰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자막을 넣으라고 한 것이 원인이었다. 감독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그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이때는 당국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사전 심의를 거부한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는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인권영화제 장소가 봉쇄됐고, 상영 직전 전기가 차단됐다. 악조건 속에서도 '레드 헌트' 등을 상영하자, 당국은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서준식을 구속했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 표현물인 '레드 헌트'를 상영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 등이 주요 혐의였다. 서준식이 몸담은 단체인 인권운동사랑방은 압수수색을 당했다.

1998년에는 '레드 헌트'를 대학에서 상영한 창원대 학생회 간부 송모 씨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송 씨와 서준식은 각각 2001년, 2003년에 대법원에서 '레드 헌트'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을 때까지 법정 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 영화 평론가 강성률은 4·3 영화 변천사를 다룬 2013년 논문에서 "1997년까지도 제주4·3항쟁을 다룬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난에 찬 작업이었는지 이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 4·3사건 발발 1년 전인 1947년에 작성된 미군정 보고서에 담긴 "Red-hunt" 문구를 보여주는 영화 '레드 헌트'의 한 장면. [하늬영상]

 

2000년 4·3특별법 제정, 2003년 진상 보고서 확정과 대통령 사과 등을 통해 4·3사건 관련 국가 폭력이 공식 인정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레드 헌트' 때처럼 국가에서 상영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걱정을 덜게 되면서 4·3사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하는 영화가 늘어났다.

2013년에 개봉한 '지슬'이 대표적 사례다. 리얼리즘과 고발 중심인 '레드 헌트'와는 형식적으로 결이 다르고 예술 영화적 특징이 강한 독립 영화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지슬'은 독립 영화 역사상 이례적으로 많은 관객을 모으고,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극우 성향의 일부 누리꾼이 포털 사이트에서 이 영화에 고의로 최하점을 주고 '악의적 선동 영화'라 매도한 '평점 테러'가 발생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4·3사건 관련 영화는 '레드 헌트', '지슬' 등을 거쳐 이제 대중적 극영화인 '내 이름은'에 이르렀다. '내 이름은' 제작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4·3평화재단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진행한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으로 2021년에 선정된 것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는데, 영화로 제작돼 극장에 걸리기까지 5년 걸렸다.

'내 이름은' 프로듀서인 박선후 원광디지털대 교수는 1일 제주의소리에 실린 특별 기고에서 "2023년, 추진을 이어오던 기관들의 의도하지 않은 구조의 변화" 등 그간의 상황을 언급하며 "영화 제작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밝혔다.

상황을 바꾼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 박 교수는 2024년 12월부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진행한 영화 제작비 모금을 거론하며 "60일 동안 1만여 명이 후원자가 되면서, 그간 멈춰 있던 시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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