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나 모델' 광고가 불러낸 '이상한 과일'의 어두운 역사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09-22 17:10:46

KKK·린치 연상시킨 미국 신발 브랜드 컨버스 광고 논란
린치, 남북전쟁 후 새로운 인종 차별 체제 구축에 활용돼
린치 형태 변화…조용히→사전 광고 후 대규모 공개 행사
빌리 홀리데이, 1939년 노래 '이상한 과일'로 참상 고발

근래 미국 신발 브랜드 컨버스 광고가 논란이 됐다. 나이키 자회사인 이 기업의 새 광고 사진에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 집단인 쿠 클럭스 클랜(KKK) 등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지적을 받은 컨버스의 광고 이미지. [뉴시스(사진=인스타그램 'isaachayes3' 캡처)]

 

사진 속 흰색 두건 같은 이미지는 KKK가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에게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사적 폭력인 린치를 가할 때 착용한 복장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축 늘어진 운동화는 린치 피해자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판이 이어지자 컨버스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문제의 사진은 컨버스가 출시한 제품 홍보를 위해 촬영됐다. 홍보 작업에는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가 모델로 참여했다.

다수의 국내 매체가 컨버스 광고 논란을 20일 영국 언론 BBC 등을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KKK 린치의 실상이 어떠했는지, 축 늘어진 운동화 이미지에 대한 비판이 왜 빠르게 확산됐는지 등을 깊이 있게 조명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KKK는 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이 끝난 후 조직됐다. 노예제를 고수하던 남부는 이 전쟁에서 북부에 패했다. 그 결과 노예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다수가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시대는 오지 않았다. 북부와 남부의 백인 주류 세력이 손잡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극심한 인종 차별을 당연시하는 체제를 새롭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체제를 구축하는 데 활용된 핵심 기제 중 하나가 KKK 등이 자행한 린치였다.

황혜성 논문(1920년대 KKK – 하얀 두건, 검은 속셈)에 따르면, KKK는 4차례 흥기했다. 1차 시기는 남북전쟁 직후다. 북부를 기반으로 한 연방 정부가 남부에 군정(1877년까지)을 실시하던 이 시기에 KKK는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다가 1871년 와해됐다.

2차 시기는 KKK가 재조직된 1915년부터 1930년 무렵까지다. 이 시기에 KKK는 남부를 넘어 전국 조직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쇠퇴했던 KKK는 1960년대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민권 운동이 활기를 띠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3차). 그 후 가라앉았다가 1970년대 말 재등장했다(4차).

KKK 전성기는 2차 시기다. 세력이 왕성했던 1920년대 중반 KKK는 미국 전역에 4000여 개의 지부를 두었고, 단원이 400만~50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여성을 단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1차 시기와 달리, 이때는 단원 중 약 150만 명이 여성이었다(김인선 논문 '1920년대 여성 쿠 클럭스 클랜의 활동과 KKK의 성 정치'). 여성 회원 급증은 당시 KKK의 사회적 기반 확대를 보여주는 풍경 중 하나다.

전성기에 KKK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더해 좌파, 가톨릭, 유대인, 이민자 등에 대한 증오를 부추겼다. 1925년에는 흰 두건과 가운을 착용한 약 4만 명의 KKK 단원이 수도 워싱턴에서 행진하며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린치는 KKK의 핵심 활동 중 하나였지만, KKK가 와해된 1871년부터 재조직된 1915년 사이에도 자행됐다. 린치 희생자 규모에 대한 통계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1882년부터 1930년까지 린치에 의해 살해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약 3220명으로 추산한 연구도 있다.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린치 형태와 방식의 변화다. 이영효 논문(흑인에 대한 스펙터클 린치와 백인성)에 따르면 초기에는 대규모 인원이 가담하는 린치보다는 조용히, 비밀리에 폭행하고 교수형에 처하는 소규모 백인 테러가 많았다. 그러다가 1890년대 중반부터 총칼을 사용한 고문과 살해만이 아니라 화형을 더해 지역의 구경거리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하는 린치가 늘어났다.

189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까지 공개적으로 자행된 린치 양상을 살펴보면, 사전에 지역 신문을 통해 린치 행사를 광고하고 홍보한 경우가 적지 않다. 행사에는 성인 백인 남성만이 아니라 남녀 어린이, 예쁘게 차려입은 젊은 백인 여성 등까지 대거 참여했다. 마을 공동체 의례를 행하듯이 린치 행사를 치른 것이다.

공개 린치 현장에서는 고문과 신체 훼손, 화형과 교수형이 자행됐다.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을 린치 행사장으로 들인 다음, 추가로 돈을 내면 린치 대상자에게 직접 총을 쏠 수 있게 한 경우도,린치 대상자의 신체 일부를 자른 후 즉석에서 흥정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일부 참석자들은 시신 일부를 전리품처럼 가져가거나 현장 사진을 기념엽서로 제작해 유통하기도 했다. 린치 현장을 촬영한 사진은 물론 고문과 화형 과정을 녹음한 자료도 판매됐다.인종폭력이 지역사회의 공개 행사이자 상품으로 소비된 것이다.

 

▲ 1930년 8월 미국 인디애나주 매리언에서 발생한 토마스 쉽과 에이브럼 스미스에 대한 린치 사진. 린치를 촬영한 유명한 사진 중 하나다. [이영효 논문(흑인에 대한 스펙터클 린치와 백인성) 이미지 갈무리]

  

KKK 등은 린치 대상자 상당수에게 백인 여성에 대한 성폭행 혐의를 씌웠다. 실제로 성폭행이 이뤄졌는지, 그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있는지는 린치를 주동한 세력에게도, 린치 현장에 모인 관중에게도 우선적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린치가 오랫동안 자행된 것은 처벌받을 위험이 거의 없었던 것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황혜성 논문에 따르면, 1885~1922년에 린치를 자행해 기소된 백인은 단 1명뿐이었다.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는 1939년에 발표한 노래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을 통해 광기 서린 린치의 참상을 고발했다. "남부의 나무엔 이상한 과일이 달려 있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다. '이상한 과일'은 백인들의 린치에 희생돼 나무에 목이 매달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신을 가리킨다.

이번 컨버스 광고는 바로 이 '이상한 과일'로 상징되는 어두운 역사를 불러냈다. 광고 사진 속 흰색 두건 같은 이미지와 축 늘어진 운동화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 이유다.

이는 오늘날 아프리카계 미국인 다수가 여전히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공개 화형 등은 사라졌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부당한 폭력 행사와 살해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흑인들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2013년 미국에서 시작·확산된 데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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