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위기 벗어난 최태원…"불법 비자금이니 국고 환수" 주장도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10-16 16:45:59

대법원, '노태우 비자금' 불법 확인
재산분할금 현저히 줄어들 듯…경영 집중
"뇌물의 일부로 거액 지원" 전제
5·18기념재단 "당연히 국고로 환수해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6일 위기에서 벗어났다. 경영권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었던 1조3800억 원의 재산분할 지급액은 현저히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최대 고비를 넘긴 최 회장은 AI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쟁력을 높이고 부진한 배터리 부문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등 경영 현안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법원이 불법 뇌물임을 확인하면서 국고 환수 등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사회적 대화 공동선언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대법원은 이날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부친 노태우가 원고(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 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제의 300억 원은 최 회장과 SK그룹 지배구조의 운명을 결정한 핵심이다. 불법으로 조성한 자금이라면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민법의 '불법원인급여' 조항 원칙이 이날 대법원 판단에 적용된 것이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천문학적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라는 2심 판단의 결정적 근거가 무너졌다. 

 

대법원은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설명했다.

 

노 관장이 혼인 중 기여를 강조해왔으나 대법원은 이 역시 '불법 비자금'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의 재산분할금은 665억 원이었는데 2심은 "1991년경 노태우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원고의 부친 최종현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며 1조3808억 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불법적 기여를 인정치 않은 전제에서 판단할 것이므로 재산분할금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으로서는 지주사 SK 지분이나 사익 취득 논란을 빚어온 SK실트론 지분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는 불안한 상황에서 일단 벗어난 셈이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선택과 집중 원칙 아래 재무건전성을 강화하고 AI 중심 사업 구조로 전환하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작업을 숨가쁘게 진행해 왔다. SK하이닉스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은 풀어야할 숙제로 지적된다. 

 

최근 한국신용평가는 SK그룹에 대해 "배터리 사업은 그룹 차원의 집중적인 지원에도 의미 있는 수준의 실적 개선이 지연될 경우 그룹의 추가 지원 부담이 발생할 수 있으며, 화학 부문도 부진한 업황 상황 대비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이나 실질적 지원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향후 그룹 차원의 추가적인 계열사 매각을 포함한 사업구조 재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관세 리스크와 공급망 문제 등 국가적 과제 해결에도 매진해야 하는 처지다. 이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초청으로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리는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함께 방미해 거대 AI 인프라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미국을 찾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에도 측면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최 회장은 오는 28~31일 경주에서 열리는 APEC CEO 서밋의 의장도 맡고 있다. 다음 달 6~8일에는 그룹 최대 경영회의인 'CEO 세미나'를 앞두고 있다. 

 

다만 이혼 소송을 통해 불거진 '노태우 비자금'의 그림자가 오히려 짙어질 수 있다. 전 배우자의 몫으로 볼 수 있느냐가 초점이었다면, 이제는 과거 최고권력자의 불법 자금임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서울고등법원은 "태평양증권 인수 과정이나 SK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에게 일종의 보호막·방패막 역할을 한 것"이라며 SK그룹의 성장사를 평가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뇌물'이라는 대법원 적시는 SK그룹에 대한 지원이 있었다는 전제 위에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불법 자금이므로 노 관장에게 재산을 분할해 지급할 필요가 없다면, 결국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박균택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범죄수익 은닉 규제 처벌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골자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같은 헌정 질서 파괴 범죄자의 범죄수익을 추적해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제3자도 포함된다. 

 

국회 법사위 박동찬 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추징 대상에 범인 외의 자를 추가할 경우, 이를 통하여 은닉되는 범죄수익에 대하여도 철저한 환수를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취지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5·18기념재단은 지난해 10월 노 관장을 비롯한 노 전 대통령 일가를 대상으로 범죄수익 은닉 규제 처벌법 등 위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5·18기념재단 박진우 기록진실부장은 이날 KPI뉴스와 통화에서 "대법원이 노태우 비자금을 불법으로 인정해 재산분할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국고로 환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노 전 대통령 일가를 고발 대상으로 삼았는데, SK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지 검토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국세청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노태우 비자금' 과세 여부와 관련해 "대법원 재판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적의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