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쿠데타 처벌 못해?"…'배임죄 오히려 강화' 요구 잇따라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11-07 17:08:02

경제개혁연구소, 박삼구 전 금호 회장 판결 비평
"형식적 법 논리로 사익 추구에 면죄부"
기업거버넌스포럼 "폐지시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
참여연대 "배임죄 기능 분명" vs 경총 "경영활동 위축 막아야"

정부와 여당이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있으나 일부 대기업 총수의 사례를 봤을 때 오히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경제개혁연구소와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참여연대 등을 중심으로 배임죄 유지론이 제기되고 있다. 배임죄 폐지시 지배주주 범죄가 용인되고 주주권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상훈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6일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 항소심 판결에 대한 비평' 보고서를 내고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범죄에 대해 형벌권이 남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제대로 된 처벌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범죄를 더욱 꼼꼼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9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등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9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회장에게 징역 10년의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바 있다.

 

박 전 회장 2심 판결은 과도한 경제 형벌로 기업의 정상적 경영 판단을 어렵게 한다는 배임죄 폐지의 명분과 실제 현실은 다르다는 대표적 예로 제시됐다. 이 연구위원은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자신의 돈이 아니라 계열사 자금을 동원하더라도 그룹 재건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회장은 계열사를 동원해 개인 회사를 부당 지원하고 3000억 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을 받는다. 2심은 부당지원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봤고 처벌 수위가 높은 횡령과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2018년 승객들이 기내식을 공급받지 못한 이른바 '노밀'(No Meal) 사건의 원인이 됐던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업권 저가 양도의 경우 회사에 미친 재산상 손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배임죄가 인정되지 않았다. 

 

앞서 대법원은 2015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배임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특정경제범죄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2017년엔 이석채 전 KT 회장의 비자금 조성이 "일부가 회사를 위해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횡령 혐의를 다시 판단토록 했고 배임 혐의는 무죄로 확정했다. 


배임죄 적용을 통한 유죄 판결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독점 기내식 공급권과 같이 그 가치를 정확히 계량화하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까지 손해액 증명을 엄격히 요구하면서 무죄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형식적인 법 논리를 앞세워 재벌 총수의 사익 추구 행위에 눈을 감은 채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시장 관점에서 배임죄 폐지가 주주 권익을 침해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난 5일 '배임죄 폐지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 세미나에서 "상법 개정을 통해 투자자 보호의 첫 단추를 끼운 상황에서 대체 입법 없이 배임죄를 급작스럽게 폐지할 경우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법원이 이미 '경영 판단 원칙'을 명확히 해 배임죄로 기소된 다수 사례에서 무죄를 선고해 왔고 형사상 배임죄 처벌은 경영자들의 사익 추구 등 주주 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중요한 통제 수단이라는 게 이 회장 입장이다. 이 같은 대표적인 배임죄 유죄 사례로는 이중근 부영 회장이 자녀가 운영하는 영화 제작 업체에 회삿돈을 빌려준 경우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을 부인과 자녀가 지배하는 법인해 임대한 경우 등을 들었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러한 행위들은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것임이 명백하다"면서 "경영자들의 배임 행위를 규제할 수단이 사라지면 코스피 5000은커녕 더 깊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 참여연대는 일부 건설회사가 공공택지 입찰에 유령법인이나 계열사, 협력사를 참여시키는 이른바 '벌떼 입찰'로 낙찰받은 뒤 총수 자녀들의 지분이 많은 회사에 전매하거나 일감을 몰아주는 지원 사례들을 최근 분석했다. 호반·대방·중흥·제일·우미건설 등이다. 

 

참여연대는 "정부가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급하는 땅이 건설회사 총수 일가의 사익을 위해 이용되고 이를 통해 미성년자이거나 20대에 불과한 총수 일가 2세, 3세들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별다른 노력없이 부를 쌓고 그룹을 상속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근절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일감 몰아주기 등 경제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7일 KPI뉴스와 통화에서 정부·여당을 겨냥해 "배임죄가 기업 총수들의 불법 행위를 저지하는 기능을 분명히 수행하고 있다"며 "배임죄를 폐지한다면 다른 대체 입법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논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9월 '배임죄 제도 개선방안'을 통해 무분별한 고소와 고발 남발, 특정경제범죄법의 과도한 형량 등으로 경영 활동이 위축되고 정당한 경영 판단에도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등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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