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노동자 사고, 삼성 겨누는 책임론…"사과도, 입장도 없어"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4-09-05 16:50:27
정의당 "삼성, 대리인에게 맡겨 놓고 무책임한 태도"
에어컨 설치 중 사망자 유족, 중대재해법으로 고발
노조 "방사선 피폭자에 사과하고 전폭적 지원해야"
최근 잇따른 노동자 안전 사고와 관련해 삼성에 궁극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협력업체에서 사고가 발생했으나 삼성이 스스로 작성한 행동규범에 따라 적극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다.
지난 6월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참사'가 대표적 사례다. 경찰은 5일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 본사에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에스코넥은 과거 국방부에 전지를 납품하며 시험데이터를 조작하는 수법 등으로 국방기술품질원을 속인 정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코넥과 아리셀 대표를 겸임했던 박순관씨는 지난달 28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정의당 등은 철저한 보강 수사를 촉구하는 동시에 삼성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는 지난 3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에서 시민추모제를 갖고 삼성을 압박했다. 앞으로도 매주 화요일 같은 장소에서 추모제를 열 계획이다.
삼성 협력사 에스코넥, 아리셀 지분 96% 보유
핵심 요구는 에스코넥을 협력업체로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삼성SDI가 거래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에스코넥이 아리셀 지분 96%를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회사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에스코넥은 삼성전자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데 관련 무선사업 부문 매출이 전체의 90%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삼성SDI에는 2차전지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대책위는 삼성전자가 2011년 준법경영 선언을 하고 2013년 협력사에게도 확장하기 위해 만든 '준법경영 협력사 행동규범'을 주된 근거로 제시한다. 이 규범에는 안전보건 의무를 협력사에 요구하고 이를 충실히 지키지 않는 업체와는 거래 중단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삼성SDI도 유사한 규범을 갖고 있다.
정의당 권영국 대표는 KPI뉴스와 통화에서 "(아리셀과 에스코넥이) 명목상으로 분리돼 있지만 사실상 한 회사로 봐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삼성은 대리인에게 맡겨 놓고 아무런 입장없이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대표는 "계속 반응이 없다면 법적 책임을 묻는 방법도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 측은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SDI에 공급되는 부품이 아닌 일차전지 부품 생산 과정에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원청 책임을 묻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폭염에 숨진 20대 노동자 유족, 삼성전자 고발
지난달 전남 장성 한 중학교에서 삼성전자 에어컨을 설치하다가 온열질환으로 숨진 20대 설치기사 유족은 지난 3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고인은 이상 징후 발생 후 1시간 가량 방치됐고 미숙련자에게 충분한 안전교육 없이 과도한 노동을 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족은 발주처인 전남교육청과 함께 삼성전자의 사과와 대책을 묻고 있다. 이미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삼성전자를 광주노동청에 고발한 상태다.
유족과 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책회의는 "입사한 지 이틀 만에 27살 사회초년생 청년 노동자가 폭염에 노출돼 사망했지만 발주처 전남교육청과 원청 삼성전자, 설치업체 유진테크시스템은 사과조차 하지 않으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에어컨 설치 작업을 자회사나 지역별 하청업체에 맡긴다. 에어컨 설치기사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어서 사고 책임 소재 논란이 불거질 개연성이 크다. 이같은 경우를 감안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제3자에게 업무의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할 때 산재 예방 능력과 안전보건 비용 등을 원청이 반기 1회 이상 점검토록 명시돼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방사선 피폭자에 대해 실질적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지난 3일 방사선 피폭 사고 관련 공동성명을 내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전폭적 지원을 요구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지난 5월 발생한 2명의 방사선 노출 사건에 대해 기준치를 최대 188배 웃도는 피폭이 확인됐다고 지난달 26일 밝힌 바 있다. 특히 한 명의 피해자는 손가락 7개를 절단할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피해자가 '회사로부터 사과를 전혀 받지 못했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으며, 치료비 때문에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고 전했다.
노조와 반올림은 "사측은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여전히 취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재용 회장은 불안에 떨고 있는 직원들에게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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